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유럽/중세유럽

중세 유럽 (814-1300년)

by 금곡동로사 2021. 12. 30.
728x90

814년 스칸디나비아

 

발트해 동쪽의 슬라브족 영토에 대한 스웨덴의 관심과 탐사는 점차 커져갔고, 노브고로드의 류리크라는 핀족이 키이우(키예프) 대공국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크벤란드로 알려진 북쪽 미지의 지역에서 스웨덴인과 크바니족은 통합되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스웨덴인이 지배적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크바니족은 크벤란드 남부 지역 주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결국 핀란드인이 된 다른 많은 부족에는 타바스터인(현재의 핀란드 중남부), 카리알라인(현재의 핀란드-러시아 국경에 있는 발트-핀란드인), 사보니아인(현재의 핀란드 중동부 지역에 있는 카리알라인과 타바스터인의 하위 집단)이 포함되었다.

 

 

843년 베르됭 조약 당시 프랑크 제국

 

프랑크 제국의 경건왕 루도비쿠스는 그의 장남 로타리우스를 위해 제국을 그대로 두려고 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 생각에 반발했다. 843년 베르됭 조약은 카롤루스 대제의 생존한 세 손자들 사이에서 제국의 공식적인 분열을 확인시켜주었고, 분할된 서쪽과 동쪽은 궁극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기반이 되었다.

 

 

862-882년 유럽 동부

 

전승에 따르면, 862년 류리크는 노브고로드를 다스리도록 초청되었다. 그의 친척들은 이즈보르스크와 벨루제로에서 유사한 (그러나 그보다 더 하위의) 통솔권을 받았으며, 이로써 최북단 슬라브족 사이에 최초의 루스 영토가 수립되었다.

다시 전승에 따라, 882년 류리크의 친척 중 한 명인 올레는 두 명의 하급 루스 귀족들로부터 키이우를 탈취했다. 동부 슬라브족의 중심부에 있는 이 정착지는 루스 군주들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키이우는 약 3대에 걸쳐 200년 된 하자르 제국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고, 그동안 슬라브족을 약탈하고 정복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비교적 유순하고 하나의 깃발 아래 통합되어 행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962년 게르만 공국들

 

10세기의 독일은 검은색 선 내에 보이는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황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경쟁적인 이해관계와 조각난 권력 기반이었으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제국 바깥으로 영토를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동쪽과 남쪽으로 다양한 접경 또는 국경 지역을 형성한 다섯 개의 거대한 부족 공국들이었다.

 

728x90

 

 

1000년 발트해 연안 부족들

 

1000년경 발트해 부족의 최종 위치는 게르만인에 의해 잘 알려져 있으며, 비록 작업을 완료하는 데 몇 세기가 걸렸고 리투아니아인은 결코 그들에게 정복당하지 않았지만, 게르만인은 그들을 제압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1000년 스칸디나비아

 

정확히 언제 하나로 통일된 스웨덴 왕국이 형성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5세기와 6세기에 데인인이 남쪽으로 이주한 이후로, 이 지역은 다른 소규모 집단들과 함께 주로 스웨덴과 기트라는 두 개의 더 큰 초기 왕국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발트해 연안의 부족들과 중부 유럽의 왕국들 사이에 더 나은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부족들이 학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독일 십자군이 발트해 지역에 대한 훨씬 더 크고 직접적인 관심을 갖기 전야였다.

 

 

1054-1132년 유럽 동부

 

1054년 현공 야로슬라프가 사망하면서 류리크 왕조의 권력이 부계 연공서열을 통해 약해지는 종말을 맞이했다. 그의 후계 분할은 곧 그의 아들들이 서로에 대해 경쟁 공국이 되면서 키이우를 약화시켰다.

키이우는 여전히 이들 공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계승권 다툼에 곧 휘말리게 되었고 결국 키이우 루스는 분열되었다. 폴로츠크의 이교도 군주 프세슬라프는 노브고로드를 점령하고 불태웠으며, 1068년 야로슬라프의 세 아들이 튀르크계 쿠만족에게 패배한 후에 그는 키이우를 점령하고 루스의 왕권을 잠시 차지했다.

키이우 루스는 볼로디미르 2세 모노마흐(1113-1125년)와 그의 아들 므스티슬라프 1세(1125-1132년)의 치하에 다시 어느 정도 통일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요소들이 쇠퇴를 촉진하고 있었다.

 

 

1300년 스칸디나비아

 

13세기 중반에 스웨덴은 현재 외스터란드라고 불리는 공국으로 조직된 남부 핀족을 장악했다. 스웨덴 왕국은 또한 북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노르웨이 왕국은 남부 내륙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동쪽에서는 모스크바가 초기 러시아인에게 더 중요한 중심지가 되면서 노브고로드 세력이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었고, 리투아니아인는 발트해 연안에서 지배적이었던 독일 십자군의 주의를 끌 수 있었다.

 

 

 

출처 : The History Files

728x90

'유럽 > 중세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이킹의 팽창  (0) 2022.03.11
450-700년 앵글로색슨의 정복  (0) 2022.01.06
중세 유럽 (450-800년)  (0) 2021.12.29
동고트족 (Ostrogothi)  (0) 2021.11.11
테오도리쿠스 대왕 (451년경 또는 453/454-526년)  (0) 2021.11.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