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유럽/그외

유럽 역사의 주요 지도들

by 금곡동로사 2022. 3. 11.
728x90

476년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526년 동로마 제국의 재정복 전쟁 직전

 

 

814년 카롤루스 대제 사망 당시

 

 

900년

 

켈트 세계에서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슬라브 세계로 이어지는 거대한 포물선 속에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고 있었다. 900년에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000년

 

1000년의 서유럽은 사막을 건너는 광범위한 대상 무역망을 가진 이슬람 세계에 비해 발전이 느렸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인구는 약 31만 명이었지만 로마는 3만 6천 명, 파리는 2만 1천 명에 불과했다. 이와는 달리, 이슬람 스페인의 코르도바는 45만 5천 명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바이킹들은 발트해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사이에 키이우 루스를 연결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북유럽에서 교역망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바이킹들에게 거의 왕국 전체가 황폐화되면서, 잉글랜드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리던 잉글랜드인들은 농가에 정착한 덴마크인들을 도살하는 것으로 대응하며 보복했고, 마지막으로 덴마크의 통치를 받았지만 잉글랜드는 곧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기독교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야만인의 침략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확립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기독교화된 국가들로 빠르게 변모했다. 키이우 루스는 최근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하여 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로 성장했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유럽 대륙의 삼림 벌채가 시작되었다. 1000년에 이탈리아 도시들의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면서 도시 생활의 귀환으로 간주되었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서는 다양한 앵글로색슨 왕국들이 통합된 잉글랜드 왕국으로 발전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기독교화는 초기 단계에 있었다. 수세기 동안 인적이 끊겼던 런던은 10세기에 다시 잉글랜드의 주요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교황권은 독일 황제 오토 3세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 시기 교황권은 쇠퇴기를 거쳤으며, 이를 "암흑기"("창부 정치" 또는 "매춘부의 지배")라고 불렀다.

마케도니아 왕조 하의 비잔틴 제국은 불가리아 제1제국과 길고 힘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헝가리는 1000년에 기독교 국가로 세워졌다. 남부 이베리아 반도는 여전히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다.

 

 

1097년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1190년 중세 성기

 

중세 성기는 1000년경부터 1250년경까지 지속된 유럽 역사의 한 시기이다.

1000년에서 1300년 사이의 3세기 동안 유럽의 인구는 두 배로 증가했다. 기대수명은 아마도 1000년경의 25세보다 훨씬 높지는 않았지만 1300년에는 35세에 가까웠을 것이다.

 

1250년(유럽의 인구는 6천만-9천만 명으로 추산됨)까지 강건한 인구 증가는 19세기까지 일부 지역에서 다시 볼 수 없었던 수준에 도달한 유럽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1226년

국경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부족 경계는 점선으로 나타나 있다

 

중세 유럽의 교역로

 

녹색 : 한자 동맹의 경제권, 다홍색 : 제노아의 경제권, 노란색 : 베네치아의 경제권

 

 

14세기 초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는 전체 인구의 1/3인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은 샤를 4세가 사망한 후 오랫동안 지속된 백년전쟁에서 고군분투했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다.

14세기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이탈리아 르네상스 및 오스만 제국의 성립을 위한 강력한 분리적 정체성의 시작을 나타냈다.

 

 

1350년 오스만 침공 이전

 

 

1400년 유럽의 대도시

 

주요 중세 도시
2만 명 초과 : 뤼베크, 세비야, 툴루즈, 마그데부르크, 위트레흐트, 브로츠와프, 아미앵,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3만 명 초과 : 그단스크, 바르셀로나, 로마, 아비뇽, 마르세유, 브뤼셀
4만 명 초과 : 프라하, 쾰른, 투르네, 루벤, 이프르, 리에주
5만 명 초과 : 브뤼허, 나폴리
6만 명 초과 : 헨트
8만 명 초과 : 안트베르펜
9만 명 초과 : 피렌체, 베네치아
10만 명 초과 : 파리, 밀라노
50만 명 초과 : 코르도바, 콘스탄티노폴리스

 

728x90

 

15세기 유럽

 

 

1490년

 

헝가리 왕 마차시 1세(마티아스 코르니부스)의 치세 끝무렵의 유럽.

 

 

1500년

 

 

1519년

 

 

1560년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를 시작하여 개신교 교회를 재건했고 프랑스는 대륙에서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 1560년대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1560년과 1715년 사이에, 유럽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지 30년뿐이었다.

 

 

1600년 유럽의 대도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30년 전쟁 종식)

 

 

1714년 위트레흐트 조약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종식)

 

 

1748-1766년

 

 

1789/90년 프랑스 혁명 전야

 

18세기는 서쪽에서 힘과 부를 위한 투쟁에서 영국이 점차 우위를 점한 반면, 러시아는 동쪽에서 지배적이 되었다.

 

 

1812년 프랑스 제국 당시

 

프랑스 제국은 19세기 초에 유럽에 대한 프랑스의 패권을 확립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지시한 제국이었다.

1804년 5월 18일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프랑스 통령정부의 시대를 끝냈다. 프랑스 제국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및 동맹국에 대한  제3차 유럽 연합 전쟁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는 동안 유럽 본토에서 군사적 지배를 달성했다.

1812년 전성기에 프랑스 제국은 130개의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고 4,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다스렸으며,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바르샤바 공국에 대규모 군대를 두고 있었다.

 

 

1867년 북독일 연방 결성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 이후

 

 

출처 : Vivid Maps

728x90

'유럽 > 그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련을 설명하는 역사 지도  (0) 2022.10.22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옛 지도들  (0) 2022.05.21
북유럽 (1560-2017년)  (0) 2021.12.31
선사 시대 유럽  (1) 2021.12.28
루스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기원  (0) 2021.12.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