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8세기
· 사비니 전쟁 (사비니 여인 약탈)
· 카메리움(Camerium) 정복 - 로물루스가 최초로 복속시켰고, 5대 왕 대 타르퀴니우스가 재정복했다. 502년에 일으킨 봉기 이후 파괴되었다
· 피데나이(Fidenae) 및 베이(Veii) 전쟁 - 에트루리아인의 도시 피데나이를 로물루스가 점령한 뒤, 인근의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가 영토에 침입하자 로마군이 그들을 추격하여 베이 도시 앞에서 격파했다. 도시를 차지할 힘이 부족한 로마가 그 땅을 황폐화하자 베이인은 화평을 제안하고 영토의 일부를 대가로 조약을 맺었다
BC 7세기
· 제2차 피데나이 및 베이 전쟁 - 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치세에 피데나이인이 봉기하여 베이의 군대와 함께 전쟁을 일으켰다. 알바 롱가를 복속시킨 툴루스는 군대를 이끌고 에트루리아군을 격파했다
· 제2차 사비니 전쟁 - 사비니인과 로마 상인 간에 분쟁이 발생하자 툴루스는 사비니 영토로 진출하여 말리티오사(Malitiosa)라고 불리는 숲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했다
· 라틴 전쟁 - 4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 치세에 최초로 라틴인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여러 라틴 도시를 정복하고 거주민들을 로마로 이주시켰다
BC 6세기
· 사비니 전쟁 - 로마가 팽창하면서 북방에 이웃한 사비니족과 일련의 전쟁을 벌였다
· 볼스키(Volsci) 전쟁 - 7대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치세에 일어난 갈등은 2세기 동안 이어지게 된다. 그는 포메티아(Pometia)를 점령하고 그 전리품으로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을 건설했다
· 가비(Gabii) 전쟁 - 알 수 없는 이유로 라틴 동맹에서 탈퇴한 가비는 타르퀴니우스 왕과 그의 아들 섹스투스 간의 투쟁에 휘말렸고 그로 인해 귀족들이 살해되는 등 혼란에 빠져 로마에 복속되었다. 군주제가 전복된 후 섹스투스는 가비로 도피했지만 과거 행적에 대한 복수로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살해당했다
· 루툴리(Rutuli) 전쟁 - 그들의 부유함 때문에 타르퀴니우스 왕은 전쟁을 일으켰다. 공화정이 수립되자 아르데아(Ardea)를 점령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진을 치고 있던 로마군은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새로운 지도자로 환영하고 왕의 아들들을 추방했다
* 509년 공화정 성립
· 에트루리아 전쟁
- 509년 아르시아 숲(Silva Arsia) 전투 - 로마군이 폐위된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베이의 군대를 무찔렀다. 집정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전사했다
- 508년 클루시움(Clusium) 및 아리키아(Aricia) 전쟁 - 리비우스에 따르면, 에트루리아인의 도시 클루시움의 왕 포르센나가 타르퀴니우스를 대신하여 로마를 포위했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승리였다
포르센나는 자신의 군대 일부를 보내 라틴 동맹의 도시 아리키아를 포위했다. 아리키아는 라틴 동맹과 그리스 식민지 쿠마이(Cumae)의 지원을 받아 클루시움군을 물리쳤고 살아남은 에트루리아 병사들은 로마로 도망쳐 후대에 비쿠스 투스쿠스(Vicus Tuscus)로 알려지게 되는 도시의 한 구역에 정착했다
· 포메티아인의 봉기 (503-502년)
- 502년 포메티아 전투 - 로마인이 포메티아와 코라(Cora)의 반란을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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