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by 금곡동로사 2021. 2. 8.
728x90

여로보암 2세를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북이스라엘 영역

 

여로보암 2세는 요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열세 번째 왕이며 BC 8세기에 41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유다의 왕 아마샤(왕하 14:23) 및 웃시야(아사랴로도 불림)(왕하 15:1)와 동시대였다.

 

그는 BC 793-782년 동안 요아스와 함께 통치하였고 이후 BC 782-753년까지 단독으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그는 아람을 이기고(왕하 14:26, 27)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14:28) 이스라엘을 "하맛의 평야에서 아라바의 바다(사해)까지" 이전의 한계까지 확장했다.

 

고고학적 증거는 그의 통치가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알지 못했던 가장 번영했던 통치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인시켰다. BC 8세기 말까지 이스라엘 영토는 전체 레반트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이었으며 인구는 약 35만 명이었다. 이 번영은 이집트, 특히 아시리아가 시장을 제공하는 올리브유, 포도주, 그리고 아마도 말의 무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선지자 아모스에 따르면, 왕의 승리는 왕국에서 거만한 과신의 정신을 불러일으켰다(암 6:13). 전례 없는 화려함의 궁전에 있는 위대하고 사치스러움과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오락에 대한 갈망은 이러한 대외 승리의 결실의 일부였다.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의 신은 금송아지와 같은 실제 형상으로 만들어져 단과 벧엘과 다른 이스라엘의 오래된 성지에서 숭배되었다. 단과 벧엘, 길갈과 브엘세바에서 행한 이 예배는 선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수많은 이방 종교(암 5장)와 수없이 많이 타락한 행위로 선지자들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더욱 기여했다. 여로보암의 통치는 선지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의 시대였는데 이들은 모두 당대의 이스라엘 엘리트의 물질주의와 이기심을 정죄했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암 6:3-5). 열왕기 하에서 여로보암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억압과 예루살렘 성전에 반대하는 단과 벧엘의 성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의미한다.

 

BC 8세기 여로보암 2세의 점토 인장 / 인장의 복제품

 

BC 760년 경 이스라엘의 지진

 

이스라엘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BC 760년 경, 여로보암 2세 시대에 그의 통치 말기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 지진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암 1:1)의 통치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아모스 서에 언급되어 있다.

 

스티븐 A. 오스틴에 따르면 이 지진의 규모는 최소 7.8에서 최대 8.2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규모 8의 지진은 지난 4천 년 동안 사해 변형 단층대에 기록된 가장 큰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진의 진원지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북쪽으로 200-300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아모스 서(3:14, 6:11, 8:8, 9:1)와 스가랴 14:5에도 이 지진에 대한 여러 성경적 언급이 있다.

 

고대 가드에서 Aren Maeir가 최근 발굴한 결과 대지진의 증거가 밝혀졌다.

 

"긴밀한 층서학적 맥락에 따르면, 이것은 BC 8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728x90

'고대 이야기 > 이스라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이스라엘] 살룸  (0) 2021.02.09
[북이스라엘] 스가랴  (0) 2021.02.09
[북이스라엘] 요아스  (0) 2021.02.07
[북이스라엘] 여호아하스  (0) 2021.02.07
[북이스라엘] 예후  (0) 2021.02.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