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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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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야기/오리엔트21

하투샤(Hattusa) 하투샤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다. 그 유적은 현대 터키의 보아즈칼레 근처의 키질이르마크 강의 큰 고리 안에 있다. 하투샤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추가되었다. 환경 도시를 둘러싼 풍경에는 ​​풍요로운 농경지와 목초지와 숲을 위한 언덕이 있다. 더 작은 숲은 여전히 ​​도시 밖에서 발견되지만 고대에는 훨씬 더 널리 퍼져있었다. 이것은 주민들이 집과 다른 구조물을 지을 때 훌륭한 목재 공급을 의미했다. 밭은 사람들에게 밀, 보리, 렌틸 콩 같은 생계 작물을 제공했다. 아마(亞麻)도 수확되었지만, 옷의 주요 공급원은 양털이었다. 그들은 또한 숲에서 사슴을 사냥했지만 이것은 아마도 귀족을 위한 사치일 뿐이었을 것이다. 가축은 고기를 제공했다. 야질리카야의 바위 신전과 알라카회.. 2020. 12. 8.
아시리아 2 - 중(中)아시리아 제국 중아시리아 제국, B.C.1392-1056 중기(B.C.1365-1056)에는 아슈르우발리트 1세, 아릭덴이리, 투쿨티니누르타 1세, 티그라트필레세르 1세와 같은 위대한 왕의 통치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근동의 후르리-미탄니 제국, 빛을 잃은 히타이트 제국, 이집트 제국, 바빌로니아, 엘람, 가나안, 프리기아를 전복했다. 에리바아다드 1세(B.C.1392-1366) 통치 무렵 아시리아에 대한 미탄니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에리바아다드 1세는 투슈라다와 그의 형제 아르타타마 2세와 그의 아들 슈타르나 3세 - 아시리아인의 지원을 구하면서 자신을 후르리의 왕이라고 불렀다 - 사이의 왕조 전투에 연루되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B.C.1365-1330)은 더 나아가 슈타르나 3세를 물리치고 미탄니 .. 2020. 12. 7.
아수르(Assur) 아수르(Aššur), 아쉬르(Ashur)와 Qal'at Sherqat로도 알려져 있으며, 구아시리아 제국(B.C.2025-1750), 중아시리아 제국(B.C.1365–1050) 그리고 한동안 신아시리아 제국(B.C.911–608)의 수도였다. 도시의 유적은 현재의 이라크, 더 정확하게는 살라딘 주의 알시르캇(al-Shirqat) 지구에 있는 지류인 자브 천(川)과 합류하는 북쪽의 티그리스 강 서쪽 기슭에 있다. 도시의 존속 기간은 B.C.2600부터 티무르 군대가 사람들을 학살한 14세기 중반까지 약 4,000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연구의 역사 아수르의 발굴은 1898년에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발굴은 1900년 프리드리히 델리취에 의해 시작되어.. 2020. 11. 23.
아시리아 1 - 구(舊)아시리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아시리아는 B.C.25세기부터 (아수르 도시 국가의 형태로) B.C.612년에서 609년 사이에 붕괴될 때까지 레반트에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 왕국이자 고대 근동의 제국이었던 국가이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초기부터 중기부터 철기 시대 후반까지 이 오랜 기간은 초기(B.C.2600-2025), 구아시리아 제국(B.C.2025-1378), 중아시리아 제국(B.C.1392-934), 신아시리아 제국(B.C.911-609)으로 나누어진다. 아시리아는 셈어를 주로 사용하는 영역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티그리스에 집중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여러 기간 동안 강력한 제국을 통치하였다. 수메르, 아카드 제국, 바빌로니아를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요람"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아시리아는 그.. 2020. 11. 22.
미탄니 왕국 미탄니는 아시리아 어로 하니갈바트 또는 하니-라바트, 이집트 텍스트에서 나하린이라고 불렀는데, 시리아 북부와 아나톨리아 남동부에서 후르리어을 사용하는 국가였다. 현재 미탄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 : 미탄니는 이미 B.C.17세기 말이나 16세기 전반기에 강력한 왕국이었으며 그 시작은 투트모세 1세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히타이트왕 하투실리 1세와 무르실리 1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 가설 : 미탄니는 히타이트에 의한 얌카드 왕국의 파괴와 무르실리 1세의 죽음 이후 히타이트가 시리아 지역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으로 생성되었다. 두 번째 가설을 고려한다면, 미탄니(B.C.1500년-1300년 경)는 히타이트에 의해 아모리인과 바빌론이 B... 2020. 11. 18.
히타이트 제국 히타이트는 B.C.1600년경 아나톨리아의 중북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제국은 B.C.14세기 중반 수필룰리우마 1세에 의해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북부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 상류 지역의 일부를 포함한 영역을 다스렸다. B.C.15세기-13세기 사이에 히타이트는 근동 지방의 패권을 놓고 이집트 신왕국, 아시리아 제국, 미탄니 제국과 충돌했다. 최종적으로는 아시리아 제국이 히타이트의 대부분을 합병했으며 남은 지역도 프리기아의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다. B.C.1180년에 멸망한 히타이트 제국은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B.C.8세기까지 존속된 뒤 신아시리아 제국에게 복속되었다. 히타이트어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도-유럽어 언어이다. 히타이트인들은 그들..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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