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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오리엔트

페니키아인 - 항해 선구자

by 금곡동로사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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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 식민지가 건설된 지역(빨간색)

 

지중해 동부(오늘날 레바논)의 페니키아인은 해안 가까이 항해하는 것을 선호했다. 수에즈 운하가 생기기 약 2,500년 전에 페니키아인은 이집트인과 함께 지중해에서 홍해까지 운하를 만들었다.

페니키아 상인들은 이집트인에게서 곡식과 옷감을, 그리스에서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얻었다. 사르데냐에서 광산을 개발했다. 페니키아 상인들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발견되었다.

카르타고는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페니키아 식민지였다. 그곳은 매우 강력하여 지중해에서 로마의 확장을 오랫동안 방해했다.

페니키아인은 3년 동안 지속되는 항해로 최초로 아프리카를 일주한 것으로 믿어진다. 페니키아인은 주석을 얻기 위해 오늘날 영국의 실리 제도까지 항해했다.

카디스는 페니키아 식민지였다.

 

 

페니키아의 무역 (BC 2000-250년)

고대 무역로(파란선), 페니키아의 무역로(빨간선)

 

페니키아는 이집트와 아시아를 잇는 교통이 편리한 항로를 따라 위치해 있어 교역하기 좋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페니키아인은 우연히 그들의 지역을 지나가는 상인들과 거래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 페니키아인은 노련한 뱃사람이 되어 돈을 벌 기회를 찾아 나섰다.

·  페니키아 상선 : 페니키아 선원들은 매우 넓고 바닥이 곡선으로 된 둥근 배를 개발했다. 이 모양은 화물을 위한 넓은 공간을 제공했다.

페니키아 배들은 종종 말머리를 장식했다. 고리버들 세공 울타리가 상부 갑판의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있었다.

· 교역품 : 그들과 교역하는 외국인은 페니키아에서 자라는 향나무인 삼나무를 원했다. (레바논 국기처럼 나무가 유명한 지역)

바닥이 뾰족한 도자기 항아리는 "암포라"라고 불렸다. 항아리에는 올리브유 또는 포도주를 담았다.

고객이 가장 원하는 페니키아 교역품은 붉은 보라색(자줏빛)으로 염색된 천이었다.

 

 

페니키아 상선

 

페니키아인은 위대한 무역 국가이자 실용적인 선원이었다. 이 선박에 대한 증거는 BC 1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금은 불모지인 이집트 무덤 벽화에서 나왔다.

돛대 밧줄 사다리 및 망루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최초의 선박이다. 말머리로 된 뱃머리가 일반적인 모티브였을 수도 있다. 밧줄 죔쇠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데, 이는 용골이 없더라도 선박이 바다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강도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리버들 울타리는 아마도 노 젓는 사람들에게서 갑판 화물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목재는 중요한 화물이었고, 거의 700년 후의 한 고대 부조에는 목재가 견인되는 모습이 나와 있다. 이집트 사료는 배의 뱃머리에 부착된 매우 큰 암포라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선원들의 물이나 포도주 때문일 것이다. 당시 선박에는 금속으로 된 고정 장치가 전혀 없었다. 도자기 도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나무, 밧줄 또는 천으로 만들어졌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 데 사용할 레바논 목재를 수입하기 위해 이와 같은 선박을 사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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