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제국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1편 로마의 부상

by 금곡동로사 2021. 8. 13.
728x90

BC 753년 로마의 건국

로물루스가 팔라티누스 언덕에 도시를 세운 뒤 BC 509년까지 로물루스를 포함하여 7명의 왕이 다스렸다.

 

 

에트루리아인

로마가 설립되었을 당시 이탈리아 중부는 에트루리아인의 세력이 강성했다. 왕정 시대에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부터 마지막 왕(7대)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까지 에트루리아계였다.

 

 

BC 500년경 로마의 공화국 전환 당시 이탈리아 반도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는 그리스 식민 도시들을 지칭하는 마그나 그라이키아가 있었고 로마 주변과 이남 지역은 여러 부족들이 통합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카르타고는 에트루리아와 동맹을 맺고 그리스 세력과 충돌했다.

 

 

BC 390년경 켈트족의 침공

BC 400년경 이탈리아의 모습. 켈트족이 이탈리아 북부를 잠식하고 있었고 에트루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침략하고 있었다. 브레누스가 이끄는 켈트족이 에트루리아 도시의 지원 요청을 받은 로마군과 알리아 강에서 전투를 벌였다. 완패하여 도주하는 로마군을 추격한 켈트족은 로마를 점령했고 로마인은 금을 지불하여 이들이 물러가도록 했다. 그리고 20여 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높이 10 미터, 폭 3.6 미터, 길이 11 km에 이르는 세르비아누스 성벽을 건설하여 외적의 침입에 방비했다.

 

 

BC 387-264년 로마의 이탈리아 정복

BC 500년 로마 공화국 전환 당시(진홍색), BC 338년 라틴전쟁 후(빨간색), BC 298년 제3차 삼니움 전쟁 직전(다홍색), BC 290년 3차 삼니움 전쟁 후(주황색), BC 272년 피로스 전쟁 후(살구색), BC 264년 제1차 포에니 전쟁 직전(노란색)

 

728x90

 

BC 264-241년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탈리아를 장악한 로마는 BC 264년 시칠리아의 그리스 도시 메시나의 지원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카르타고에도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된 로마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카르타고에 언제든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메시나에 개입했다. 로마가 메시나에 이어 카르타고와 연합한 시라쿠사까지 영향권 아래에 두게 되자 시칠리아 장악을 노리고 있던 카르타고는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갔다. 지상전에 이어 해군까지 밀린 카르타고는 로마와 강화를 맺고 시칠리아 포기와 배상금을 지불하며 전쟁을 끝냈다.

 

 

BC 218-202년 제2차 포에니 전쟁

전쟁 규모에 비해 시칠리아에 한정되었던 제1차 전쟁과는 달리, 제2차 전쟁은 서부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쟁이 되었다. 패전의 원인을 이탈리아 본토가 아닌 외부에서 싸웠기 때문이라고 여긴 한니발은 이탈리아 본토에서 전쟁을 벌여 동맹을 와해시키겠다는 생각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를 통해 로마에 침공했다. 칸나에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탈한 동맹은 카푸아와 남부 일부였으며 한니발은 이탈리아에 발이 묶이게 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등장으로 한니발의 기반 세력인 히스파니아를 빼앗기게 되고 카르타고가 있는 북아프리카에 나타나자 한니발은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스키피오에게 패배했다.

 

 

BC 214-148년 마케도니아 전쟁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과 동맹을 맺음에 따라 마케도니아 견제를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BC 205년 강화를 맺으며 전쟁이 끝났다. 셀레우코스와 마케도니아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확장을 시작하자 그리스 사절의 요청을 받은 로마는 그리스와 이집트에 대한 도발을 중단하라는 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제안은 무시되었고 로마는 BC 198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군대를 파병하여 마케도니아에 승리했다. BC 179년 필리포스 5세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왕위에 오르자 다시 공세를 취했다. 이에 로마는 BC 168년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에 승리하고 왕국을 4개의 작은 공화국으로 쪼갰다. 하지만 BC 150년 페르세우스의 아들임을 주장한 안드리스코스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로마는 전쟁에서 다시 승리했다. 이어서 BC 146년 아카이아 동맹이 로마에 대항하는 전쟁을 일으켜 코린토스를 완전히 파괴했다. 이후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아카이아 동맹은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BC 192-188년 셀레우코스 전쟁

셀레우코스의 영토를 거의 회복한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는 마케도니아가 무너지자 그리스 확장을 꾀했다. 안티오코스는 제국을 회복하면서 차지한 도시들을 잿더미로 만들고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추방하는 등 악명이 높았으며 당시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그에게 망명하여 고문이 되었다. 로마는 총동원령을 내리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파견해 맞서게 했다. 로마군이 승리하여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셀레우코스군을 추격했다. BC 190년 로마군이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셀레우코스의 그리스 정복은 좌절되었다. 셀레우코스는 소아시아 지역을 상실했으며 이후 동부의 파르티아, 남부의 유대 세력이 강해지면서 제국은 약화되었다.

 

 

BC 149-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은 로마는 제2의 한니발이 나올까 두려워하며 지속해서 카르타고를 탄압했다. 지난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더 이상 해상강국이 아니었고 군사력이 제한된 상태로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만 지배하고 있었다. 누미디아 사태에서 로마는 누미디아의 편을 들었고 BC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 사절에게 도시를 15 km 내륙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분노한 카르타고인은 반기를 들었고 그들은 싸우다 죽기를 택했다. 3년간 버틴 카르타고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점령되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