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그외 이야기/이것저것

가장 중요한 10가지 고대 주화

by 금곡동로사 2022. 4. 15.
728x90

고대 주화는 디자인, 품질, 중요성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사용했지만, 일부는 일상의 일과를 뛰어넘어 역사의 영원한 조각이 되었다.

 

BC 42년 브루투스 "에이드 마르" 데나리우스, BC 550년 크로이소스 스타테레스 금화 , AD 81-82년 티투스 콜로세움 세스테르티우스

 

이 10개의 고대 주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하다. 일부는 서구 문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한다. 다른 것은 2,000년이 넘도록 다시 볼 수 없었던, 화폐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적, 기술적 성취를 나타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매우 희귀한 오늘날에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 고대 주화들이 왜 목록에 올랐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래에 있다.

 


1. 가장 중요한 고대 주화 : BC 42년 브루투스 "에이드 마르" 데나리우스

"3월 15일에"를 의미하는 "에이디부스 마르티스"의 약어 에이드 마르


이 고대 주화는 서양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을 표시한다. 주화의 앞면에는 브루투스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단검이 양측에 있는 필레우스(자유의 모자)가 그려져 있다. 이 단검은 푸기오로 알려져 있으며 암살에 사용된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한 단검은 브루투스를, 다른 단검은 그의 공모자인 카시우스를 상징했다. 필레우스는 전통적으로 노예에게 자유가 주어질 때 주는 모자였다. 모자와 단검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독재자로부터 공화국을 해방시켰음을 보여준다.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딕타토르)을 선언했다. 많은 원로원 의원들은 그의 절대적인 권력과 그것이 로마 공화국에 어떤 의미가 될지를 우려했다. 그의 선언이 있은지 불과 몇 달 후,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이 카이사르 암살 음모를 꾸몄다.

이 주화는 브루투스가 자살하기 불과 몇 달 전인 BC 42년에 직접 의뢰한 것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녹여서 다시 사용하기 위해 주화를 회수했다. 그리하여, 100개 미만의 주화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가장 희귀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주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BC 460-430년 아테나이(아테네)의 데카드라크몬

데카드라크몬(고대 그리스어 드라크메, 라틴어 드라크마 화폐 10개의 가치)


이 중요한 고대 주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주조되었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데에 지난 40여 년을 보냈다. 결정적인 전투에는 유명한 테르모필라이 전투, 마라톤 전투, 플라타이아 전투가 포함된다. 이 승리로 페르시아군은 그리스에서 밀려나 소아시아로 돌아갔다. 이러한 승리가 없었다면, 서구 문명의 역사는 오늘날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아테나이는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자유 그리스 동맹에 가입했다. 그들은 BC 469년에서 465년 사이에 이 승리를 거두었다. 아테나이의 데카드라크몬은 페르시아에 대한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아테나이 도시의 신 아테나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아테나의 상징인 올빼미가 그려져 있다.

주화에 사용된 은은 아테나이 바깥의 은광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주화의 가치가 너무 커서 주로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었다. 대부분의 아테네인은 주화를 접한 적이 없었고, 페리클레스 시대에 더 이상 주조되지 않았다.

 

 

고대 주화 조각 기술은 5세기에 시칠리아 섬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섬의 여러 도시는 최고 품질의 은화를 생산하기 위해 경쟁했다. 이 목록에 있는 다음 세 개의 주화는 모두 이 기간 동안 시칠리아 섬에서 나온 것이다.

 

 

3. BC 400-390년 시라쿠사이(시라쿠사)의 데카드라크몬


시라쿠사이의 데카드라크몬은 고대 화폐 예술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고대 주화들에는 키몬 데카드라크몬, 아레투사 초상 테트라드라크몬, 시라쿠사이 데마라이테이온 데카드라크몬, 에우아이네토스 데카드라크몬 등이 있다.

시라쿠사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였다. 시라쿠사이의 가장 유명한 조각가는 키몬이었다. 위 사진에 있는 고대 주화는 그에 기인한다. 물의 요정 아레투사는 앞면에서 4마리의 돌고래에 둘러싸여 있고 뒷면에는 콰드리가(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몰고 있다. 콰드리가는 시라쿠사이의 네 명의 참주를 나타낸다. 니케가 콰드리가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 BC 411년 아크라가스(아그리젠토) 데카드라크몬


아크라가스 데카드라크몬은 가장 희귀한 고대 주화 중 하나이다. 고대부터 전해지는 것은 10개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세기에 시칠리아 섬에서 발행된 위대한 주화 중 하나이다. 이 도시는 은화를 주조하기 시작한 최초의 도시 중 하나였다.

이 주화는 BC 411년 올림픽 전차 경주 우승자를 기리기 위해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앞면에는 태양신 헬리오스가 전차를 타고 여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늘은 독수리로, 아래 바다는 게로 표현했다. 주화 뒷면은 두 마리의 독수리가 산토끼의 몸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여준다.

주화는 주로 기념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주화를 만드는 데 사용된 은의 양은 일상 거래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가치가 컸다.

 


5. BC 460년 낙소스(지아르디니 낙소스) 테트라드라크몬

드라크메 화폐 4개의 가치를 지닌 테트라드라크몬


지금까지 BC 5세기부터 보아온 주화 중에서, 이 주화는 틀림없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잘 알려진 주화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새긴 여러 개의 금형에서 만들어진 다른 많은 고대 주화들과 달리, 이 주화는 한 쌍의 금형으로 주조되었다. 이 주화는 정교한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하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고대 그리스 주화 제작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이다.

이 주화는 BC 461년 낙소스의 재건을 기념하기 위해 주조되었다. 낙소스는 시칠리아 섬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식민지였으며 주변 화산 토양의 비옥함으로 인해 매우 부유했다. 이로 인해 BC 476년 시라쿠사이가 도시를 복속시켰고 낙소스인은 레온티니(오늘날 렌티니)로 이주되었다. 그들은 히에론이 죽은 후에 도시를 되찾았다.

앞면에는 디오니소스 신이, 뒷면에는 사티로스 실레노스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디오니소스의 묘사에 대한 세부 수준은 고대 주화 사이에서 비할 데 없다.

 

728x90

 


6. BC 550년 크로이소스의 스타테레스 금화

고대에 "크로이세이오이 스타테레스"라 불린 크로이세이드 화폐


최초의 고대 주화는 엘렉트럼(호박금)이라고 불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금과 은의 혼합물인 이 합금은 리디아 제국의 수도인 사르디스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리디아의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는 리디아 제국의 마지막 왕이 아니라 최초로 순은과 순금 주화를 도입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엘렉트럼은 주화를 주조하는 데 있어 도전적인 재료임이 입증되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금과 은이 혼합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주화에 포함된 금과 은의 양이 다양했다. 이로 인해 주화의 정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크로이소스 왕은 순금과 순은으로 화폐를 주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스타테레스 금화는 지금까지 주조된 최초의 순금 주화이다. 황소와 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7. AD 81-82년 티투스 콜로세움 세스테르티우스


콜로세움. 매년 6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이 유명한 건물의 건설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통치기인 71년에 시작되었다. 처음의 3단은 75년에 완성되었고 마지막 2단은 80년에 완성되었다. 완공되자마자, 티투스는 새 원형경기장에서 5,000마리의 동물이 희생되고 100일간의 경기를 포함하는 헌정식을 열었다.

티투스는 이 의식을 기념하기 위해 세스테르티우스를 발행했다. 앞면에는 티투스의 옆모습이, 뒷면에는 콜로세움이 묘사되어 있다. 이 고대 주화는 콜로세움을 묘사한 초기 주화 중 하나이다. 남아 있는 주화는 10개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BC 32년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초상 데나리우스


이 고대 주화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 중 하나인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묘사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7세로도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그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내전에서 중심인물이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대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집트의 부를 장악하려 했다. 처음에 클레오파트라는 BC 44년에 그가 암살될 때까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했다. 그 후, 그녀는 옥타비아누스를 상대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했다.

데나리우스는 BC 32년에 만들어졌는데, 아마도 그들의 짧게 끝난 동맹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격파했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각각 자살했다. 클레오파트라가 내전에 개입한 결과는 근대까지 이집트가 되찾지 못한 이집트 주권의 종말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식이었다.

 


9. AD 64년 네로의 오스티아 항 세스테르티우스


로마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는 테베레 강가의 내륙에 위치해 있었고 해안 근처에 천연 항구가 없었다. 이는 점점 더 긴급한 문제를 야기했다. 도시의 인구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곡물과 상품을 수입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통치기에 엄청난 기근으로 인해 그는 테베레 강 하구에 위치한 오스티아 항에 거대한 항구를 건설하는 야심찬 공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클라우디우스는 프로젝트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항구는 네로 황제 통치기인 64년에 완공되었다.

이 세스테르티우스의 앞면에는 네로의 흉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강의 신 티베리누스가 기대고 있는 새로운 항구의 개요가 그려져 있다. 뒷면의 배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10. 마지막 고대 주화 :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 데나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틀림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암살은 로마 공화국을 로마 제국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로마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논란이 많은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이 데나리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이전에는 로마 공화국에서 주조된 어떤 주화에도 통치자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정책 및 통치의 많은 측면에서 선례를 남겼고, 로마 화폐에 대한 그의 접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최초였고 뒤를 이은 모든 로마 황제가 그의 사례를 따랐다.

 

 

 

출처 : The Collector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