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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북이스라엘] 요아스

by 금곡동로사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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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를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병든 엘리사의 지시대로 활을 겨누는 요아스

 

이름이 "야훼가 주셨다"라는 뜻의 요아스는 북이스라엘 왕국(사마리아)의 열두 번째 왕이자 여호아하스의 아들로 16년(BC 798-782) 동안 통치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람 왕 하사엘의 침략에 시달리며 왕국의 영토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통치에 대한 성경적 설명

 

열왕기 하에 따르면 요아스는 금송아지 숭배를 용납한 것에 대해 여호와의 눈에 죄를 지었고 악을 행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여호와를 경배했다.  그는 16년 동안 이스라엘 왕으로 통치했으며 유다 왕국과의 전쟁을 포함한 결정적인 전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왕하 13:10, 12).

 

엘리사의 죽음

 

요아스는 죽게 될 병을 앓고 있던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러 갔다. 그는 선지자 엘리사를 영예롭게 안고 죽는 동안 침대 곁에서 울었다. 요아스는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때 엘리사가 했던 말인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며 엘리사를 기쁘게 했다. 요아스가 엘리사의 지시에 완전히 순종하지 않았을 때, 엘리사는 요아스가 아람을 5-6번이 아니라 3번만 이길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는 아람의 위협을 종식하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세 번의 신호와 연속적인 승리로 요아스는 아람 사람들을 이기고 하사엘이 이스라엘에게서 점령한 성읍을 되찾았다.

 

유다와의 전쟁

 

그의 통치 후반에 요아스는 유다 왕 아먀샤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왕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으며, 연대기에서는 그로 인해 요아스에 의해 파멸과 패배로 이어졌다고 묘사했다.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레바논 엉겅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 '딸을 내 아들과 결혼시켜주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레바논의 들짐승이 와서 엉겅퀴를 짓밟았다. 당신은 정말로 에돔을 무찌르고 이제 거만해졌다. 당신의 승리에 영광을 돌리지만 궁에 있으라! 왜 문제를 만들고 자신과 유다의 몰락을 초래하는가?"(왕하 14:9-10)

 

요아스는 단과 블레셋의 경계 벧세메스에서 아마샤를 완전히 물리쳤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성벽의 일부를 부수고 성전과 궁전의 보물을 차지했으며 사람들을 볼모로 삼았다. 아마샤의 패배에 이어 그의 목숨을 앗아간 음모가 이어졌다(왕하 14:8-14, 19).

 

전투가 끝난 후 그는 곧 죽어 사마리아에 묻혔다(왕하 13:13).

 

시나이 반도 Kuntillet Ajrud에서 발견된 회 반죽 유물의 근동 왕의 초상화, 요아스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
아다드니라리 3세의 석비, 사마리아인 요야스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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