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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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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2

5개의 유명한 피로스의 승리 고대 세계에서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승자가 소모로 인해 더 나빠졌을 수도 있는 다섯 전투를 돌아보자. 1. 헤라클레아와 아스쿨룸 전투 원래 피로스의 승리는 로마인과의 값비싼 전투로 인해 실패했던 그리스 에페이로스(아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피로스는 로마 공화국이 그들의 조국에 대한 지배력이 늘어난 것에 분개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도시인 타렌툼과 동맹을 맺은 후 BC 280년에 이탈리아를 첫 번째 침공했다. 그는 약 25,000명의 병력과 로마의 군단병들이 처음으로 상대해보는 20마리의 전쟁 코끼리들을 이끌고 도착하였으며, 곧장 헤라클레아에서의 첫 전투에서 유명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그는 아스쿨룸에서 벌어진 격렬한 충돌에서 로마군을 두 번째로 이겼다. 피로스는 자신을 근래의 알렉산드.. 2022. 2. 16.
노예 반란의 피 묻은 역사 "고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노예를 소유하는 거의 모든 주요 사회는 노예 반란에 직면했다." 노예 제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함무라비 법전(BC 1760년)은 노예들이 주인의 자리를 꿰차도록 도운 것에 대한 처벌인 죽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 이후로, 고대부터 19세기까지 노예를 소유하는 거의 모든 주요 사회는 노예 반란에 직면했다(그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했다). 다음은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노예 반란들의 일부이다. 스파르타 대 헤일로타이 스파르타인으로 더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군국주의 라케다이몬인은 도시 국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상당한 수의 노예를 필요로 했다. 사실상 모든 군사 연령기의 스파르타 남성들은 전쟁 훈련을 하면서, 헤일로타이들은 군국주의 도시국가에서 일종의 소..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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