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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남유다] 아달랴

by 금곡동로사 202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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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랴를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딸이며, 다윗 왕의 후손 여호람 왕의 아내로서 남유다의 왕비였으며 나중에 여왕이 되어 직접 통치했다(BC 841-835년 경).

 

 

성경적 이야기

 

아달랴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히브리 성경의 왕하 8:16-11:16과 대하 22:10-23:15에 나와 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의 딸로 간주된다. 아달랴가 남유다의 여호람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조약을 맺었으며 그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여호람은 그의 여섯 형제를 죽였다. 여호람은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의 치세 5년에 남유다의 왕이 되었다(왕하 8:16).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은 아달랴의 형제였다.

 

유다의 여호람은 8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할아버지 아사는 야훼를 경배하고 그의 길을 걷는 독실한 왕이었다. 그러나 여호람은 그들의 모범을 따르지 않고 야훼를 배척하고 오므리 가계에서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했다. 여호람의 유다 통치는 불안정했다. 에돔은 반란을 일으켜 그들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다. 블레셋 사람, 아랍인, 에티오피아인의 습격은 왕궁을 약탈하고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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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람이 죽은 후 아하시야는 유다의 왕이 되었고 아달랴는 왕대비가 되었다. 아하시야는 22세 때부터 1년 동안 통치했으며(왕하 8:26) 북이스라엘의 여호람과 함께 북이스라엘에 체류하던 중 사망했다. 예후는 두 사람을 야훼의 이름으로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있는 아달랴의 대가족 전체를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를 종식시켰다.

 

아하시야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달랴는 유다의 왕좌를 점령하고 오므리 왕조의 남은 자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왕위 계승자를 처형하도록 명령했다(왕하 11:1). 그러나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유다의 여호람과 아달랴의 손자인 겨우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요아스를 구할 수 있었다. 요아스는 여호세바의 남편인 여호야다 제사장에 의해 비밀리에 자랐다.

 

"강력한 여왕"으로서 아달랴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유다에서 바알 숭배를 확립했다. 6년 후 아달랴는 여호야다가 요아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밝히고 그를 유다의 왕으로 선포하자 놀랐다. 그녀는 반란을 막기 위해 서둘렀지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요아스를 보고 놀라는 아달랴를 묘사한 그림 1,2 / 왕위에서 쫓겨나는 아달랴 / 체포되는 아달랴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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