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종교 이야기/기독교

1세기 유다 왕국

by 금곡동로사 2024. 1. 6.
728x90

1세기 유대인 주택

가난한 가정의 집은 작고 평이했다. 집은 거친 돌(또는 진흙 벽돌) 벽과 가지를 엮어 점토로 덮은 지붕으로 지어졌다. 거주 공간은 요리 및 직조와 같은 집안일을 위해 사용되었다. 밤에는 가축들이 아래층에 수용되었다.

 

크기 비교 : 1세기의 주택은 더블 와이드 트레일러(이동식 주택 두 채 크기) 보다 작았고, 온 가족이 거주했다

 

 

1세기 갈릴리 어선

이런 유형의 작은 돛단배는 1세기 갈릴리에서 매우 흔했으며, 예수의 첫 제자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이 시기의 돛단배는 돛대와 '활대'만 있었으며, 바람이 잘 부는 조건에서 해안 근처에서 사용되었다.

이 시대의 어업 방법은 어부들이 자주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 결과 어부들은 옷을 입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요한복음 21:7 참조).

고대 어선은 작고 안정성이나 기동성이 떨어졌다.

그물을 던지면 망이 펼쳐지고 대부분 평평하게 물에 닿는다.

그물 둘레의 무게추가 물고기 주변의 가장자리를 아래로 당긴다. 

어부가 그물을 들어 올리면 무게추가 모여 물고기를 안에 가두게 된다.

 

 

고대 유대의 포도주틀
고대의 포도주틀은 돌을 깎아서 만든 개방된 구조였다. 디딤판 작업장에서 발로 포도를 밟았다. 과즙은 수로를 통해 큰 통으로 부어져 발효되었다. 그런 다음 항아리에 담겼다.

 

포도 껍질의 효모가 압착 시 포도즙을 발효시키기 시작한다. 

압착된 가시나 기타 식물 섬유를 이용하여 포도즙을 여과했다. 
발효에는 며칠이 걸리며 거품이 활발하게 발생한다. 특히 첫날에. 거품이 멈추면, 과즙 - 이제 와인 - 을 꺼낼 준비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백악/석회석 기반암은 훌륭한 포도주틀이 된다 → 쉽게 자를 수 있고 액체가 잘 담긴다.
와인병은 굽지 않은 점토로 마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또는 올리브유를 위에 붇기도 한다).

와인스킨(가죽부대) 또한 사용되었다. 적절한 조건하에서, 보관된 와인은 1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노출된 상태로 놔두면 곧 식초로 바뀌게 된다.

 

 

63년경 고대 예루살렘

BC 34년 헤롯왕의 통치 아래, 고대 예루살렘은 두 번째 성전 및 더 큰 성전 산이 재건되는, 대대적인 재개발을 거쳤다. AD 66년 유대인 대반란은 예루살렘에 대한 로마의 통치에 도전했고, 70년에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결과를 낳았다.

 

 

헤로데 성전

헤롯 신전의 내부 안뜰에는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는 10개의 문이 있었다. 안에는 여러 방과 제물을 바치는 뜰이 있었다. 끝에는 유대인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방 두 개짜리 성소인 성스러운 장소가 있었다. 성전 전체는 대략 AD 62~64년에 완성되었지만, 70년에 로마인에게 파괴되었다.

 

성소 내부(부분도)
1. 제사장의 방과 수장고
2. 지성소
3. 휘장
4. 향단
5. 진설병 상
6. 등잔대 (메노라)
7. 현관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