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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이야기/해외소식

프랑스 국경

by 금곡동로사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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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 식민제국은 대영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식민제국이었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전성기에는 1,350만 ㎢(520만 평방마일)의 땅이 펼쳐져 있었다.


프랑스의 현재 국경에는 과거 식민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날 프랑스는 11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총길이는 4,176 ㎞ (2,595 마일)에 달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가 브라질과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여러 나라와 공유하는 국경의 길이는 다음과 같다.
1. 브라질 - 730 km (453.60 마일)
2. 벨기에 - 659 km (409.48 마일)
3. 스페인 - 623 km (387.11 마일)
4. 스위스 - 573 km (356.05 마일)
5. 수리남 - 520 km (323.11 마일)
6. 이탈리아 - 515 km (320.01 마일)
7. 독일 - 448 km (278.37 마일)
8. 룩셈부르크 - 73 km (45.36 마일)
9. 안도라 - 57 km(35.42 마일)
10. 네덜란드 - 13 km(8.08 마일)
11. 모나코 - 4 km(2.49 마일)

프랑스 국경의 일부 구역은 매우 특이하다.

예를 들어, 비다소아 라인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다. 이 강에서는 6개월마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주권이 바뀌는 꿩(프랑스어 페상/스페인어 파이사네스/바스크어 콘판치아) 섬을 볼 수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경도 특이하다.

세인트마틴(프랑스어 생마르탱/네덜란드어 신트마르턴)은 카리브해 북동쪽에 있는 섬으로, 푸에르토리코에서 동쪽으로 약 300 km(190 마일) 떨어져 있다. 87 평방킬로미터의 섬은 프랑스(53 ㎢, 20 평방마일)와 네덜란드(34 ㎢, 13 평방마일) 간에 약 6 대 4로 나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부분은 인구 면에서 거의 동등하며, 네덜란드 쪽에 미미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2017년 1월 1일 기준으로 섬 전체의 인구는 75,869명이며 프랑스 쪽에 35,334명, 네덜란드 쪽에 40,535명이 살고 있다. 섬은 1648년에 두 나라로 나뉘었다.

아래는 프랑스 본국의 모든 곳에서 가장 가까운 국경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프랑스 해외 영토의 경우 가장 가까운 국가는 다음과 같다.

· 과들루프 : 앤티가 바부다(북동쪽), 몬트세랫(영국, 북서쪽), 도미니카 연방(남쪽)
· 마르티니크 : 도미니카 연방(북쪽)과 세인트루시아(남쪽)
· 기아나 : 수리남(서쪽)과 브라질(동쪽)
· 레위니옹 : 모리셔스
· 마요트 : 코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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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경의 변화

 

프랑스 국경의 변화는 수세기에 걸친 정복과 외교, 지정학을 통해 짜인 복잡한 태피스트리이다. 프랑스 국경은 역사 전반에 걸쳐 중요한 변화를 겪었으며, 별개의 영토 집합체에서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다.

프랑스 영토 확장의 가장 초기 기반 중 하나는 중세 시대, 특히 카페 왕조의 통치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카페 왕조의 왕들은 전략적인 결혼, 동맹, 군사 원정을 통해 점차 영역을 확장했고, 노르망디, 아키텐, 프로방스 같은 지역을 초기 프랑스 국가에 편입시켰다.

잉글랜드와의 백년전쟁(1337-1453)은 프랑스의 영토 경계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 갈등에서 잉글랜드 세력이 프랑스 땅에서 점차 추방되는 것을 보았고 프랑스 왕국의 핵심 영토를 굳건히 했다.

특히 정복과 외교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한 프랑수아 1세 치하의 르네상스 시대는 프랑스에게 더 많은 영토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으로 인해 내분과 영토 분열이 일어났고 브르타뉴와 부르고뉴 같은 지역은 상당한 자치권을 유지했다.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의 통치는 프랑스 영토 확장의 또 다른 단계를 표시했다. 군사 원정 및 조약과 함께 그의 적극적인 대외 정책은 알자스, 로렌 및 저지대 일부 지역과 같은 영토의 획득으로 이어졌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프랑스 영토 야망의 절정과 최악을 모두 목격했다. 그가 스페인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유럽 대륙의 많은 부분에 걸쳐 프랑스의 지배권을 확장하면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복은 유럽 지도를 재편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은 결국 패배로 끝났고, 많은 영토의 상실과 부르봉 왕정복고로 이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는 프랑스가 독일에 알자스로렌을 빼앗긴 보불 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점령과 영토 변화를 경험하는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나 프랑스 국경에 추가적인 변화가 있었다. 

 

 

보다 최근의 역사에서는 유럽 통합 과정에서 프랑스가 유럽 연합(EU)의 형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유럽 국가 간의 더 큰 협력과 통합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프랑스 국경은 EU 체제 내에서 외교 관계와 공유 주권으로 특징지어지는 보다 안정적인 기간을 갖게 되었다.

 

 

 

출처 : Vivid 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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