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728x90

분류 전체보기905

기독교 연대표 - 중세 시대 800년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가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서방 최초의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하다 849-865년 북방의 사도 브레멘의 대주교 안스가르가 북게르마니아, 덴마크, 스웨덴의 복음화를 시작하다 855년 대립교황 아나스타시우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도비쿠스 2세가 교황 베네딕투스 3세 대신 그를 임명하지만 대중의 압력으로 인해 철회하다 86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가 슬라브 민족을 전도하기 위해 성 키릴로스와 성 메토디오스를 파견하다. 그들은 성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869-870년 카톨릭 콘스탄티노폴리스 제4차 공의회에서 포티오스 총대주교를 규탄하다 (정교회는 거부) 879-880년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제4차 공의회에서 교황 니콜라우스 1세와 필리오퀘를 비난하다 (카톨릭은 거부) .. 2024. 2. 5.
기독교 연대표 - 초기 기독교 공의회 시대 325년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통합을 위해 히에로니무스가 최초의 위대한 기독교 공의회라고도 칭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첫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조를 포고했지만, 아리우스, 테오나스파, 프톨레마이스의 세쿤두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니케아의 테오그니스와 같은 비삼위일체론자들에게 거부당하자 그들을 파문했으며, 부활절 논란을 다루고 예루살렘에 특별한 인정을 부여한 교법 VII과 같은 20개의 교법을 통과시켰다. 325년 5월 20일-6월 19일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25년 악숨 왕국(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이 기독교를 공식 국교로 선포한 두 번째 국가가 되다 325년 콘스탄티누스가 명을 내려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기념교회를 세우다 326년 11월 18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도의 무덤 위에 .. 2024. 2. 3.
기독교 연대표 - 니케아 공의회 이전 시대 100-150년? 야고보 외경,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 야고보 복음서, 도마의 유아기 복음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 (전편 복음서, 예수 세미나 발간) 110-130년?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주님의 말씀 강해"를 쓰고 분실되었으나, 널리 인용되다 (사도 교부들) 110년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오스가 스미르나 인들에게 기독교 교회가 카톨리코스("보편적")라고 쓰다 110-160년?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스, 필립포이 인들에게 보낸 서신 (사대 교부들) 112년 소 플리니우스가 비티니아에서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을 보고하다 120년? 랍비 타르폰이 복음서를 불태우는 것을 지지하다 125(+/-5)년? 베드로후서가 기록되었지만 400년대 초까지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다. 유다서, "카톨릭" 서신, 목회.. 2024. 2. 1.
기독교 연대표 - 사도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니산월 14일 또는 15일)과 부활 직후, 예루살렘 교회는 약 120명의 유대인과 유대교 개종자(사도행전 1:15)가 있는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세워졌으며, 오순절(시완월 6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변호한 일(행 5:34-39),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사도들이 흩어짐(행 7:54-8:8), 사마리아에서 마고스 시몬(행 8:9-24)과 에티오피아 환관(행 8:26-40)이 세례를 받은 일이 뒤따랐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사도"로 개종한 것은 사도행전 9:13-16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1:11–24 참조. 베드로는 전통적으로 최초의 이방인 개종자로 여겨지는 로마의 백부장 코르넬리우.. 2024. 1. 29.
기독교 연대표 - 초림 시대 이 연대표는 현시대(AD)의 시작부터 기독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연대의 물음표('?')는 대략적인 연도를 나타낸다. 1년은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그레고리력과 일치하는) 사용되는 기독교 달력(0년은 없음)의 첫 해이다. 전통적으로 이 해는 예수가 태어난 연도로 여겨졌지만,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더 이전 혹은 더 이후의 연대를 주장하며, 가장 많이 동의하는 연대는 BC 6년에서 BC 4년 사이이다. AD 6년 아우구스투스가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를 폐위하여 사마리아, 유대, 이두메아(에돔)를 로마의 직접 통치하에 있는 유다이아 속주로 합병하고, 카이사레아를 주도로 삼다.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레가투스(총독)가 되어 열심당의 반대를 받는 인구조사를 실시하다(고대 유대사 18, 누가복음 .. 2024. 1. 27.
새로 심은 밀밭 보통 5월이나 6월에 추수할 때 낫으로 곡식을 베고 다발로 모은 다음, 찧고 타작하여 곡식에서 겨를 분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평지에서 행해지는 밀 타작은 성서에서 심판을 상징한다(미가 4:12). 밀을 타작한 후에는 쓸만한 곡식에서 가치 없는 겨를 선별하는 키질을 해야 한다. 밀을 허공에 던지면, 가벼운 겨는 날아가고 더 무거운 곡식은 떨어진다. 밀 타작과 마찬가지로 키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푸른 밀밭 특히 날씨는 유월절과 칠칠절 수확기 사이에 밀이 자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곡식을 수확하기 전에 비가 오면 낟알이 땅에 떨어져 농작물을 망치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때를 따라 비를 주시는 분.. 2024. 1. 24.
올리브 나무 고목 올리브 나무는 높이가 약 20피트(7미터)에 이를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고령이 될 때까지 자란다. 이스라엘에 있는 몇몇 올리브 나무는 수천 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의 바위투성이 토양은 올리브 나무가 번성하는데 필요한 배수에 도움이 되며,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번성한다. 올리브 나무의 울퉁불퉁한 줄기는 나이가 들면서 속이 비게 되지만, 그 나무는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다. 성서 속 올리브유 구약성서에서 자이트(올리브)가 거의 25번 언급되는 한편, 히브리어로 기름을 뜻하는 셰멘은 150번 넘게 언급된다. 경전의 기름은 항상 올리브유를 가리킨다. 기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성서 시대에 이 나무가 얼마나 큰 가치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신명기 8:8에 나오는 일곱 가지 땅의 소산에서.. 2024. 1. 21.
포도나무와 포도밭 무성하고 황무한 넝쿨 성서 전체에서 그 어떤 식물보다도 많이 언급된 포도 덩굴은 성서 시대에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일상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에 성서에서 상징적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무성한 덩굴은 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들포도나 황무한 덩굴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징한다(예레미야 2:21). 포도나무 재배 이 나무 덩굴은 오로지 수고과 노고를 통해서만 재배된다. 이사야 5:1-8에는 그 과정의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언덕에서 재배하는 포도원은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돌을 치워야 했다. 그래야만 덩굴을 심을 수 있었다. 포도원 주위에 벽이나 울타리와 망루를 세워 도둑들을 막아냈다. 이 식물이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포도와 포도 잎의 용도 포도 덩굴.. 2024. 1. 18.
무화과나무 나무와 그 열매 높이가 거의 20피트(6미터)까지 자라고 잎이 큰 무화과나무는 기분 좋은 그늘을 제공한다. 작은 말벌들이 이 나무를 경작하고 잎이 나오기 전에 무화과가 열린다. 열매 눈 안에 많은 작은 꽃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나무의 꽃은 결코 볼 수 없다. 매년 두 개의 작물이 생산된다. 첫 번째 열매는 신선하게 먹고, 두 번째 열매는 겨울용으로 건조한다. 번영과 심판의 이미지 성서에 50여 차례 언급된 무화과나무는 고대에는 영양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백성들이 번성했을 때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열왕기상 4:25)라고 기술한다. 반면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면서 무화과나무가... 파멸할 것이라고.. 2024. 1. 15.
양과 양치기 양치기 양치기/목자는 성서에 언급된 첫 번째 직업이다(창세기 4:2). 양들은 목초지로 인도하고(풀을 먹음), 물을 제공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양치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양"과 "떼"는 성서에 12개의 히브리어 단어와 4개의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하여 수백 번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성서에 언급된 가장 유명한 동물이다. 잃어버린 양 세월 동안 양은 이스라엘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양모와 젖, 고기를 제공하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양은 성전과 성막에서 희생 제물로서 핵심적인 부분이었고, 성서에서는 자주 사람에 비교되어 그들의 의존성과 무력함을 보여주었다. 누가복음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 2024. 1. 11.
성서의 동물 낙타 성서는 고대에 낙타(히브리어 가말)가 주로 사막 유목민의 짐을 싣는 짐승으로 사용되었다고 묘사한다. 낙타는 사막의 열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두꺼운 털, 햇빛을 가려주는 긴 속눈썹, 그리고 갈라진 윗입술 덕분에 가시가 있는 식물을 먹을 수 있고 모래 폭풍이 몰아칠 때 콧구멍을 닫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낙타가 혈장에 일정한 양의 수분을 유지하면서 보통 소변으로 손실되는 화학물질인 요소를 재처리하기 때문에 장기간, 적어도 1주일 동안 물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분을 체중의 3분의 1까지 잃더라도, 10분 안에 그 손실을 보충할 수 있다. 오릭스 오릭스(히브리어 레엠) 또는 오록스는 두 개의 곧은 뿔로 유명한 초식동물이다. 영양의 한 종류인 오릭스는 무리를 지어 살고 먹이를 찾.. 2024. 1. 9.
1세기 유다 왕국 1세기 유대인 주택 가난한 가정의 집은 작고 평이했다. 집은 거친 돌(또는 진흙 벽돌) 벽과 가지를 엮어 점토로 덮은 지붕으로 지어졌다. 거주 공간은 요리 및 직조와 같은 집안일을 위해 사용되었다. 밤에는 가축들이 아래층에 수용되었다. 크기 비교 : 1세기의 주택은 더블 와이드 트레일러(이동식 주택 두 채 크기) 보다 작았고, 온 가족이 거주했다 1세기 갈릴리 어선 이런 유형의 작은 돛단배는 1세기 갈릴리에서 매우 흔했으며, 예수의 첫 제자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이 시기의 돛단배는 돛대와 '활대'만 있었으며, 바람이 잘 부는 조건에서 해안 근처에서 사용되었다. 이 시대의 어업 방법은 어부들이 자주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 결과 어부들은 옷을 입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요한복.. 2024. 1. 6.
고대 이집트 선박 주기적으로 이집트인을 포위한 바다민족을 확실히 물리치기 위해 람세스 3세는 그때까지 이집트에 부족했던 전함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비레메'는 장래 갤리선의 청사진이 될 것이었다. - 배수량 : 10톤 - 승조원 : 38명 (그중 12명은 병사) - 노잡이 : 24명 - 주목할 만한 관여 : 나일삼각주 전투 (BC 1176년) - 함대 : 람세스 3세 충각/램 나무로 만들고 청동으로 보강했다. 뱃머리에 위치해 있어 적 함선을 향해 돌격할 때 사용했는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중앙 갑판 궁수들이 이곳에 배치되어 사격 준비를 마쳤다. 갑판 양옆에는 노 젓는 사람들을 위해 좌석이 배치되었다. 까마귀 둥지 이 유형의 배는 돛대 꼭대기에 있는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까마귀 둥지를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함선으로.. 2024. 1. 2.
성서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음식 성서에 나오는 식단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넘어 훨씬 많았다. 모든 문화는 손이 닿는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로 요리를 만든다. 음식과 음료는 확실히 그 인구의 역사, 지리, 기술을 반영하며, 따라서 일상생활, 문화와 종교적 관습의 주요 측면을 드러낸다.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과 왕들, 사사들, 선지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살았던 반건조 기후에 적합한 동식물군 식단을 섭취했다. 그러나 또한 고대부터 남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예멘, 이집트, 동아프리카 및 동아시아 지역 사이에 이미 많은 무역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많은 상품 중에서) 향신료, 견과류, 말린 과일,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연고와 오일이 유통되었다. 야채, 곡물(보리, 밀, 귀리, .. 2023. 12. 27.
유대인의 복식 남성복 대부분의 유대인 남자들은 받쳐 입는 옷과 겉옷 및 샌들을 착용했다. 오늘날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패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복장은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아랍인들이 종종 비슷한 옷을 입는데, 중동 지역의 더운 기후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튜닉 흔히 튜닉이라고 불리는 받쳐 입는 옷은 몸에 딱 맞는 셔츠 같았다. 옷은 모직, 린넨 또는 면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튜닉은 팔 부분에 틈이 있었고, 다른 튜닉은 긴소매가 있었다. 때때로 남자들은 튜닉 아래에 로인클로스라고 불리는 속옷을 입었다. 튜닉은 종종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벨트로 허리에 고정되었다. 때때로 벨트에는 돈을 넣어두는 주머니가 있었다(마가복음 6:8). 남자가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편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 튜닉을.. 2023. 12. 2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