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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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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전투3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를 침공하여 갈리아와 마찬가지로 로마화 하기로 결심한다. 가족극과 반란은 게르만인들에게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준다. 다음은 로마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자 갈리아, 로마 및 유럽의 역사를 정의하는 순간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이방 영토를 정복하는 것은 쉽지만 유지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정복된 문화가 정복자들과 완전히 다를 때 더 복잡해진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로마의 장군이자 제국의 계승자인 드루수스는 BC 9년에 서부 게르마니아를 정복하여 마그나 게르마니아에 대한 로마 통치의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게르마니아가 정복될 경우 갈리아 반군은 갈리아 전쟁 동안 가끔 그랬던 것처럼 게르만족에게 도움을 요청할 능력을 잃게 된.. 2022. 6. 23.
성서 속의 전투 구약성서에서 전쟁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 나온다.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항상 신성시되었다. 이스라엘이 의로운 전쟁을 할 때마다 싸운 것은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 드보라의 승리 찬가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또한 사무엘 상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 들고나간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는 성전에 대한 생각과 관련이 있다. 반대로 전쟁에서 패했을 때 지는 존재는 결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 이스라엘과 그 왕들은 주의 뜻을 어겼고 그에 따라 전쟁에서 패하는 벌을 받았다. 전쟁은 포로들의 대량 처형과 적, 남성, 여성, 아이들의 완전한 몰살을 포함하는 등 잔인했다. 히브리어 전문 용어 헤렘(herem)은 적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금기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 패배.. 2021. 11. 22.
키루스 대왕의 죽음 키루스 대왕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료마다 다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키루스에 대한 설명은 그의 운명에 대해 두 번째로 상세하게 보여준다. 크로이소스의 조언에 따라 키루스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유라시아 스텝 최남단에 있는 코라스미아(호라즘)와 키질쿰의 부족 마사게타이와 그들의 영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마사게타이는 복식과 생활방식에서 스키타이인과 관련이 있었다. 그들은 말 위에서 그리고 내려서 싸웠다. 그녀의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키루스는 먼저 그들의 통치자인 여왕 토미리스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그런 다음 키루스는 먼저 그들을 갈라놓은 옥소스 또는 아무 다리야 강을 따라 탑을 세운 군함들을 배치하고 다리를 건설하여 마사게타이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시도..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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