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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고대 이야기/이스라엘

[남유다] 여호야김

by 금곡동로사 2021.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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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김을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여호야김은 BC 609년부터 598년까지 남유다의 열여덟 번째 왕이었다. 그는 요시야 왕(대상 3:15)과 루마 브다야의 딸 스비다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출생 시 이름은 엘리아김이었다.

 

 

배경

 

요시야가 죽은 후 여호야김의 남동생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선포되었지만 3개월 후 파라오 네카우 2세가 그를 퇴위시키고 엘리아김이 대신 왕이 되었다. 왕좌에 앉았을 때 그의 이름은 "여호야김"으로 변경되었다.

 

여호야김은 BC 598년까지 11년 동안 통치했으며 그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이라고도 함)가 뒤를 이어 단 3개월만 통치했다.

 

 

통치

 

여호야김은 네카우가 므깃도에서 요시야 왕을 죽인 지 3개월 만에 하란 전투에서 돌아온 BC 609년에 이집트의 왕인 네카우 2세에 의해 왕으로 임명되었다. 네카우는 불과 석 달 만에 여호야김의 동생 여호아하스를 물러나게 하여 그를 이집트로 데려갔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여호야김은 처음부터 이집트인의 속국으로써 많은 공물을 바쳤다. 돈을 모으기 위해 그는 "나라에 세금을 부과하고 그들의 재력에 따라 나라의 백성들로부터 은과 금을 요구했다"(왕하 23:35).

 

그러나 BC 605년 카르케미시 전투에서 이집트 인들이 바빌로니아 인들에게 패배한 후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피하기 위해 충성을 바꿨다. 그는 예루살렘의 보고와 일부 성전의 성물로 경의를 표하고 일부 왕족과 귀족을 인질로 넘겼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은 이들 중 하나라고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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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문학에서는 여호야김을 끔찍한 죄와 범죄를 저지른 불경건한 폭군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의 어머니, 며느리, 계모와 근친상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남자를 살해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때 남자의 아내를 강간하고 재산을 압수했다. 그는 또한 몸에 문신을 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회개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렘 36장). 또 다른 선지자 인 우리야 벤 스마야(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도 비슷한 메시지를 선포했고 여호야김은 그의 처형을 명령했다(렘 26:20-23).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우는 여호야김(렘 36:21-32) / 신 바빌로니아의 부상

 

여호야김은 BC 601년에 이집트 침공이 실패하여 그 지역에 대한 지배가 약화될 때까지 3년 동안 바빌로니아 인들의 속국으로 계속 있었다. 여호야김은 이집트인들에게 다시 충성했다. BC 598년 말에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유다를 침공하고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3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여호야김은 포위 공격이 끝나기 전에 죽었다. 역대 하에는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그를 족쇄로 묶어 바빌론으로 잡아갔다"고 기록되었다(대하 36:6). 예레미야는 그가 적절한 장례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유다 사람들을 묘사했다.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 22:18-19).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렘 36:30). 요세푸스는 네부카드네자르가 고위 장교들과 함께 여호야김을 죽인 다음 여호야김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성벽 앞에 던지도록" 명령했다고 썼다.

 

그는 아들 여고냐(여호야긴이라고도 함)가 계승했다. 3개월 후 네부카드네자르는 여고냐를 해임하고 (요세푸스에 따르면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 여호야김의 남동생 시드기야를 대신 왕으로 임명했다. 여고냐와 그의 가족과 많은 유다 백성은 바빌론으로 유배되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BC 597년 아달 2일(3월 16일)에 함락되었다.

 

바빌론 왕 7년째 되는 해(BC 598년 네부카드네자르의)에 키슬레브(11/12)에 군대를 모으고 하티 땅(시리아/팔레스타인)을 침공한 후 유다를 포위 했다. 아달월 둘째 날(3월 16일)에 그는 도시를 정복하고 왕(여고냐)을 포로로 잡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왕(시드기야)을 자리에 세우고 풍성한 공물을 받은 후 그는 (그들을) 바빌론으로 보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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