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862년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탐험가이자 정복자, 정착민인 바랑기아인은 9세기에 발트해 동부와 드니프로 강 유역으로 퍼져 나갔다. 전설에 따르면, 노브고로드의 슬라브족은 자신들을 정복했던 바랑기아 정복자들을 축출했지만, 자신들이 평화롭게 통치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그들을 통치자로 불러들였다. 류리크는 노브고로드의 대공이 되었고, 바랑기아인과 슬라브족이 융합된 집단은 루스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류리크의 후계자들은 곧 남쪽으로 키예프(오늘날 키이우)에 이르는 인근 슬라브 부족을 정복했으며, 키예프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키예프 루스라고 불리는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882년 예언공 올레그가 키예프를 정복하고 수도를 그곳으로 옮겼다
10세기


907년 루스-비잔틴 전쟁 : 올레그가 군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앞까지 진격했다. 루스-비잔틴 조약으로 루스 상인들이 보호를 받으며 도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912년 올레그가 사망하고 류리크의 아들 이고리 1세가 그 뒤를 이었다
941년 5월 루스-비잔틴 전쟁 : 루스 군대가 비티니아에 상륙했다
9월 비잔틴군이 루스 함대를 격파했다
945년 루스-비잔틴 전쟁 : 또 다른 루스-비잔틴 조약이 체결되었다. 루스는 비잔틴 영토 일부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이고리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 올가가 아들 스뱌토슬라프 1세를 대신하여 키예프 루스의 섭정이 되었다
957/962년 올가의 섭정이 끝났다

965년 스뱌토슬라프가 하자르 카간국을 정복했다
968년 키예프 공방전 : 페체네그족이 키예프를 포위했다. 한 소년이 강 건너의 루스군이 출정하게 만들고, 이는 대규모 증원군이 오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켜 포위군이 겁을 먹고 도시에서 물러나게 했다
969년 7월 8일 스뱌토슬라프는 수도를 키예프에서 불가리아의 페레야슬라베츠"Pereyaslavets"로 옮겼다
971년 비잔틴 제국이 페레야슬라베츠를 점령했다. 수도가 키예프로 다시 옮겨졌다
972년 스뱌토슬라프는 페체네그족의 영토로 원정을 떠났다가 그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아들 야로폴크 1세가 뒤를 이었다
978년 야로폴크는 자신의 뒤를 이어 키예프 대공이 된 동생 블라디미르 1세에게 배신당해 살해되었다
981년 블라디미르는 폴란드로부터 레드 루테니아(적러시아)를 정복했다

988년 키예프 루스의 기독교화 : 블라디미르는 키예프의 이교도 우상들을 파괴하고 도시 주민들에게 드니프로 강에서 세례를 받도록 촉구했다
11세기

1015년 7월 15일 블라디미르가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은 스뱌토폴크 1세는 야로폴크의 아내를 강간하여 얻은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스뱌토폴크는 자신의 남동생 세 명을 살해하도록 명령했다
1016년 스뱌토폴크의 또 다른 형제인 야로슬라프 1세는 그에 맞서 군대를 이끌고 승리했고, 스뱌토폴크는 폴란드로 도망쳐야 했다

1017년 야로슬라프가 최초의 루스 법전인 루스카야 프라브다를 편찬했다
1018년 폴란드의 키예프 원정 : 스뱌토폴크가 폴란드 군대를 이끌고 루스 땅으로 진격했다. 레드 루테니아는 다시 폴란드의 소유가 되었다
8월 14일 폴란드 군대가 키예프를 점령하고 야로슬라프는 노브고로드로 피신했다
1019년 야로슬라프는 스뱌토폴크를 물리치고 키예프 공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노브고로드의 충성심에 대한 보상으로 자치권을 부여했다. 스뱌토폴크는 사망했다
1030년 야로슬라프는 폴란드로부터 레드 루테니아를 탈환했다

1043년 2월 30일 루스-비잔틴 전쟁 : 야로슬라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한 해상 공격을 이끌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평화 협정에 따라 야로슬라프의 아들 프세볼로트 1세는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코스의 딸과 결혼했다
1054년 야로슬라프가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장남 이자슬라프 1세가 즉위했다
1068년 이자슬라프는 민중 봉기로 축출되어 폴란드로 망명해야 했다
1069년 이자슬라프는 폴란드 군대를 이끌고 키예프로 돌아와 권좌에 복귀했다
1073년 이자슬라프의 형제 스뱌토슬라프 2세와 프세볼로트 1세가 그를 축출하여 스뱌토슬라프 2세가 키예프 대공이 되었다

1076년 12월 27일 스뱌토슬라프가 사망했다. 프세볼로트가 그의 뒤를 이었지만, 체르니고프"Chernigov"(오늘날 체르니히우 지역)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키예프 공국을 이자슬라프에게 넘겨주었다
1078년 10월 3일 이자슬라프가 사망하고 키예프의 권좌는 프세볼로트에게 돌아갔다.
1093년 4월 13일 프세볼로트가 사망했다. 키예프와 체르니고프는 이자슬라프의 사생아 스뱌토폴크 2세에게 돌아갔다.
5월 26일 스투그나 강 전투 : 루스 군대가 스투그나 강에서 쿠만족을 공격했으나 패배했다
12세기

1113년 4월 16일 스뱌토폴크가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프세볼로트의 아들이자 그의 사촌인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가 즉위했다

1125년 5월 19일 블라디미르가 사망하고 그의 장남 므스티슬라프 1세가 뒤를 이었다
1132년 4월 14일 므스티슬라프가 사망하고 그의 형제 야로폴크 2세가 키예프 대공이 되었다
1136년 노브고로드는 키예프가 임명한 군주를 추방하고 그 권한을 대폭 제한했다
1139년 2월 18일 야로폴크가 사망했다. 그의 동생 뱌체슬라프 1세가 뒤를 이었지만, 3월에 체르니고프 공이자 사촌인 프세볼로트 2세에게 전복되었다

1146년 8월 1일 프세볼로트가 사망하자 그의 형제 이고리 2세가 뒤를 이어 키예프의 통치자가 되었다. 키예프 시민들은 그에게 프세볼로트의 원로 보야르(봉건 귀족)들을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고리는 그 요청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결국 이를 다시 고려했다. 키예프 시민들은 맹세를 어긴 자는 더 이상 정당한 통치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페레야슬라블(오늘날 페레야슬라우 지역) 공 이자슬라프 2세를 키예프의 새로운 군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8월 13일 이자슬라프가 이고리를 전복했다. 이고리의 형제 노브고로드-세베르스크 공 스뱌토슬라프는 이고리를 구출하기 위해 로스토프-수즈달 공 유리 돌고루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147년 유리 돌고루키가 노브고로드-세베르스크 공 스뱌토슬라프에게 "형제여, 모스크바로 오라"라고 청했을 때 모스크바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1149년 유리 돌고루키가 키예프를 점령하고 이자슬라프는 탈출했다

1150년 초르니예 클로부키(반(半) 유목민 튀르크 부족들)의 도움으로 이자슬라프는 유리를 키예프에서 몰아냈다. 얼마 후, 유리는 갈리치아 공 볼로디미르코의 도움으로 다시 키예프를 차지했다
1151년 헝가리 왕 게저 2세는 이자슬라프가 키예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유리는 도주했다
1154년 11월 13일 이자슬라프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형제이자 스몰렌스크 공 로스티슬라프 1세가 키예프의 새로운 군주로 추대되어 소환되었다
1155년 유리 돌고루키는 체르니고프 공의 도움으로 로스티슬라프 1세를 축출했다
1157년 유리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망했다. 체르니고프 공 이자슬라프 3세가 키예프 대공이 되었다
1159년 이자슬라프 3세는 갈리치아 공과 볼린 공에 의해 전복되었다. 동맹 세력은 로스티슬라프를 다시 키예프 대공으로 추대했다
1167년 로스티슬라프가 사망했다. 그의 조카 볼린 공 므스티슬라프 2세가 키예프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다

1169년 신흥 강국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군주이자 유리 돌고루키의 장남인 안드레이 보골륩스키가 키예프를 공격하여 약탈했다. 대다수의 루스 군주들은 그를 새로운 대공으로 인정했다. 이전의 대공들과 달리 안드레이 1세는 거주지를 키예프로 옮기지 않고 블라디미르에 머물렀으며, 자신의 형제 글레프를 키예프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키예프는 더 이상 루스 땅의 중심지가 아니게 되었고, 정치 및 문화 중심지는 블라디미르로 옮겨졌다. 이후 키예프 군주들은 블라디미르-수즈달 대공에게 종속되는 처지가 되었다
13세기

1223년 칼카 강 전투 : 루스의 전사들이 처음으로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와 조우했다. 항복한 루스 군대는 학살당했다
1227년 보야르(봉건 귀족)들의 음모로 갈리치아 공 므스티슬라프는 사위인 헝가리의 언드라시 2세에게 도시를 넘겨주어야 했다
1236년 노브고로드 시민들의 요청으로 노브고로드 공이 된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군사 지도자로서 스웨덴과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북서쪽 영토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1237년 12월 몽골의 루스 침공 : 바투칸은 모스크바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다
1240년 7월 15일 네바 전투 : 노브고로드 군대는 이조라 강과 네바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스웨덴 침공군을 물리쳤다
1242년 4월 5일 얼음 위의 전투 : 노브고로드 군대가 페이푸스 호수의 얼어붙은 면에서 침공해 온 튜턴 기사단을 격파했다

1263년 11월 14일 넵스키가 사망했다. 그의 다스리던 영지는 가족들에게 분할되었고, 막내아들 다닐은 초대 모스크바 공이 되었다. 넵스키의 동생 야로슬라프는 트베르와 블라디미르의 대공이 되었으며, 다닐이 성인이 될 때까지 모스크바 공국을 운영할 대리인을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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