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에 달했을 때 로마는 유럽과 중동에 걸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BC 753년에 반신이기도 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테베레 강에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8세기 반 동안 양돈 농부들의 작은 마을에서 영국에서 이집트로 뻗어있는 지중해를 완전히 둘러싼 광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로마 제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사력으로 이 땅들을 공격하여 정복했고, 그들이 스스로 다스리게 하면서 이 땅들을 유지했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자 "필멸의 공화국 : 로마가 독재정에 빠진 이유"의 저자인 에드워드 J. 왓츠는 로마의 팽창에 대한 열망은 역사적 뿌리가 깊었다고 말한다.
"왕들이 통치한 도시의 팽창에 대해 이야기하는 근원적으로 로마 선사시대, 신화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마르키우스(또는 마르티우스)는 초기 로마 왕 중 한 명이며 [BC 642년부터 617년까지] 실제로 확장에 참여했으며 다른 언덕을 통합하기 위해 도시를 확장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팽창한다는 생각은 항상 공화국의 역사적 DNA, 심지어 공화국 이전의 군주제에서도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에트루리아 도시를 점령하면서 확장한 로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BC 509년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될 때까지 여전히 상대적으로 작았다. 공화국의 첫 번째 중요한 팽창은 BC 396년, 로마가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를 격파하고 점령했을 때였다. 고전주의자 메리 비어드는 베이를 파괴하는 대신 로마의 통제 하에 군대를 위한 자유민을 징집할 수 있다는 이해 아래에서만 이전처럼 도시를 계속 운영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왓츠는 베이 정복이 "그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영토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을 점령했기 때문에 [로마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후 2세기 반 동안 로마는 영토를 정복하고 독립적인 동맹국으로 만들거나 로마 시민권을 확장하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그는 "이탈리아의 흡수는 사실상 통합이었습니다. 식민지 체제가 될 것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BC 1세기에 로마 시민권을 모든 자유민에게 확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 해적 행위, 전쟁 및 다른 수단을 통해 얻은 이탈리아의 많은 노예들에게 시민권을 확대하지는 않았다.
로마 정복이 해외에 도달하다
이러한 흡수 전략은 로마가 첫 해외 영토를 정복하면서 바뀌었다. BC 264년에서 BC 146년 사이에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치르면서 로마는 지중해의 여러 섬과 오늘날 스페인의 동쪽 해안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로마는 공화국을 이 영토로 확장하거나 동맹을 맺는 대신, 새로운 영토를 속주로 지정하고, 이를 감독할 로마 총독들을 임명했다.
이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로마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왓츠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은 그들이 우연히 겪은 것이지만 그 결과로 영토를 차지하게 되어 기뻐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제1차 전쟁에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시칠리아에서 밀어낸 후, 이탈리아의 섬은 로마의 첫 해외 속주가 되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동안, 로마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그의 코끼리들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면서 방어에 나섰다. 이번에도 로마는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이번에는 당시의 스페인에서 영토 일부를 정복했다.
그러나 제3차 포에니 전쟁에 돌입할 무렵, 그는 "로마는 확실히 영토를 차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3세기에 그들이 하던 것과도 매우 다릅니다."
북아프리카 영토 정복
이번에는 로마가 오늘날의 튀니지에서 수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도시 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또한 북아프리카에 있는 카르타고의 모든 영토를 정복하여 로마의 속주로 만들었다. 로마는 이제 지중해 지역의 주요 패권 국가였다. 다음 세기에 걸쳐, 오늘날의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의 연안 영토를 정복하여 지중해를 완전히 둘러싸면서 그 위상을 굳혔다.
그 후, 로마는 인상적인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다양한 쇄도로 바깥으로 뻗어나갔고, 때로는 이웃 국가들과 왕국들이 무너지는 틈을 이용하기도 했다. BC 60년대에 로마는 중동까지 뻗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 동부 영토들은 로마가 주로 남겨둔 낡고 복잡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유럽 전역에서 로마의 영향력 확대
이후 10년간 율리우스 카이사르 장군은 로마 병사들을 이끌고 북서부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카이사르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가능하게 한 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왓츠는 말한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경력을 쌓은 방식입니다." 서부 영토에 대한 로마의 접근 방식은 약간 달랐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래되고 복잡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가 정권을 장악할 때 일부 로마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원활한 정권 이양을 위해 여전히 지역 지도자들의 손에 권력이 유지되게끔 애썼다.
카이사르는 유럽 전역에 로마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외에도 공화국의 종식과 로마 제국의 시작을 알렸다. 법에 위배되는 종신 독재관을 선언한 후, BC 44년 원로원 의원들은 그를 살해했다. 공화국은 그의 종손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BC 27년에 자신을 황제로 선언하면서 영원히 멸망했다. 이제, 거대한 로마는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이었다.
로마 제국의 정점, 그리고 붕괴
제국은 AD 117년에 국경을 강화하고 잉글랜드까지 진출하면서 절정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후, 지도자들이 시간과 정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확장은 멈췄다. 속주가 스스로 통치하도록 한 빈약한 제국의 구조는 로마제국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확장한 212년까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들었다(자유 여성은 남성보다 권리가 적어도 여전히 시민이었다).
그러나 제국 관료제의 확장은 제국을 관리하기 더 힘들게 만들었고, 이것이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다. 395년은 제국 전체가 하나의 황제 아래 통일된 마지막 해였다. 그 후, 서부는 한 세기 만에 갈라지고 무너졌다. 동쪽에서는 비잔틴 제국으로도 알려진 로마 제국이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출처 : History
'로마 이야기 > 로마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국의 리메스 (0) | 2021.12.22 |
---|---|
로마 공화국 군대 (BC 500-28년) (0) | 2021.09.29 |
로마와 갈리아의 만남 (0) | 2021.09.28 |
로마에서 유래한 300 (0) | 2021.09.27 |
로마 제국 함대 (0) | 2021.09.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