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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문명

황제들의 포룸

by 금곡동로사 202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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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궁전이 지어진 팔라티누스 언덕


왼쪽 뒤로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궁전이 있고, 전면에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거주한 도무스 아우구스티와 아우구스투스가 지은 아폴로 신전을 비롯한 신전들이 있는 구역이 있으며, 가운데에는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지은 도무스 플라비아(공적 공간), 도무스 아우구스타나(사적 공간), 스타디움이 있다. 도무스 세베리아나는 20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지은 언덕의 마지막 궁전이다. 바로 옆에 그가 세운 셉티조디움도 있다.

도무스 플라비아 아래에 파이다고기움은 황실과 귀족 자녀 및 궁정에서 일하는 소년들을 위해 그리스어와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시설이었다.

거대한 궁전들의 언덕은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팔라티누스 언덕과 주변을 바라본 고대 로마의 전경

 

황제 포룸의 조감도

 

카이사르가 사재로 포룸을 지은 이후 로마 황제들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포룸을 짓기 시작했다.

A 트라야누스 기둥
B 바실리카 울피아
C 트라야누스 시장
D 트라야누스 포룸
E 카이사르 포룸
F 아우구스투스 포룸
G 쿠리아(원로원 회의장)
H 바실리카 아이밀리아
J 네르바 포룸
K 평화 포룸(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지음)

 

BC 46년에 세워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포룸


카이사르는 포룸 로마눔의 확장을 위해 1억 세스테르티우스를 들여 북동쪽의 토지를 구입하여 BC 51년부터 포룸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포룸의 크기는 길이 160미터, 폭 75미터였다.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씨족의 조상이 베누스(비너스) 여신의 자손이라고 주장했고, 파르살로스 전투 전날에는 베누스 빅트릭스에게 신전을 바칠 것을 서약했다. 승리한 그는 포룸에 베누스 게니트릭스 신전을 짓기 시작했지만 신전은 암살된 이후에 완공되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 조각상을 신전 앞에 놓았다. 하드리아누스 시대에는 세 개의 연결된 분수가 신전 앞에 추가되었다.

 

BC 2년에 세워진 아우구스투스 포룸


아우구스투스는 BC 42년 필리포이 전투에서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신전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이후 40년이 지나 BC 2년에 포룸과 마르스 울토르 신전을 완공했다.

장기간에 걸쳐 짓다 보니 계획이 변경되어 포룸 양쪽의 길이가 달라졌다. 그리고 신전의 다른 용도는 크라수스가 원정에 실패한 후 잃었던 군단기(아퀼라)를 파르티아로부터 되찾아서 보관한 것이었다.

AD 9년,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3개 군단이 궤멸하면서 잃어버린 아퀼라도 되찾아서 보관했다.

 

AD 71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지은 평화 포룸


평화의 여신 팍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다른 황제들의 포룸과 달리 정치적인 기능을 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신전으로 불린다.

유대를 진압하면서 예루살렘에서 획득한 보물이 안팎으로 장식되었다. 황제는 제국에 가져온 평화와 번영의 상징을 나타내기 위해 이 웅장한 기념물을 세웠다.

 

85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짓기 시작했지만 97년 네르바 황제 시대에 완공되어 그의 이름을 딴 네르바 포룸


포룸은 길고 폭이 좁으며(길이 160미터, 폭 46미터) 양쪽은 회랑 대신 돌출된 기둥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미네르바 신전 옆으로 출입구가 있으며 원래 있던 길을 포함하고 있어서 포룸 트란시토리움으로 불리기도 했다.

 

112년에 세워진 마지막 황제 포룸인 트라야누스 포룸


트라야누스 황제는 106년에 다키아 원정을 마치고 포룸의 건설을 명했다. 112년 포룸이 완공되었고 113년에는 원기둥이 세워졌다. 이 기념비적인 복합 단지를 짓기 위해 퀴리날리스 언덕과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연결하는 능선을 제거했다.

퀴리날리스 언덕을 파낸 능선은 3층으로 된 트라야누스 시장 건물이 지탱했다. 포룸은 길이 300미터, 폭 185미터에 이르는 광장을 시작으로 양쪽에는 반원형의 엑세드라가 배치되었다.

광장을 지나면 바실리카 울피아가 있고 트라야누스 원기둥을 지나 최심부에는 트라야누스 신전이 있었다. 트라야누스 원기둥 양쪽에는 라틴어 문서와 그리스어 문서를 각각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었다.

 

바실리카 울피아 내부의 모습과 그 너머로 보이는 트라야누스 원기둥

 

트라야누스 원기둥 양쪽으로 있었던 도서관의 내부 모습.


각 도서관은 라틴어 문서와 그리스어 문서를 별도로 소장하고 있었다.

 

트라야누스 시장을 재건한 3D 이미지


교차 아치형 천장
아치형 콘크리트 지붕은 쇼핑객들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본당
위층에서는 무료 옥수수 배급이 로마인들에게 분배되었다.

비아 비베라티카
라틴어로 '술을 마시다'라는 뜻인데, 이 길은 한때 로마의 선술집이 있었다.

1층 상점
시장에서 가장 시원한 지역은 식료품과 꽃을 팔았을 것이다.

상층 통로
여기서 많은 암포라(도자기 용기)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와인과 기름을 저장했을 것이다.

 

트라야누스 원기둥


로마의 트라야누스 포룸에 38 미터의 높이로 있었다. 이 포룸은 프린켑스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건축가 아폴로도로스가 설계했다.

일지처럼
로마 군사력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증언 중 하나이다.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나선형으로 대리석에 새겨진 155개 장면을 통해 다키아인에 대한 두 번의 캠페인을 알려준다. 가만히 서서 아래에서 위로 읽었고 실제로 주요 장면은 두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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