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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속주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by 금곡동로사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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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갈리아 구분과 부족들의 분포를 나타낸 지도

 

갈리아 루그두넨시스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예전에는 켈티카로 알려진 켈트족 영역의 일부였으며, 지금은 프랑스 지역이다. 속주는 아마도 이탈리아 서쪽 로마 유럽의 주요 도시이며, 중요한 제국의 조폐국이 있는 주도 루그두눔(오늘날의 리옹)에서 이름을 따왔다. 루그두눔 외곽에는 로마와 아우구스투스 숭배를 기리기 위해 대표자들이 만나는 갈리아의 성소가 있었다.

 

 

역사

 

갈리아 정복(BC 58-50년)을 기술한 데 벨로 갈리코(De Bello Gallico)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미 로마의 속주였던 갈리아 남부의 프로빈키아 노스트라와 갈리아의 다른 세 지역, 즉 아퀴타니, 벨가이, 그리고 켈타이라고도 알려진 갈리를 구분했다. 갈리의 영역은 갈리아 벨기카와 경계를 이루는 북동부의 센 강과 마른 강에서 갈리아 아퀴타니아와 경계를 이루는 남서부의 가론 강까지 확장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갈리아 루그두넨시스는 갈리의 영역을 축소하여 만들어졌다. 루아르 강과 가론 강 사이의 부분은 갈리아 아퀴타니아에, 동부 중앙 지역은 새로운 게르마니아 슈페리오르에 각각 주어졌다. 갈리아 루그두넨시스가 설립된 날짜는 아우구스투스가 갈리아를 방문한 BC 27년에서 25년 사이 또는 BC 16년에서 13년 사이가 논의되고 있다.

이곳은 황제의 레가투스가 통치할 만큼 중요한 황제 속주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분 통치(296년) 이후, 혼동되는 갈리아이(갈리아 속주들)라고 불리는 관구의 주요 속주가 되었고, 더 나아가 헬베티족, 벨기에족(둘 다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지방이 속해 있었다. 비엔넨시스(갈리아 남부의 속주들), 브리타니아이(또한 켈트족), 그리고 히스파니아이(전체 켈티베리아인의 반도)의 관구와 함께 이곳은 갈리아이라고도 불리는 프라이토리안 행정 구역을 형성했고, 서부 황제에 종속되었다.

이 속주는 486년 로마의 장군 시아그리우스가 프랑크족에게 패배하면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속주 편성에 따른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400년경 갈리아이 관구

 

소설

 

프랑스 만화책 아스테릭스(Asterix)에 나오는 가상의 정복되지 않은 마을은 아르모리카 반도(지금의 브리타뉴)에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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