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나헴("위로하다"라는 의미)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열여섯 번째 왕이었다. 그는 가디의 아들이자 가디 가문 또는 므나헴 가문으로 알려진 왕조의 창시자였다. 어떤 사람들은 가디가 갓 지파의 후예라고 추측했다.
성경에서
므나헴의 10년 통치는 왕하 15:14-22에 나와 있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스가랴에 대해 음모를 꾸며 암살한 뒤 왕국의 왕좌에 앉았을 때 살룸처럼 스가랴의 군대의 대장을 맡고 있었던 므나헴은 왕을 살해한 약탈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므나헴은 서쪽으로 약 6마일 떨어진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진군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그는 그 도시를 점령하고 한 달 동안 통치한 살룸(왕하 15:13)을 죽이고 왕좌에 앉았다(왕하 15:14). 후대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는 북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었다.
그는 딥사에서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는 도시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죽이고 심지어 임산부를 갈라버렸다(왕하 15:16). 선지자 호세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라는 말에 함축된 술 취함과 방탕을 묘사했다(열왕기하 15:18, 호 7:1-15).
열왕기 하에서 그의 통치를 잔인함과 억압 중 하나로 묘사한다.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열왕기하 15:21)에 요약되어 있으며 므나헴의 통치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연대기
므나헴은 유다 왕 아사랴 39년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0년 동안(BC 752-742) 통치했다(왕하 15:17). 므나헴은 자연사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계승했다(왕하 15:22).
아시리아의 속국
아시리아의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므나헴이 죽기 3년 전인 BC 745년에 통치를 시작했다.
므나헴의 통치 기간에 아시리아인들은 처음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에 들어갔고 또한 북동쪽으로 아람의 다마스쿠스를 침공했다. "앗수르 왕 불이 그 땅에 들어왔다."(왕하 15:19) 아시리아인들은 아시리아 파벌에 의해 이스라엘로 침입했을 수 있다. 호세아는 반 이스라엘 세력인 이집트인과 아시리아인에 대해 이야기했다(호세아 7:11).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므나헴은 은 천 달란트(왕하 15:19), 즉 약 37톤(약 34 미터톤)의 은을 공물로 바쳐야 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왕하 15:19에 언급된 불은 설형 문자 비문의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로 인정된다. 불은 아마도 그의 개인적인 이름이었고 북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언급된 이름이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는 그의 비문 중 하나에 이 공물을 기록했다.
공물을 바치기 위해 므나헴은 왕국의 모든 강력한 사람들에게서 은 50 세겔(약 0.6kg)을 빼앗았다(왕하 15:20). 이 금액을 모으려면 왕국에 "강하고 부유한 사람"이 약 60,000명이 있어야 했다. 공물을 받은 후 티글라트 필레세르는 아시리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때부터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의 속국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 베가가 더 이상 공물을 바치지 않자, 왕국이 파괴되고 백성이 추방되는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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