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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문명

라티나 가도(Via Latina)

by 금곡동로사 202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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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나 가도와 무덤 유적지

 

비아 라티나(라틴어 "라틴 길"의 의미)는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 km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로마 도로였다.

 

 

경로

 

길은 로마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포르타 라티나에서 알기다스 산의 길로 이어졌다. 도로는 로마의 초창기 군사 역사에서 중요했다. 캄파니아로 가는 경로로 아피아 가도보다 앞서 존재했으며 BC 334년 칼레스에 라틴식민지가 세워지고 로마에서 도로로 접근할 수 있었던 반면 아피아 가도는 22년 후에 만들어졌다. 또한 직선처럼 곧은 아피아 가도가 극복해야 했던 공학적인 어려움 없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병참선을 따른다. 노선으로서, 라비카나 가도보다 앞섰지만, 라비카나는 나중에 선호되었을 수 있다.

 

교차점 이후, 라티나 가도는 트레루스(사코) 계곡을 따라 나폴리로 가는 현대 철도 노선을 따라 헤르니칸 언덕 마을인 아나니(프라이네스티나 가도와 합류함), 페렌티노, 프로시노네 등지를 지나게 되었다. 프레겔라이에서는 리리 강을 건너 비교적 저지대에 있는 도시인 아퀴노와 카시노를 통과했다. 그런 다음 아펜니노 산맥과 로카몬피나의 화산군 사이의 간격에 들어갔고, 원래의 도로를 가로지르는 대신, 갑자기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베나프로로 향하여, 이세르니아와 텔레세테르메로 가는 길을 통해 삼니움 고지대와 직접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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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무질서 이후, 라티나 가도는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를 포함한 저명한 로마인에 의해 수리되었다. 이 작업은 BC 27년 티불루스의 비가가 쓰여진 당시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현대의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가는 노선을 따라 루프라이(Rufrae)의 지름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노선은 현재의 카이아니엘로 철도역 근처에 다시 합류했고, 도로는 테아눔과 칼레스, 그리고 볼투르노를 가로질러 아피아 가도와 교차하는 카실리눔으로 이어졌다. 로마에서 카실리눔까지의 거리는 아피아 가도로 129 로마 마일, 베나프룸을 통과하는 오래된 라티나 가도는 135 로마 마일, 루프라이(현재 프레센차노)를 지나는 지름길로 126 로마 마일이었다. 도로의 상당 부분은 로마 근교에 존재한다. 콤피툼 아나니눔까지, 출발점에서 40 로마 마일 동안에는 어떠한 현대 도로도 따라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현대의 고속도로와 동일하다.

 

라티나 가도의 경로(빨간선), 1886년 지도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포르타 라티나 / 라티나 가도의 무덤
지하묘지(카타콤) 내부의 그림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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