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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남유다] 아몬

by 금곡동로사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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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을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아몬(BC 664-641년 경)은 성서 기록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므낫세를 계승한 남유다의 열다섯 번째 왕이었다. 아몬은 2년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우상 숭배를 행한 것으로 가장 기억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고 결국 BC 641년 경에 살해되었다.

 

 

생애

 

아몬은 유다 왕 므낫세와 욧바 하루즈의 딸 므술레멧의 아들이다.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성서는 그가 보스갓 아다야의 딸 여디다와 결혼했다고 기록했다(왕하 22:1). 므낫세가 죽은 후 아몬은 22세에 왕이 되어 2년 동안 통치했다(왕하 21:18-26). 예루살렘 성경은 므낫세와 아몬을 "사악한 두 왕"으로 묘사한다. 그는 BC 643/642에서 641/640까지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BC 609년 여름에 파라오 네카우 2세의 손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요시야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전투는 이집트 역사에서 확인되며 31년 전인 BC 641년 또는 640년에 아몬의 통치가 끝나고 BC 643년 또는 642년에 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히브리 성경은 아몬이 아버지 므낫세의 우상 숭배를 계속하고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이교도의 인상을 심었다고 기록했다. 왕하에 따르면 아몬은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으며 그의 아버지가 간 길을 따라 걸었고 그의 아버지가 섬기는 우상을 섬기고 경배했다."라고 말한다(왕하 21:20-21). 마찬가지로, 대하에는 "… 그는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고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모든 새긴 우상을 위해 제물을 바치고 섬겼다."라고 기록했다(대하 33:22). 탈무드 전통에서 "아몬이 토라를 불태웠고, 거미줄이 [완전히] 제단을 덮도록 허용했다... 아몬이 매우 죄를 지었다."라고 설명한다. 다른 문헌 출처와 마찬가지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아몬의 통치를 비판하며 성경 기록과 유사한 용어로 그의 통치를 설명했다.

 

2년 동안 통치한 후 아몬은 자신에 대해 공모한 그의 종이나 관리들에 의해 살해되었고(대하 33:24), 당시 여덟 살이던 그의 아들 요시아가 계승했다(왕하 22:1). 아몬이 살해된 후 그를 죽인 자들은 "나라의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해 결국 죽임을 당했다. 요시야를 그의 후계자로 선포한 것은 나라의 백성들이었다(대하 33:25). 아몬을 살해한 관리들이 어떤 승계를 예상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아몬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그에게 끼친 큰 영향력을 사람들이 싫어했기 때문에 암살되었다고 주장했다.

 

므낫세-아몬-요시야, 16세기 발행

 

시대

 

아몬의 통치는 레반트와 전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과도기적 시기에 있었다. 유다 동쪽에서 아시리아 제국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였다. 서쪽으로 이집트는 아시리아 점령으로부터 프삼티크 1세 아래에서 회복하여 속국에서 자주적인 동맹국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권력 공백 속에서 유다와 같은 많은 작은 국가들은 대제국의 개입 없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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