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728x90

로마군단3

제9군단 - 잃어버린 로마 군단 사라진 로마의 제9군단이 런던에서 전멸했을까? 지난해 발간된 책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5,500명의 병사들이 브리튼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요크에서 남쪽으로 보내진 후 학살되었음을 암시한다. · 군단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AD 1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요크의 게이트웨이에 있다. · 그들은 AD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침공으로 브리튼에 도래했다. ·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론은 사이먼 엘리엇 박사가 발간한 책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그는 그 병사들이 지금의 스코틀랜드에서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지 43년 후에 영국 해안을 습격하여 요크 도시를 건설한 후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침공과 함께 이 해안에 온 로마 제9군단에게 일.. 2022. 12. 27.
로마 군단병 (BC 509-AD 170년) 갈리아의 로마 약탈은 로마의 촉매제로 가장 잘 묘사될 수 있다. 갈리아인의 도래는 그 자체로 몇 가지 발전, 특히 육중한 투창(필룸)의 사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영향은 로마 사회의 기존 경향을 가속화하는 데 있었다. 여기에는 공동체, 특히 지역 씨족들을 하나로 묶어 로마의 깃발 아래 통합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 과정이 이전에는 충분했지만, 갈리아 약탈은 고대 생활 방식, 특히 씨족 중심의 접근 방식이 더 이상 실행 가능한 선택이 아님을 확실히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약탈의 여파로 로마는 병력 증원과 추가 공격을 방어할 군사 전형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기에는 새로운 부족과 무니키피아를 창설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시민 조직(및 군 계급)에 편입시키는 것, 집정관급 군지휘관(트리부니.. 2022. 2. 1.
제국의 리메스 제국의 국경은 천연적 또는 인공적인 방어시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로마 세계를 야만인이나 외국인으로부터 구분하는 영토의 산수 장벽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강 (라인, 다뉴브, 유프라테스 등) · 산지 (다키아의 카르파티아 산맥 또는 마우레타니아의 아틀라스 산맥 등) · 사막 (이집트, 아라비아 및 시리아) 두 번째는 하드리아누스 방벽, 안토니누스 방벽, 리메스 포로리센시스, 리메스 게르마니아-라이티아의 경우와 같이 아게르(제방), 나무 울타리 또는 돌담과 해자로 구성되었다. 이 요새는 주변의 위험에 따라 다양한 거리에 감시탑과 방어탑이 있었다. 주요 리메스 첫 번째는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선언한 유럽 북부 전선으로, 차례로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다. - 리메스 브리타니쿠스 하드.. 2021. 12. 22.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