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아하스("야훼께서 붙잡으셨다"라는 의미)는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BC 609년, 3개월)이었고 요시야 왕의 넷째 아들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립나 예레미야의 딸인 하무달이었다. 그는 BC 633/632년에 태어났고 출생 시 이름은 살룸이었다(대상 3:15).
배경
BC 609년 봄 또는 초여름에 파라오 네카우 2세는 아시리아를 돕기 위해 바빌론에 대한 첫 번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블레셋과 샤론의 저지대를 따라 시리아로 향하는 해안 경로인 비아 마리스를 따라 그의 군대를 이동시키며 이스르엘 계곡의 남쪽을 막는 언덕의 능선을 건너려고 준비했다. 그곳에서 그는 요시야가 이끄는 유대 군대에 의해 므깃도에서 막혔다. 치열한 전투 끝에 요시야가 죽었다. 아시리아인과 동맹 이집트인은 하란에서 바빌로니아인과 싸웠다.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 BC 609년 담무스(7-8월)에서 엘룰(8-9월)까지의 전투를 기록했다. 따라서 요시아는 BC 609년 담무스 달 또는 그 전 달에 이집트인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연대순 고려 사항은 요시야가 죽고 여호아하스가 왕좌를 차지한 달을 담무스로 제한했다.
통치
그는 형 엘리아김보다 두 살 더 어렸지만 23세에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으로 왕위를 계승하도록 선출되었다. 그는 이집트의 파라오 네카우 2세에 의해 퇴위되어 이집트의 포로로 잡히기 전에 불과 3개월 동안 통치했다(왕하 23:31-34).
그는 아버지 요시야의 개혁을 무시했다(왕하 23:32).
네카우 2세가 여호아하스를 쫓아내다
하란의 포위 공격에 실패한 네카우는 상당한 부대를 남겨두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귀환 길에서 그는 유대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 요시야의 뒤를 이을 여호아하스를 선택했음을 발견했다. 네카우는 여호아하스를 립나로 데려다 그곳에 가두었다. 그런 다음 그는 여호아하스를 물러나게 하고 형 엘리아김을 왕으로 대신하여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꿨다. 여호아하스는 석 달 동안 통치했다. 네카우는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이집트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여호아하스는 그의 날들을 끝냈다(왕하 23:34).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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