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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유럽/중세유럽

450-700년 앵글로색슨의 정복

by 금곡동로사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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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475년

 

브리타니아의 로마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410년에 끝났지만, 실제로 로마 브리튼인은 한동안 그들 스스로 통치했고 어쨌든 409년에 그 행정부를 축출했다.

380년대에 브리타니아의 서부와 북부 국경을 확보했던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재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부 브리튼은 살아남은 후손들 사이에서 점차 조각조각 나누어지면서 파편화되고 있었다. 마지막 분열은 470년경에 온 것으로 보이며 에브로크는 서쪽 지역인 페닌네스를 잃었다.

마찬가지로 포이스도 보르티게른과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의 내전 이후 둘로 나뉘었다. 때때로 '중부 브리튼'으로 분류되었던 고도로 문명화된 서브-로마 브리튼의 심장부인 이 지역은 분명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에 있었다.

색슨 해안을 따라, 이전의 라이티(야만인 용병을 지칭하는 '라이투스' 집단) 정착지와 새로운 이민자들의 물결이 그들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었다. 헨기스트와 호르사는 케인트 동부를 신속하게 정복했고, 색슨족 집단은 템스 강 유역 깊숙이 밀고 들어왔으며, 앵글족은 카에르 웬트와 린누이스를 침공했다. 오직 베르나키아(베오르니체)와 데이우르만이 그들의 해안선에서 평화로운 앵글족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475-500년

 

앵글로색슨족의 정복이 시작된 450년으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북쪽은 손상되지 않았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강력했다. 용병(라이티)으로 고용된 앵글족은 동부 해안선의 방어를 계속해서 도왔다.

린디스웨어(린누이스) 앵글족은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서브-로마 행정의 많은 측면을 맡았고 남쪽의 활동으로부터 고립되어 지냈다.

비록 나라는 변덕스러운 상태였지만, 이 시기는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의 시대였고, 아마 아서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함께 또는 순차적으로 그들은 남쪽에서 절실히 필요한 방위 체제를 조직했을 것이다. 앵글족 집단은 카에르 웬트를 빠르게 식민지화하고 카에르 레리온에 침투했다. 캔트웨어 유트족은 488년까지 켄트를 정복하고, 앨레의 색슨족은 남쪽 해안에서 빠르게 진격하고, 더 많은 색슨족이 템스 강 유역을 따라 깊숙이 침입하여, 정착지를 개척하고 서부 국가 전체를 위협했다. 킨위디온은 킬테른 새탄에 서쪽 경계를 빠르게 상실한 것으로 생각되며, 룬데인 주변의 영토는 템스 강 양쪽에 있는 미델 색세족에게 빠르게 점령되었다. 브리튼인의 저항은 496년경 몬스 바도니쿠스 전투 또는 공방전의 형태로 절정에 달했다.

 

 

500-550년

 

그 어떤 전투나 공방전보다도 몬스 바도니쿠스는 정복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마도 침략자들이 인정한 대군주 엘레가 이끄는 남쪽의 색슨족은 수트 색세족, 미델 색세족, 템스 밸리 색슨족, 그리고 캔트웨어족까지 약화시킨 것으로 보이는 참혹한 패배를 겪었을 것이다.

브리튼인의 승리 이후 한 세대 이상 지속된 평화의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체르디치와 그의 지지자들은 495-519년에 웨스트 색세족(웨식스)에 대한 권력을 장악했다. 게다가, 동쪽의 앵글족은 미들랜즈로 계속 쏟아져 들어와, 카에르 레리온을 빠르게 집어삼켰고, 분명히 킨위디온의 서쪽 영토를 통해 킬테른 새탄과 연결되도록 강요했는데, 아마도 몬스 바도니쿠스 직전일 것이다. 브리튼인의 소규모 거주지였던 카에르 민킵은 (아마도 약해진) 미델 색세 왕국의 가장자리에 살아남았다.

이 기간이 끝나갈 무렵 평화는 사라지고 있었고, 첫 번째 움직임은 547년 험버 강 북쪽에 위치한 베르니키아 앵글족(브리튼어 베오르니체)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근처의 레게드와 페닌네스는 더 세분화되었고, 남쪽에서는 카에르 콜룬이 공격을 받았다.

 

 

550-575년

 

550년, 몬스 바도니쿠스 이래로 지속된 긴 평화는 거의 끝이 났다. 웨스트 색세족은 브리튼인의 영토에 대규모로 진출하고 있었다. 윌트새테가 남서쪽 국경을 공격하고, 웨스트 섹스가 남쪽에서 올라오자, 552년 카에르 그윈트귀크의 브리튼인 요새가 무너지면서 솔즈베리 평원 전체가 색슨족에게 개방되었다.

그들은 계속 버티고 있는 카에르 켈레미온 주변을 휩쓸고, 571년경부터 템스 유역과 킬테른에서 색슨족이 점령하기 시작했다(비록 이 점령은 거의 완전히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브리튼의 킨위디온은 미들랜즈에서 대규모로 침입한 미들랜즈 엥글족에 의해 영토가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버텼다.

미들랜즈에서는 이클링가는 동쪽과 남쪽으로 앵글족 이웃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포이스의 넓은 영토는 570년경부터 두 개로 나뉘었고, 동쪽 절반은 펭웨른이 되었다(왕국이 아닌 포이스의 지역일 수 있음).

에브로크에서는 앵글족이 데이라(브리튼어 데위르) 지역을 점령했다. 에브로크는 양측면으로부터 포위당했고, 570-580년경 사이에 땅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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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600년

 

이스트 엥글족이 단일 왕 아래 통합되면서 앵글족과 색슨족의 정복은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557년 웨스트 색세는 세 명의 브리튼 왕을 물리치고 카에르 바단, 카에르 케리, 카에르 글루이를 점령했다. 웨스트 색세가 둠노니아에 맞서 싸우는 동안 휘체족은 자신들의 왕국을 형성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이동했다.

577년 브리튼인의 대패는 둠노니아와 카에르 켈레미온이 이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의미했고, 이스트 색세는 템스 강어귀 북쪽에 자신들의 왕국을 통합했다.

험버 강 북쪽의 두 앵글 왕국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에브로크의 방어는 580년경에 힘이 바닥났고, 그때 데이라 앵글족에게 함락되었다. 베르니키아 앵글족은 595년에 두노팅을 정복하고, 비슷한 시기에 피크 왕국을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색슨족 집단은 미들랜즈에서 이주하여 이 이름을 채택했고, 펙세트(피크 정착민)가 되었다.

엘메트는 이제 적들에게 포위되었지만 노스 레게드는 내전으로 강력한 지도자가 쓰러질 때까지 인근의 갈루이델을 장악할 정도로 세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600-650년

 

그 재앙 이후, 노스와 사우스 레게드는 빠르게 몰락했다. 카에르-구엔돌루 국경과 칼라일 주변에는 노스 레게드인의 작은 거주지만이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갈루이델의 지배권은 이니스 마나우에 있는 게일족에게 돌아갔지만, 구엔돌루 왕국은 알트 클라트(어스트라드클리드)에 흡수되었다.

이 시기에 앵글로색슨의 합병이 이루어졌다. 베르니키아와 데이라 앵글족은 서쪽 해안을 확보했고, 엘메트와 고도딘 역시 무너졌다.

이클링가는 미들랜즈의 모든 미드딜 엥글족 정착지를 빠르게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은 584-600년 사이에 머시아 즉 국경 또는 접경 왕국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630년경에 그들은 이스트 미들랜즈의 주인이 되었다.

이스트 색세는 미드델 색세와 템스 강 남쪽에 위치한 수테르게 지역의 지배권을 얻고 있었다.

펙세트는 피크 지역에 정착하고 있었고, 휘체족은 새로운 영토 내에서 브리튼인들과 통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웨스트 색세는 마침내 카에르 켈레미온을 무너뜨리고 조금 더 확장했다.

 

 

650-700년

 

웨스트 색세는 그들의 왕국 내에 있는 브리튼인의 거주지를 파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50년 동안 전력으로 둠노니아를 공격했다.

652년과 658년에 주요 승리를 거둔 것으로 주장되며, 이때 색슨족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고, 일부 오래된 정착지를 점령하고, 현지 이름을 그들식으로 바꾸었다. 도른새테 부족은 두로트리게스의 옛 브리튼 부족 칸톤(행정구역)에 정착한 반면, 글라스텐닝을 점령한 후 북쪽 이웃이 된 소머새테 부족은 숲, 습지, 언덕의 영토에 안전하게 정착했다. 데븐아스(데번족) 브리튼인들은 681-685년에 정복되었고, 웨스트 색세는 점차적으로 이 모든 지역을 직접 지배하여 현재의 콘월인 둠노니아를 완전히 차지하게 된다. 웨스트 색세는 또한 수테르게 지역을 차지했지만, 킬테른 색슨을 머시아에게 빼앗겼다.

이때 머시아는 강력한 노섬브리아와 싸우느라 바빴고, 노섬브리아는 685년 픽트족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펭웨른과 협력한 머시아는 엘메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결국 패배로 펭웨른이 붕괴되자 색슨족들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였으며, 머시아는 700년경에 전반적인 지배권을 얻었다.

 

 

700년

 

잉글랜드가 되어가는 가운데 마지막 서브-로마 영토가 멸망하면서 정복의 기간은 끝났다.

서쪽에 남아있는 정복되지 않은 왕국들(웨일스로 알려지게 된 지역)은 이제 막 통일을 망설이는 과정을 시작했을 뿐이고, 국경을 넘어 습격하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위협이 거의 없었다.

머시아는 미들랜즈 동부와 서부를 확보했다. 이제 포이스의 경계까지 자유롭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이스트 엥글에서 케임브리지를 점령했다. 휘체와 린디스웨어도 점점 더 그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노섬브리아는 머시아에게 이전 엘메트의 영토 일부를 빼앗기고 던바어에 행정 하위 왕국을 세웠으며(실제 경계는 알 수 없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9개 앵글로색슨 왕국 중 주요 세력이었다.

웨스트 색세는 이제 남쪽 해안과 웨스트 컨트리(잉글랜드 남서부 지역)를 지배했다. 수트 색세는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고, 둠노니아는 이전의 그림자로 이웃들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못했다.

 

 

 

출처 : The History F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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