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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중세 로마 제국 - 비잔틴 제국을 형성한 5대 전투
636년 야르무크에서 일어난 재앙 이후, 동로마 제국으로도 알려진 비잔틴 제국은 아랍 침공군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8세기 초까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아프리카의 부유한 속주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제국군이 완전히 물러나자 아랍군은 제국의 심장부인 아나톨리아로 이동했다.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두 번의 포위전을 겪었지만 난공불락의 성벽 덕에 구해졌다. 서방에서는 다뉴브 국경이 무너져 불가르인이 발칸반도에서 그들의 왕국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비잔틴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9세기와 10세기 사이에 반격을 가하며 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제국 행정의 군사화, 군대의 재편, 그리고 노련한 외교는 강력한 중세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적을 물리칠 때마다 셀주크, 노르만, 베네치아, 오스..
2023. 1. 11.
루스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기원
루스는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카자크와 마찬가지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지금은 "루스" 이름이 BC 2세기부터 키이우 남쪽 우크라이나 중부에 정착한 사르마티아 부족 록솔라니에서 유래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지역에는 로스, 로사와, 로스타비차, 루테츠 등과 같은 이름을 가진 강이 있다. 오래전부터 루스는 키이우, 체르니히우, 페레야슬라프 공국 즉 오늘날의 키이우, 지토미르, 체르니히우, 수미의 일부, 체르카시, 빈니차, 폴타바 주의 중앙 우크라이나에만 사용되었다. 12세기부터는 우크라이나 서부까지 확장되었다. 대공들은 루스가 그들의 고향('봇치나' 유산)이라고 믿었다. 다른 속령들은 루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여겨졌다. 키이우 루스의 시대에는 우크라이나 백성을 루시니(드물게 루시)라고 불렀다. ..
2021.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