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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북이스라엘] 베가

by 금곡동로사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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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를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의 남유다 침공

 

베가는 르말랴의 아들로 북이스라엘의 열여덟 번째 왕이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왕이었다. 그는 군대 대장의 위치에서 브가히야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베가는 유다 왕 웃시야의 52년에 왕이 되어 20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통치 2년에 요담이 유다의 왕이 되어 16년 동안 통치했으며 베가 통치 17년에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계승했다. 학자들은 베가는 BC 752년 길르앗에서 왕이 되어 북이스라엘과 경쟁했으며 BC 740년 경에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베가스는 BC 740년에 브가히야를 죽이고 732년에 죽었다. BC 732년 호세아가 왕이 된 것은 아시리아 연대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베가가 아람 왕 르신과 연합하여 유다 왕 아하스를 공격했을 때,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것으로 아시리아 왕이 의무를 다했지만 유다는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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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요약

 

그는 고향 길르앗 사람들의 도움으로 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다.

 

BC 732년 경 베가는 아람 왕 르신과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위협했다. 동맹의 주된 이유는 아마도 BC 742년 경 므나헴에게 많은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했던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의 또 다른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두 왕은 군대를 통합하고 유다의 아하스에게 압력을 가해 그들과 합류시키려고 했다. 베가는 유다를 습격하고 많은 포로들을 사마리아로 데려갔다. 그러나 선지자 오뎃과 몇몇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책망을 받아 그는 그들을 풀어주고 돌려보냈다.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이 예루살렘 성벽 앞에 나타나 항복을 요구했다. 이 당시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와 그의 왕을 지원하기 위해 왔다. 동맹군은 아마도 동맹에 유리한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의 왕좌에 세우겠다고 제안했다(사 7:6). 하지만 아하스는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가 즉각 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하스가 티글라트 필레세르에게 경의를 표한 후 아시리아 사람들은 다마스쿠스를 약탈하고 아람을 합병했다. 왕하 16:9에 따르면 아람인은 추방당했고 르신은 처형당했다. 왕하 15:29에 따르면 디글랏 빌레셀(티글라트 필레세르)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욘, 아벨벳마아가, 야노아, 게데스, 하솔을 점령했다. 그는 납달리의 온 땅을 포함하여 길르앗과 갈릴리를 점령하고 백성을 아시리아로 추방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는 또한 그의 비문 중 하나에 이 일을 기록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의 캠페인 /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가의 군대 대장인 호세아 벤 엘라(즉,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그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 비문에서 티글라트 필레세르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호세아를 죽였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추론하는 것은 아시리아와의 싸움에서 질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들의 왕을 몰아내고 정복자인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에게 복종했다는 것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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