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미디아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로마 속주로 대략 알제리 북동부의 영토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
이 지역 사람들은 BC 2세기경 폴리비우스에 의해 처음으로 누미디아인으로 확인되었지만 그들은 종종 노디디아인으로 불렸다.
누미디아 동부는 BC 46년에 새로운 로마의 속주인 아프리카 노바를 만들기 위해 합병되었다. 누미디아 서부도 BC 40년에 마지막 왕인 아라비오가 사망한 후 합병되었으며 두 지역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트리폴리타나와 합쳐 아프리카 프로콘술라리스로 창설했다. AD 40년에 아프리카 프로콘술라리스의 서부 지역은 주둔 군단이 포함된 황제 레가투스 아래 배치되었으며 누미디아의 레가투스는 AD 203년까지 아프리카 프로콘술라리스에 명목상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누미디아라는 별도의 속주가 되었다.
2세기에 이 속주는 기독교화되었으며 4세기에는 히포 레기우스(현재의 안나바)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유명한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도나투스 주의를 고수했다.
193년 이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치하에서 누미디아는 공식적으로 아프리카 속주에서 분리되어 레가투스 아우구스티 프로 프라이토레가 통치하는 별도의 속주가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하에 속주는 사분통치로 재조직되면서 하나의 속주를 구성했고 그 후 두 개의 속주, 키르타를 주도로 삼은 누미디아 키르텐시스와 군단 기지가 있는 람바이시스를 주도로 삼은 누미디아 밀리티아나("군사 누미디아")로 나뉘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당시 콘스탄티나(오늘날 콩스탕틴)로 이름이 변경된 키르타에서 통치하는 단일 속주로 두 속주를 재결합했다.
428년에 반달족은 아프리카 지역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432년 반달 왕국이 세워졌으며 534년 왕국이 정복되어 아프리카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재편성되었고 반세기 후 마우리키우스 통치 시대에 아프리카 총독이 다스리는 아프리카 프라이토르 행정 구역을 형성했다.
696년에서 708년 사이에 이 지역은 아랍 무슬림(우마이야 칼리파국)에 정복되어 이프리키야의 일부가 되었으며 13세기 동안 무슬림 세계에 통합되었다.
주요 도시들
로마 누미디아의 주요 도시는 다음과 같다. 북쪽에는 주도 키르타(오늘날 콩스탕틴)와 함께 항구 루시카다(오늘날 스킥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잘 알려진 히포 레기우스(안나바 부근)가 있었다. 남쪽으로 내부 군사 도로에서 테베스테(테베사)와 람바이시스(람베사)로 이어졌으며 각각 키르타 및 히포와 군사 도로로 연결된 광범위한 로마 유적이 있다.
람바이시스는 아우구스타 3군단의 기지이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중심지였다. 군단은 누미디아를 사막의 가이툴리 베르베르 부족과 분리한 아우레스 산맥의 고개를 통제했으며 제국 시대 로마군은 점차적으로 전체 범위를 점령했다. 이 도시들을 포함해 로마 콜로니의 칭호와 지위를 한 번에 받은 것으로 알려진 도시는 모두 20개였다. 그리고 5세기의 로마 제국 행정 문서인 Notitia Dignitatum에서 479년 카르타고에 모인 123명 이상의 주교를 열거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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