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티아는 아나톨리아(오늘날 튀르키예 중부)에 있던 로마 제국의 속주 이름이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단독 통치 BC 30년-AD 14년)가 켈트족 갈라티아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범위로 BC 25년에 설립했으며, 주도는 안키라(오늘날 앙카라)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분통치 개혁에 따라 북부와 남부로 분리되어 파플라고니아 속주의 남부와 리카오니아 속주를 형성했다.
AD 398년경, 아르카디우스의 통치기에 갈라티아 프리마 속주와 갈라티아 세쿤다 속주, 즉 살루타리스 속주로 나뉘었다. 갈라티아 프리마는 옛 속주의 북동부에 해당하며, 안키라를 주도로 유지하고 집정관급 총독이 이끄는 곳이었다. 살루타리스는 옛 지방의 남서부 절반을 차지했으며, 페시누스에 자리 잡은 프라이세스(최하급 총독)가 이끄는 곳이었다. 두 속주는 폰투스 관구의 일부였다. 이 속주들은 536-548년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하에서 잠시 재통합되었다. 이 지역은 결국 7세기 후반에 새로운 아나톨리콘 테마로 통합되지만, 옛 속주 행정의 흔적은 8세기 초까지 남아 있었다.
역대 총독
첫 번째 갈라티아 속주
마르쿠스 롤리우스 BC 25-22년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폰티펙스 BC 14-13년
코르누투스 아퀼라 BC 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BC 5-3년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노니아누스 AD 3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6-7년
섹스투스 소티디우스 스트라보 리부스키디아누스 13-16년
프리스쿠스 16년경-20년 또는 21년
메틸리우스 20년경-25년 또는 21-26년
프론토 25년경-29년 또는 26-30년
실바누스 29년경-33년 또는 30-34년
티투스 헬비우스 바실라 33년경-37년경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누스 49-54년
퀸투스 페트로니우스 움브리누스 54-55년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68-70년
(AD 70-111년에 갈라티아는 카파도키아와 통합되었다. 해당 기간은 카파도키아 총독이 통치)
두 번째 갈라티아 속주
루키우스 카이센니우스 소스페스 111-114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바수스 114년경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베루스 114-117년?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갈루스 117-119년
아울루스 라르키우스 마케도 119-122년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세르기아누스 127년경-130년
율리우스 사투르니누스 130년경-13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136년경-139년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아이밀리아누스 131-161년
코르넬리우스 [덱스]테르 156년경-159년 또는 157-160년
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161-163년
루키우스 푸피디우스 폴리오 163-165년
티투스 리킨니우스 무키아누스 175년경-177년
루키우스 사이비니우스 프로쿨루스 177년경-180년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190년경-197년
[...] 발레리아누스 [...]니누스 194년경-197년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베루스 197/198년
가이우스 아티쿠스 노르바누스 스트라보 198-201년경
푸블리우스 카이킬리우스 우르비쿠스 아이밀리아누스 205년경-208년
푸블리우스 알피우스 막시무스 183년경-185년 또는 213-215년
루키우스 에그나티우스 빅토르 롤리아누스 215년경-218년
푸블리우스 플로티우스 로마누스 218년경-221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아프로니우스 마이니우스 피우스 살라말리아누스 221년경-224년
퀸투스 아라디우스 루피누스 옵타투스 아일리아누스 224년경-227년
퀸투스 세르바이우스 푸스쿠스 코르넬리아누스 229년경-230년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발레리아누스 230년경-232년
아우렐리우스 바실레우스 227년경-229년 또는 232-235년
마르쿠스 유니우스 발레리우스 네포티아누스 250년
미니키우스 플로렌티우스 250년 이후
기독교 행정부
칼케돈 공의회 규정(451년)과 히에로클레스의 시네크디모스"지리 문헌"(531년경)에 따르면, 갈라티아 프리마 속주는 안키라를 수석교구로 삼았고, 6개(타비움, 아스포나, 킨나, 라가니아 즉 아나스타시오폴리스, 미조스, 유리오폴리스)의 속교구가 있었다.
칼케돈 공의회 규정과 시네크디모스에 따르면, 갈라티아 세쿤다 속주는 페시누스가 수석교구로 있었고, 8개(오르키스토스, 페티네소스, 아모리온, 클라네오스(칼케돈에는 없음), 트로크나데스, 에우독시아스, 미리카, 게르마 즉 미리안겔론)의 속교구가 있었다. 페시누스는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노폴리스가 설립되자 쇠퇴하여, 결국 수석교구 직함은 그곳으로 옮겨갔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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