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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속주

크레타 에트 키레나이카

by 금곡동로사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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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6년 1차 삼두정 당시 크레타 에트 키레나이카 속주의 모습

 

크레타와 키레나이카는 BC 67년에 설립된 로마 제국의 원로원 속주로 크레타 섬과 현재 리비아의 키레나이카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아피온의 의지와 로마의 키레나이카 통치

 

헬레니즘 왕국 키레나이카의 마지막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은 BC 96년에 자녀 없이 사망했을 때 그의 왕국을 로마 공화국으로 유증 했다. 로마는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으로부터 이 상속을 쉽게 받아들였지만 직접 지배하기보다는 행정권을 지역 통치자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BC 70년대에 이르러 유대인 정착민들의 시민 봉기는 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원로원은 조치를 취해야 했다. BC 74년 그들은 하급 관리인 코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를 파견하여 공식적으로 키레나이카를 로마의 영토로 합병하고 질서를 회복했다. 원로원이 그렇게 하급 관리를 파견했다는 것은 공화국이 성장하는 제국을 통치하는 데 있어 정치적 어려움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키레나이카가 로마 통치와 그것이 가져온 안정성에 기꺼이 복종하면서 원로원의 안이함을 비난했다.

 

 

로마의 크레타 정복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는 BC 71년 크레타를 공격했고 격퇴당했다. 그 후 BC 69년 로마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를 임명하여 3년간의 격렬한 캠페인 끝에 BC 66년에 크레타가 로마에 점령되었으며 메텔루스는 크레타의 정복과 정복에 대한 명예로 "크레티쿠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속주

 

BC 67년 크레타와 키레나이카는 크레타의 고르틴에 주도를 둔 단일 속주로 합쳐졌다. 이 방식은 지리적으로 불편했기 때문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AD 298년에 속주를 분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행정 개혁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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