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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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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22

타라코(타라고나) 타라코는 현재 타라고나(스페인 카탈루냐)시의 고대 이름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정착촌이었다. 타라코는 로마 공화정 시대에 히스파니아 시테리오르 속주의 주도가 되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 2000년, 타라코의 고고유적은 UNESCO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원과 2차 포에니 전쟁 이 시정촌에는 해안에 정착한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과 상업적인 접촉을 한 이베리아인이 로마 이전 시대에 거주했다. 이베리아 식민지는 주로 에브로 강 유역에 위치했다. 타라고나 시정촌의 이베리아 식민지의 증거는 B.C.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서 타라코의 이베리아인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모호하다. 티투스 리비우스(Livy)는 Cissis라고 하는 op.. 2020. 12. 24.
콜로니아 클라우디아 아라 아그리피넨시움(쾰른) 콜로니아 클라우디아 아라 아그리피넨시움은 독일의 도시 쾰른으로 발전한 라인란트의 로마 식민지였다. 일반적으로 콜로니아라고 불렸고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의 로마 속주의 주도이자 이 지역의 군대 본부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행정 개혁으로 인해 게르마니아 세쿤다의 주도가 되었다. 오늘날 로마 독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CCAA'라는 비문이 있는 이전 성문의 아치를 포함하여 고대 도시의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역사적 배경 에부로네로 알려진 게르만 부족은 원래 오늘날의 쾰른 저지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행한 보복 전쟁에서 전멸되었다. B.C.38년, 라인 강 오른쪽 강둑에 거주했던 우비로 알려진 게르만 부족은 로마 장군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에 의해 에부로네족에 의해 비워진 쾰른 .. 2020. 12. 23.
루테티아(파리) 로마의 도시 루테티아(라틴어로 루테티아 파리시오룸, 프랑스어 루테스)는 오늘날 파리의 전신이다. 어원 루테티아라는 말은 "늪 근처의 장소"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갈리아 기원 갈리아 루테티아의 위치는 루테티아의 미래 위치에서 멀지 않은 파리 교외의 15 헥타르에 달하는 수백 개의 주택과 여러 주요 거리의 원형 도시화 지역인 낭테르에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끝나기 1년 정도 전인 B.C.52년, 루테티아 전투에서 파리시족과 싸웠다. 그러나 Mons Lutetius에 진을 치고 있던 베르킨게토릭스의 부관 카물로게누스가 이끄는 수비대는 요새를 점령하고 불태운 카이사르의 장군 중 한 명인 티투스 라비에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에 쓰러졌다. 로마인들은 또한 인근 믈렁에서 갈리아인을 분쇄.. 2020. 12. 23.
론디니움(런던) 로마 제국의 런던으로도 알려진 론디니움은 대부분의 로마 통치 기간 동안 로마 브리타니아의 주도였다. 원래는 A.D.47-50년 경 현재 런던 도시 부지에 세워진 정착지였다. 도시를 도로 연결과 주요 항구로 바꾼 템스 강의 주요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5세기에 떠날 때까지 로마 브리타니아의 주요 상업 중심지로 사용되었다. 1세기 중반에 마을이 건설된 이후 초기 론디니움은 현재의 하이드 파크 크기와 거의 비슷한 1.4㎢(0.5 제곱 마일)의 비교적 작은 면적을 차지했다. 60년 또는 61년에 부디카 아래의 이케니족의 반란은 로마 당국이 정착지를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그 후 파괴되었다. 로마 총독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가 부디카를 패배시킨 후 군사 시설이 세워지고 도시가 재건되었다. 약 10년 이.. 2020. 12. 23.
우르(Ur) 우르는 중요한 수메르 도시였다. 이라크 남부 디콰르 주의 현대 Tell el-Muqayyar 부지에 위치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국가 우르는 한때 페르시아만의 유프라테스 강어귀 근처에 있는 해안 도시였지만, 해안선이 바뀌고 도시는 현재 이라크의 나시리야에서 16km(9.9 마일) 떨어진 유프라테스 남쪽 기슭의 내륙에 있다. 이 도시의 시작은 B.C.3800년 경 우바이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B.C.26세기부터 도시 국가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기록된 최초의 왕은 메산네파다이다. 이 도시의 수호신은 난나(아카드어, 신), 수메르인과 아카드인(Assyrian-Babylonian)의 달 신이었으며 도시 이름은 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우누그키, 문자 그대로 "난나의 거처(우누그)". 이 장소는 1930년대에.. 2020. 12. 10.
하투샤(Hattusa) 하투샤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다. 그 유적은 현대 터키의 보아즈칼레 근처의 키질이르마크 강의 큰 고리 안에 있다. 하투샤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추가되었다. 환경 도시를 둘러싼 풍경에는 ​​풍요로운 농경지와 목초지와 숲을 위한 언덕이 있다. 더 작은 숲은 여전히 ​​도시 밖에서 발견되지만 고대에는 훨씬 더 널리 퍼져있었다. 이것은 주민들이 집과 다른 구조물을 지을 때 훌륭한 목재 공급을 의미했다. 밭은 사람들에게 밀, 보리, 렌틸 콩 같은 생계 작물을 제공했다. 아마(亞麻)도 수확되었지만, 옷의 주요 공급원은 양털이었다. 그들은 또한 숲에서 사슴을 사냥했지만 이것은 아마도 귀족을 위한 사치일 뿐이었을 것이다. 가축은 고기를 제공했다. 야질리카야의 바위 신전과 알라카회.. 2020. 12. 8.
아수르(Assur) 아수르(Aššur), 아쉬르(Ashur)와 Qal'at Sherqat로도 알려져 있으며, 구아시리아 제국(B.C.2025-1750), 중아시리아 제국(B.C.1365–1050) 그리고 한동안 신아시리아 제국(B.C.911–608)의 수도였다. 도시의 유적은 현재의 이라크, 더 정확하게는 살라딘 주의 알시르캇(al-Shirqat) 지구에 있는 지류인 자브 천(川)과 합류하는 북쪽의 티그리스 강 서쪽 기슭에 있다. 도시의 존속 기간은 B.C.2600부터 티무르 군대가 사람들을 학살한 14세기 중반까지 약 4,000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연구의 역사 아수르의 발굴은 1898년에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발굴은 1900년 프리드리히 델리취에 의해 시작되어..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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