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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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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그외17

키이우(키예프)와 우크라이나 민족, 바랑기아 대공의 기원 키이우의 건설 다뉴브 강 지역에서 벌어진 작전에 참여한 안타이 영주 중 한 명은 폴리아니 부족 출신의 영주 키이였다. 그가 세운 키이우는 언덕 위에 있어 방어에 편리했다. 흑해와 발트해, 데스나 강 등 많은 무역로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루스의 원초 연대기(고대 우크라이나 연대기)에 따르면, 키이우 언덕에 세 명의 폴리아니 영주 키이, 슈체크, 호리브가 세 개의 다른 요새(각각 자신의 요새)를 세웠으며, 나중에 맏형의 지도하에 하나의 도시를 형성했다고 한다. 이는 로마 제국이 동부와 서부로 분열된 후(395년), 대략 5세기 말 또는 6세기 초에 일어났다. 키이 영주는 다뉴브 강에 키이우인의 도시를 세웠다. 연대기에 따르면, 키이는 상당히 중요한 통치자로 비잔틴 황제와 개인적으로 만났다. 삼 형제와 "팔.. 2021. 12. 16.
고트족과 슬라브족, 훈 제국 고트족 AD 230년대에 커다란 게르만 부족인 고트족이 스칸디나비아에서 아조프해 북쪽과 흑해 근처 지역으로 왔다. 고트족은 해상을 포함하여 로마 제국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 결과, 로마의 국경은 3세기 후반에 다뉴브 강 너머로 밀려났다. 4세기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슬라브족과 사르마티아인 모두 고트 왕 에르마나리쿠스(350-375년)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다. 선동가의 사주를 받은 그는 그의 아내 중 하나이자 록솔라니족 통치자의 딸인 수닐다(또는 스반힐드)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그녀의 형제들은 에르마나리쿠스의 궁전에 침입하여 고트 왕에게 부상을 입혔지만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고, 왕도 나중에 죽었다. 고트족은 또한 슬라브족 통치자 보즈와 그의 귀족들 70명을 죽였다. 350년 기독교 사제 울.. 202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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