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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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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아나톨리아2

히타이트, 아시리아, 아무루, 아히야와 히타이트 전차는 3명으로 더 무거웠다. 조종수, 창병, 궁수... 효과적이지만 기동성이 떨어졌다... 바큇살이 4개인 것에 눈길이 간다. 히타이트의 마지막 왕들, 특히 투드할리야 4세(BC 1237-1209년)와 수필룰리우마 2세(BC 1207-?)는 BC 1237년경부터, 그들의 세계와 문명이 종말을 고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3세기 말 수십 년 동안 매우 활동적이었다. 투드할리야는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서 불과 1 km 정도 떨어진 야질리카야(Yazilikaya, "새겨진 바위")에 있는 석회암 노두 바위에 신들과 여신들의 판테온 전체와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으라고 명령했다. 이 시기에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아시리아와 전쟁 중이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는 아마르나 파라오 시대에.. 2021. 12. 4.
킴메르 킴메르인은 BC 1,000년경에 출현한 인도 유럽 유목 민족으로 BC 8세기 후반에 아시리아 기록에서 언급되었다. 킴메르인은 종종 문화적으로 "스키타이인"으로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묘사되었지만 그들은 킴메르인을 쫓아내고 대신 자리 잡은 스키타이인과 인종적으로 분명히 달랐다. 아마도 폰토스 카스피 대초원에서 시작된 킴메르인은 코카서스 북쪽을 경유하여 서쪽의 유럽과 남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마도 BC 714년 경에 신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우라르투 지역을 침공했다. 남쪽으로 이주한 킴메르인의 침공은 705년 사르곤 2세의 아시리아 군대에 패배했으며 그 후 서쪽의 아나톨리아를 향했고 696/5에 프리기아를 정복했다. 그들은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를 점령한 652년에 세력이 정점에 도..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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