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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문명

로마의 경제

by 금곡동로사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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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우르베)

고대 로마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의 큰 불평등의 예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종종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당시 수도는 가능성의 나라, 그 당시의 미국이었으며 도시화 현상이 압도적으로 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살 곳이 없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박해받거나 수배된 사람들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피신했다.

조잡하게라도 거래를 아는 사람들은 로마에서 생계를 꾸렸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1. 국가는 무산자에게 곡물과 의무적인 돈을 기부했다.

2. 아우구스투스 이후로는 로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땅 전체에서 가장 낮은 임대료가 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한마디로 로마는 공공주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료로 주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는 시행되지 않으며 무료도 저렴하지도 않다.
3. 로마는 연속된 공휴일이 있었고, 일 년의 절반은 일을 하지 않았으며, 경기와 행사는 물론 신전 옆에서 의식과 파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종류의 노점과 함께 크고 작은 박람회로 가득했다. 축제 기간 동안 요리를 했든 아니든, 음식, 음료, 봉헌 테라코타 조각상, 신의 상징, 도구, 꽃병, 그릇, 가죽 부대, 해당 신전 및 해당 축제의 기념품, 부적과 행운의 장식, 목재 제품, 청동, 구리, 철제, 스툴, 보석함, 목걸이, 팔찌, 발찌, 반지, 로마식 브로치 그리고 핀이 함께 판매되었다. 그 뒤에 이발사, 안마사, 향수, 향유, 오일 및 화장품 판매자와 포주, 중개상과 창녀들이 나왔다. 축제가 있는 사원들 옆의 노점은 물론 키르쿠스 옆, 포룸, 목욕탕, 황실 정원 근처에 있어서, 오늘날과 달리 그들은 항상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어 어쨌든 사업은 이루어졌다. 이는 꽃집, 점쟁이, 재단사, 떠돌이 화장 전문가를 포함한 많은 장인과 행상인의 존재를 보장했다.
4. 개선식이 열리는 동안과 황제, 집정관, 고위 공직자의 선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여분의 돈과 포도주를 받았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고 임시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지붕이 있었고 밀 배급뿐만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행해질 소규모 사업의 가능성, 심지어 수수료까지, 그리고 도둑이나 거지도 있었다. 그래서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자고 씻고 비누칠할 무료 목욕탕이 없는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덜 가난했다.

게다가, 목욕탕에는 무료 체육관이 있었고, 약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있는 노점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료 공연을 즐겼기 때문에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오락에도 참여했다.

 

숙박 시설

 

로마인은 무엇보다도 무역을 위해 여행을 했지만, 도시 근처나 멀리 떨어진 곳에 시골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반란과 국경 위협 또는 정복의 경우 국경과 그 너머로 자주 여정을 떠났다. 그래서 길에는 집정관 도로를 따라 온갖 종류의 숙박 시설들로 가득 차 있었고 촘촘한 네트워크는 항상 작동하고 모든 필요를 충족했다.

로마인은 로마 제국 전역에 집정관 도로를 건설했는데,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보존되어 있는 견고한 도로로 마차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이랑을 따라 지나가는 소위 로마식 포장도로라고 불리는 돌길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이유로 숙박 시설은 도시 안팎에서 번성했고, 가족과 노예를 포함한 많은 관리인, 마부, 주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그러나 속박 시설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중에는 국가가 소유하는 가장 호화로운 만시오네스, 개인이 운영하는 카우포네스, 레스토랑의 일종이지만 덜 호화로운 타베르나 비나리에와 오늘날의 레스토랑과 같이 부유한 곳과 마차와 동물을 위한 휴식처인 무타티오네스가 포함되었으며 12-18마일 간격으로 이른바 포스틸리온스로 설치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바의 일종인 따뜻한 것과 차가운 음료가 있는 테르모폴리움이 있었다.

 

 

타베르나

그래서 이탈리아 용어 타베르나는 다과점인 트라토리아에서 레스토랑까지 의미한다. 그러나 로마인 사이에서는 모든 소매상의 상점이기도 했다.

타베르나이는 보통 도시의 거리를 따라 아주 다른 많은 상점이 있었다. 오일은 대부분 스페인에서 생산되었지만, 가장 좋은 것은 항상 이탈리아산, 특히 라치오와 토스카나산이었다. 제국에서 대부분 와인이 생산되었지만, 그들이 이탈리아에 널리 있는 용암 토양에서 최고의 와인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현지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우유와 치즈. 여러 빵을 굽는 화덕. 가방, 벨트 또는 끈에 달린 펜던트, 가죽 외투를 위한 무두질 작업 및 가죽 채색이 가능한 장인의 작업장. 소변과 석회를 이용해 무두질하는 수선공. 금, 은, 호박, 보석, 페이스트 글라스를 가공하는 세공업자. 무기 및 갑옷, 편자 또는 손잡이, 두레박, 대야, 냄비와 같은 철제 도구를 만드는 대장장이. 석공, 화가, 제도공, 미장공, 조각가의 작업장. 주로 흑백이지만 다양한 돌로 색을 낸 모자이크, 페이스트 글라스도 있는 모자이크 공방. 비누 및 향수 생산을 위한 작업장. 색유리창뿐만 아니라 꽃병, 작은 병, 삼각 병 유리 공예가. 보석을 가공하는 보석 세공업자. 의사들이 환자를 받고 약을 판매하는 실험실. 의료진 중에는 이를 뽑을 뿐만 아니라 보형물과 틈을 메워주는 치과의사도 있었다. 주문 시 다양한 조제가 가능한 약국 및 약초상. 풀로니코, 즉 세탁소 및 건식 세탁소. 테라코타 조각상이나 정원에 걸려있는 양면 메달리온 또는 오실룸, 마이나드와 님프가 있는 그리스 양식이 우세한 얕은 돋을새김이 있는 꽃병도 직접 만드는 도예의 대가. 오푸스 세크틸레, 즉 바닥용 대리석 상감 또는 이미지 구성용이나 가구 장식용 대리석 작업 전문가. 베틀로 무늬가 그려진 천이나 다마스크나 비단의 테두리를 적용하는 직조공, 그리고 결과적으로 재단사. 대개 여성인 꽃 판매자. 구리와 청동 또는 뼈로 만든 브로치와 핀을 파는 사람. 향신료 및 가룸 판매자. 남성용 이발사 및 여성용 미용사. 오리엔트의 것을 포함하여 목재로 조각, 상감 또는 채색하는 목수에서 조각가까지 이르는 가구 제작자. 동그란 공과 주사위에 이르기까지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인형 및 게임 판매자. 호색적인 관습과 매춘을 위한 시간제 임대주.

 

화덕

그러나 가장 많은 상점은 매우 무거운 맷돌로 곡물을 갈아 빵을 굽고 판매하는 제빵사들의 가게였다. 보통 노새가 끄는 맷돌 외에도 화덕과 반죽 장치가 있었는데, 화덕은 돌이나 구운 벽돌, 반죽기는 돌로 만들었다.


정육점

 

델리카트슨 가게의 내부를 매우 자세하고 세심하게 표현한 옅은 돋을새김이다. 단정한 머리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귀족 부인은 앉아서 점주가 갖다 주기를 기다리면서 판을 살펴보고 그녀의 계정을 만들고 있다.

갈고리에 걸려있는 돼지 머리, 족발 두 개, 햄 반 개, 스테이크, 식칼, 저울.
정육점 주인은 오늘날에도 일부 마을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무줄기 부분으로 만든 원목 횃대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식칼을 휘두른다. 사용하지 않은 고기의 잔해를 모으기 위한 대야가 밑에 있다.


라 풀로니카

옷감을 세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염색이나 작업도 할 수 있는 세탁소였다. 다림질하는 곳이 있는 큰 입구에서 아트리움으로 들어갔는데, 아트리움은 임플루비움이 직물을 세탁하는 욕조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방들은 세탁한 옷이 널려 있는 테라스로 덮여 있었다. 3개의 다른 연결된 욕조와 5개의 두드리는 욕조가 열주가 있는 안뜰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는 풀로니카에서 일하는 노예들을 위한 부엌(자유민 일꾼은 집에 가서 먹었음)과 화장실도 있었다. 기존에는 소다나 소변(사람이나 동물)을 섞은 물에 두드리는 대야에서 옷감을 발로 밟아 얼룩을 제거했다. 그런 다음 점토나 흙으로 연하게 하고, 다림질로 두드려 질감을 재 응축한 다음, 풀론 물질(작업을 위해 섞은 화학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에 물로 헹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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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마리우스

돌과 보석 세공사, 페이스트 글라스와 카메오 공예가. 그중 일부는 두 가지 색상으로 카메오를 만들었고 그다음 홍옥수 또는 청옥수, 자수정, 산호 또는 붉은 벽옥, 니콜로, 흑마노 등으로 카메오를 만들었다.

파브리카이는 실제로 수공예품을 의미했다.

 

· 라나이올리와 펠터(코아크틸리아리)에 의해 수행된 재료를 짜고 끓인 직물, 계산대에서 판매.
· 틀 조각상의 실행과 판매 실험실. 모든 사람이 대리석 조각상을 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테라코타나 석고 틀에 의존했는데, 실제로는 종종 대리석 가루와 혼합되어 더 오래 지속되었다.
· 검과 단검을 만드는 대장간은 기존의 검을 수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밤에 여행하거나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한 개인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에 군인들은 자신의 대장간을 가지고 있었다.
· 꽃병이나 청동상, 청동 장신구, 가구용 주물. 가구에는 청동이나 철로 주물 한 장식품과 1500년까지 중세 시대에 잊힌 물건인 가구용 경첩, 문짝용 경첩도 있었다.

· 선반이 있는 테라코타를 위한 실험실 또는 조각상을 휘한 매트릭스, 또는 지붕의 타일이나 기둥을 위한 매트릭스, 또는 장식용 꽃병이나 암포라용 선반을 갖춘 도공.
· 벽돌 공장을 위한 가마들. 물과 섞은 점토를 나무 상자에 넣고, 혼합물이 건조되면 벽돌을 꺼내어 가마에 넣었다.
· 목공 공방에는 가구용 회전기, 캐비닛 제작자와 가구 목수 외에도 통, 바스티, 대야, 심벌즈, 리라, 플루트, 보트, 드럼, 풀무, 나막신 제작자가 포함되어 있었고 테베레 강의 흐름을 이용해 움직이는 장치인 보트에 물레방아 바퀴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보르델리

매춘 업소는 주로 여관이나 선술집과 연계되거나 거리에 나있는 문이 있는 단칸방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크고 조직적인 것들이 있었고, 문 위에는 여성들이 기꺼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상대적인 가격과 함께 나타내는 그림들이 있었다. 폼페이에 성적인 장면을 그린 귀중한 그림 25점이 보존되어 있다.

 


테르모폴리

'뜨거운 음료를 파는 곳'을 의미해야 하는 테르모폴리는 사실 선술집이었다. 그곳은 일반적으로 블록의 구석에 위치했으며 위층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다락방이 있었다. 여기서 손님은 휴식을 취하거나 관리자가 제공한 매춘부를 만날 수 있었다.

판매대 위에는 단지, 꽃병과 컵이 놓여 있거나, 뜨거운 음료와 차가운 음료를 보관할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놓여 있었다. 와인 외에도 애피타이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된 고기, 치즈, 올리브 등이 제공되었다.

샹들리에 역할을 하는 대형 청동 램프가 천장 중앙에 걸려 있어 저녁에도 테르모폴리에 다닐 수 있었다. 종종 피자와 비슷한 빵과 포카치아 요리를 위한 작은 화덕도 있었다.

다른 경우에는 보스코레알레의 안티쿠아리움에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인근 아셀리나의 테르모폴리움에서 청동, 점토, 유리질 도기뿐만 아니라 오일 램프, 수많은 동전과 뼈 지갑과 같은 일상용품이 판매대에서 발견되었다... 이미 로마인은 일반적인 가죽 가방 외에도 뼈나 상아로 된 지갑을 발명했다.


도축장

육류 및 어시장이었다. 도축장은 물청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흙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지만 벽에는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때로는 바닥에 신과 함께 작은 신전이 그려져 있었다. 오스티아에 있는 생선가게의 프레스코화는 환상적인 물 그림과 투명도로 아름답다.


가죽 공장

 

건물은 관리인의 거처로 현관 등 작업 구역은 6개의 구획으로 나뉘고 5개의 칸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그중 3개는 독에 물을 공급하는 관로가 벽으로 막혀 있다.

뒤쪽에는 오푸스 시그니눔으로 덮인 15개의 원형 석조 대야가 있으며 물을 넣고 빼는 구멍이 있다. 12개는 큰 가죽의 태닝 유성법에 사용되었고 3개는 작은 가죽의 암석 명반에 사용되었다.

중앙 현관 아래에서 동물의 가죽을 벗긴 후 타닌이 함유된 통에 가죽을 담갔다. 위층에는 가죽을 널어 말렸다. 안뜰 뒤쪽에는 해골과 석공의 도구와 함께 유명한 모자이크가 있는데, 죽음에 대한 미식가의 성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로 올리토리오

포룸 홀리토리움 또는 곡물과 콩과 식물 시장. 그것들은 자루에 담겨 알루미늄이나 구리 국자로 펐다. 당연히 철이나 청동으로 된 저울과 대저울을 가지고 있었고 추는 납, 청동, 테라코타 재질이었다.

폼페이에는 두 천재의 그림이 있는데, 한 명은 앉아서 관찰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저울을 갖추고 있다. 비록 콩이 아메리카에서 수입되었을지라도 로마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었으며 아메리카산보다 품질이 좋지는 않아도 지역과 지중해 콩 종류가 있었다.

 

 

 

출처 : RomanoIm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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