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오세 중기의 해안선 (1600만-1000만 년 전)
이 지도는 1600만 년 전의 테티스 해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오늘날 지중해만이 남아있다(점선은 오늘날 해안선을 나타내고 있으며, 파라 테티스 해는 흑해, 카스피해, 아조프해로 남아있다).
일련의 지구 지각 움직임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처음으로 연결시킨 지 약 200만 년 후인 중기 마이오세 시대이다. 이 육지 연결을 통해 유인원과 원숭이를 비롯한 아프리카 동물들이 유럽과 아시아로 건너갈 수 있었고, 일부 설치류와 고양이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대륙판 사이의 충돌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산맥인 피레네 산맥, 알프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 자그로스 산맥을 밀어 올림으로써 이전의 평평한 경관을 변화시키며 주요 지질학적 격변을 야기했다. 동아프리카의 산지와 열곡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 균열 지점에서 대륙이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결국, 이는 소말리아가 아프리카에서 갈라지게 되면서 새로운 만을 형성하기 위해 바닷물이 밀려들게 되었다).
지리적 변화는 점진적인 기후 및 환경 변화를 동반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마이오세 중기와 후기 동안 건조한 환경이 초원의 확산을 야기했다. 동물들은 이러한 변화에 반응하여 적응했고, 이는 최초의 호미노이드(유인원) 출현을 촉발했을지도 모른다.
빙하기 유럽의 변화하는 환경
이 지도는 빙상이 최대 범위일 때는 아니지만 현재보다 날씨가 더 추웠던 유럽을 묘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해수면이 낮아진 결과로 해안 평야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제도는 대륙과 연결되었다. 마찬가지로, 북유럽에는 툰드라로 덮여 있어 삼림지대가 없었고 일부 지역에는 침엽수가 있었다. 낙엽수들은 유럽 남부로 제한되어 분포했을 것이며, 일부 북부 지역에는 왜소한 품종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식생 지대는 북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발트해는 북해와 단절되어 깊은 염호를 형성했다. 멕시코 만류의 따뜻한 물은 추운 시기에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며, 북서 유럽 땅이 더 냉각되도록 했을 것이다. 기후의 변화를 반영해 식생 지대가 바뀐 것처럼 동물의 분포도 변화했다. 오늘날의 패턴은 불과 10,000년 전에 확립되었다.
BC 12000년 유럽 북부
브롬 문화(Bromme-Kultur)가 출현하기 약 400년 전인 BC 12000년경 유럽 북부의 대략적인 해안선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두 연대 사이에 변화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검은색 점선은 오늘날의 해안선을 나타낸다.
빙상은 이 단계에서 후퇴하기 바쁘지만, 스칸디나비아는 여전히 덮여 있고, (오늘날의 발트해의 기원을 이루는) 앤킬러스 호수는 녹기 시작한 물로 막 형성되고 있었다. 아흔스부르크 문화로 알려진 지역이 강조되어 나타나 있다. 지금은 북해 아래에 있는 도거랜드는 그런 점에서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만약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면 아마도 아흔스부르크가 그 지역으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아흔스부르크 문화 구역과 브롬 문화 구역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고, 상당히 겹쳤으며, 그들의 유사성으로 인해 하나의 문화로 통합할 것을 제안할 수도 있다.
BC 9000년경 스칸디나비아
이 시기에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프로이센에 발트해 이전의 수렵-채집 부족들이 정착했으며 이들은 모두 동일한 문화적 흔적을 공유한다. 이들은 두 부류에 속하는데, 하나는 남쪽에 위치한 초기 스위데리안 문화에서 발전하여 지역에서 지배적이었던 발트 쿤다(Kunden) 문화이다. 다른 하나는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에 위치한 마달렌-아흔스부르크 문화로, 아마도 쿤다 문화를 풍부하게 했을 것이다.
BC 1900-1650년 유럽 동부의 발칸 반도와 그리스
BC 2000년경 얌나야 문화가 끝날 무렵에 (1천 년 기에 스키타이인이 된) 사템어를 사용하는 동부 인도 유럽인이, 켄툼어를 사용하는 서부 인도 유럽인에게 폰토스 스텝을 떠나도록 '장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부 인도 유럽인의 이주 흐름은 적어도 이보다 1,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프루트 강을 건넌 후 다뉴브 강 유역에 진입하여 강을 따라 서쪽으로 부다페스트까지 모여들었다. 남서부 인도 유럽인 무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일리리아인(이탈리아어계의 영향을 받아 인도 유럽인의 두 주요 단위 사이에 확실한 구분선이 없음을 시사함), 에피로스인, 도리아인, 아이올리아인, 이오니아인, 마케도니아인, 트라키아인, 다키아인, 프리기아인과 아마도 아르메니아인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원시 미케네인은 가장 늦게 길을 떠난 켄툼어 사용자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그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이주가 늦었을 것이다. 그들은 발칸 반도를 거쳐 그리스로 진출하여 500년 이상 에게 해를 지배할 문명을 만들었다.
다뉴브 강을 따라 이동한 부다페스트에 가까운 부족이나 무리는 적어도 세 개의 하위 집단으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카르파티아 산맥에 의해 보호되는 트란실바니아(지도 상단 중앙에 있는 오토마니 문화 지역)로 이동했다. 헝가리의 주요 집단은 점차 서쪽으로 걸러져 초기 이탈리아어계와 다양한 소규모 집단이 되었다. 세 번째 집단은 바이에른과 스위스로 갈라져 원시 켈트어족이 되었다.
BC 1200년 유럽 동부의 발칸 반도와 그리스
BC 13세기 말경 지중해 동부 지역 전체가 가뭄과 농작물 수확 손실을 입어 타격을 받았다. 식량 공급은 감소했고, 다양한 작은 집단의 습격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BC 1200년경, 이 범람은 파괴, 유기, 이주의 물결로 바뀌었다.
남서부 인도 유럽인의 경우, 그 이주는 아마도 소규모 이동과 무역을 위해 이미 일부가 활성화된 경로를 따라 남쪽의 미케네 그리스로 데려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길에 따라 나뉘었는데, (이러한 분할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리리아인은 서쪽 해안으로 향했고, 에피로스인은 미케네 점령지의 가장자리에 같은 행동을 했으며, 트라키아인과 프리기아인은 동부 해안으로 향했고, 마케도니아인은 양쪽 해안 사이에 들어갔다. 도리아인,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아인은 미케네와 에게 해 제도로 향했다. 이오니아인은 심지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여 흑해 지역에서 원시 그리스인의 정착을 시작했다. 다키아인은 겉보기에 가장 적게 움직인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다뉴브 강변을 따라 늘어난 자원과 낮은 인구 수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BC 1200-750년경 후기 청동기 문화들
유럽의 후기 청동기 문화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주로 언필드 문화와 그 지역 파생물, 그리고 두 개의 주요 비 지중해 청동기 시대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켈트족의 할슈타트 문화가 생겨난 것도 언필드 문화에서였다.
출처 : The History F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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