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쟁 이야기/고대전쟁25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1차 그리스 침공 하(下) 마라톤 전투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군은 아티카 해안을 따라 항해했고 추방된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원정대에 동행)의 조언에 따라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27 km 떨어진 마라톤 만에 상륙했다. 페르시아와 싸운 경험이 가장 많은 아테네 장군 밀티아데스의 지도 아래 아테네군은 마라톤 평원의 두 출구를 막고 페르시아군이 내륙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진군했다. 동시에 아테네의 가장 위대한 주자 페이디피데스(또는 필리피데스)는 스파르타로 보내져 스파르타 군대가 아테네를 돕기 위해 진군할 것을 요청했다. 페이디피데스는 성스러운 평화의 시기인 카르네이아 축제 기간에 도착하여, 스파르타군이 보름달이 뜰 때까지 전쟁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아테네는 적어도 열흘 동안 증원군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작은 .. 2021. 5. 29.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1차 그리스 침공 중(中) BC 490 -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의 캠페인 사실상 아테네를 고립시킨 스파르타의 혼란을 틈타 다리우스는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응징하기 위해 육해군 합동으로 원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수사에 군대가 집결했고, 함대가 모여 있는 킬리키아로 진군했다. 원정대의 지휘권은 메디아의 다티스와 사트라프 아르타페르네스의 아들 아르타페르네스에게 주어졌다. 페르시아군의 규모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다리우스가 보낸 함대는 600 척의 삼단노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수송선이 그들과 동행했는지에 대한 역사 사료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헤로도토스는 BC 480년 크세르크세스의 침공 당시 3,000 척의 수송선이 1,207 척의 삼단노선과 동행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일부는 이 숫자를 합리적인 .. 2021. 5. 27.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1차 그리스 침공 상(上) 페르시아 전쟁 중 그리스에 대한 첫 번째 페르시아의 침공은 BC 492년에 시작되어 BC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주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응징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명령했으며 두 개의 별개의 캠페인으로 침공은 이루어졌다. 이 도시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 대항한 반란 동안 이오니아 도시들을 지원하면서 다리우스의 분노를 샀다. 게다가 아테네는 이사고라스에 의해 소환된 스파르타 군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클레이스테네스가 흙과 물을 그들에게 바친 이래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다리우스는 또한 자신의 제국을 유럽으로 확장하고 서쪽 국경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BC 492년 마르도니오스가 이끄는 첫 번째 캠페인은 트라키아를 재 복속시키고, B.. 2021. 5. 27.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이오니아 반란 하(下) 반란의 종식 BC 494-493 - 반란의 종식 라데 해전 반란이 일어난 지 6년(BC 494년)에 페르시아군은 재편되었다. 가용한 지상군은 하나의 군대로 편성되었고, 다시 복속된 키프로스인과 이집트인, 킬리키아인, 페니키아인이 지원한 함대가 동반되었다. 페르시아군은 다른 거점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바로 밀레토스로 향했는데, 아마도 진원지에서 반란을 진압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대(對) 그리스 전문가인 메디아 출신의 장군 다티스는 이때 다리우스에 의해 이오니아로 파견된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그가 이 페르시아 공세를 전체적으로 지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군대의 접근을 들은 이오니아인은 마이안드로스 하구 맞은편에 있는 미칼레 산 북부에 위치한 파니오니움(신성한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 육지에서 싸우지 않기로 .. 2021. 5. 25.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이오니아 반란 중(中) 제국의 반격 BC 497-495 - 페르시아 제국의 반격 에페소스 전투 이후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는 정확한 연대가 모호하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BC 498년에 사르디스와 에페소스를 배치한다. 헤로도토스는 그다음에 반란이 확산된 것을 기술하고(따라서 BC 498년에도) 키프로스인은 1년간의 자유를 누렸고, 그래서 BC 497년에 키프로스는 행동을 취했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다우리소우와 히마이에스와 오타네스, 그들은 모두 페르시아의 장군으로, 다리우스의 딸들과 결혼했으며 사르디스로 진군한 이오니아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들의 배로 몰고 갔다. 이 승리를 거둔 뒤에, 그들은 도시들을 자기들끼리 나누어서 약탈했다." 이 구절은 에페소스 전투 직후 페르시아 장군들이 반격을 가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헤로도.. 2021. 5. 24.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이오니아 반란 상(上) 반란의 시작 아이올리스인, 도리아인, 키프로스, 카리아가 관련된 이오니아 반란은 BC 499년부터 493년까지 지속되었으며 페르시아 지배에 저항한 소아시아 여러 그리스 지역의 무력 봉기였다. 반란의 중심에는 밀레토스의 두 참주, 히스티아이오스와 아리스타고라스의 개별 행동과 페르시아가 그들을 통치하도록 임명한 참주들에 대한 그리스 소아시아 도시들의 불만이 있었다.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BC 540년 경에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그 후 사르디스의 페르시아 사트라프에 의해 임명된 원주민 참주들이 통치했다. BC 499년,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는 그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페르시아 사트라프 아르타페르네스와 함께 낙소스를 정복하기 위한 원정을 시작했다. 원정은 큰 낭패를 보았고, 그가 참주 지위에서 곧 쫓겨날 것을 감.. 2021. 5. 23.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낙소스 공방전 낙소스 공방전(BC 499년)은 다리우스 대왕의 지원을 받아 페르시아 제국의 이름으로 낙소스 섬을 정복하려는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의 실패한 시도였다. 이 사건은 궁극적으로 50년 동안 지속된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추방된 낙소스 귀족들은 자신들의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리스타고라스에게 접근했다. 밀레토스에서 자신의 지위를 강화할 기회를 찾은 아리스타고라스는 낙소스 정복을 위해 그의 대군주인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과 지역 사트라프인 아르타페르네스의 도움을 받았다. 원정군에 동의한 페르시아인은 메가바테스의 지휘 아래 200척의 삼단노선 함대를 집결시켰다. 원정군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아리스타고라스와 메가바테스는 낙소스로 가는 여정에서 다툼을 벌였고, 누군가(아마 메가바테스)가.. 2021. 5. 22.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 서막(序幕)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종종 페르시아 전쟁이라고도 함)은 BC 499년에 시작되어 449년까지 지속된 아케메네스 제국과 그리스 도시 국가 간의 일련의 분쟁이었다. BC 547년에 키루스 대왕이 그리스인이 거주하는 이오니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괴팍한 그리스인의 정치 세계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독립심이 강한 이오니아 도시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페르시아는 각 도시에 참주를 임명했다. 이것은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모두에게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BC 499년,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낙소스 섬을 정복하기 위한 원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원정은 대실패로 끝나게 되면서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에 모든 소아시아의 그리스 인들이 페.. 2021. 5. 21. 알라리아 해전(Battle of Alalia) 알라리아 해전은 BC 540년에서 535년 사이에 코르시카 부근의 티레니아 해에서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카르타고 동맹 간에 발생했다. 60척의 포카이아 선박으로 구성된 그리스 함대가 120척의 포에니 에트루리아 함대를 격파하면서 그리스인은 지중해 서부와 인근 알라리아 식민지(현재의 알레리아)로 이주했다. 배경 페니키아인은 BC 9세기와 8세기에 아프리카,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베리아에 교역소를 세웠으며 독점 무역을 창출했다.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경제가 쇠퇴한 후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광범위한 규모로 지중해 주변에서 무역을 시작한 최초의 민족 중 하나였다. 에트루리아인은 BC 8세기에 지역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여 코르시카, 사르데냐, 이베리아로 무역을 확산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 2021. 3. 15.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카데시(Kadesh) 전투 또는 콰데시(Qadesh) 전투는 현재의 레바논-시리아 국경 근처의 홈스 호수 상류에 있는 오론테스 강의 카데시 시에서 람세스 2세 아래의 이집트 신왕국의 군대와 무와탈리 2세 아래의 히타이트 제국 군대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전투는 일반적으로 이집트 연대기에 의해 BC 1274년에 일어난 것으로 보며 전술과 형성에 대한 세부 사항이 알려진 기록된 역사상 가장 초기의 전투이다. 총 5,000대에서 6,000대의 전차가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 전투로 여겨진다. 여러 개의 카데시 비문과 이집트-히타이트 평화 조약이 발견된 결과, 고대 역사상 가장 잘 기록된 전투이다. 배경 BC 1550년 경 힉소스의 제15왕조를 몰아낸 후 이집트의 신왕국 통치자들은 자국 국경의 통제권을 되.. 2021. 1. 4. 이전 1 2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