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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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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리아5

시리아와 이집트 대략 오늘날 시리아 공화국의 서부와 남부 국경에 해당하는 경계는 고대 시리아를 완만한 평야의 북쪽과 산지, 언덕과 사막으로 된 남쪽의 두 부분으로 나누며 선사시대에는 다른 발전을 따랐다. 이곳은 간략한 설명을 허락하지 않지만, 생각하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은 북쪽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 지중해 그리고 어느 정도 아나톨리아 사이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에 아주 초기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폭넓게 받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수백 개의 유적 언덕이 있는 북쪽이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처럼 철저히 탐사되었다면 BC 3천 년 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수메르 아카드 문명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거대하고 강력한 왕국이 에블라에서 발견된 것은 전혀 놀라운 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할 수 없었던 것.. 2021. 9. 12.
아시리아 3 - 신(新)아시리아 제국 신아시리아 제국은 철기 시대 메소포타미아 제국으로 B.C.911년에서 609년 사이에 존재했으며 그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 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제국 통치의 기초를 완성했으며, 그중 다수는 후대 제국들의 표준이 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철로 된 무기로 무장한 최초의 군대였으며 그들의 군대는 진보되고 효과적인 군사 전술을 사용했다. B.C.10세기 후반 아다드니라리 2세의 정복 이후, 아시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으며 라이벌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엘람, 페르시아, 우라르투, 리디아, 메디아, 프리지아인, 킴메르인, 이스라엘, 유다, 페니키아, 칼데아, 가나안, 쿠시 왕국, 아랍인, 이집트를 제압하고 정복하여 고대 근동, 동지중해, 소아시아, 코카서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 2020. 12. 17.
아시리아 2 - 중(中)아시리아 제국 중아시리아 제국, B.C.1392-1056 중기(B.C.1365-1056)에는 아슈르우발리트 1세, 아릭덴이리, 투쿨티니누르타 1세, 티그라트필레세르 1세와 같은 위대한 왕의 통치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근동의 후르리-미탄니 제국, 빛을 잃은 히타이트 제국, 이집트 제국, 바빌로니아, 엘람, 가나안, 프리기아를 전복했다. 에리바아다드 1세(B.C.1392-1366) 통치 무렵 아시리아에 대한 미탄니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에리바아다드 1세는 투슈라다와 그의 형제 아르타타마 2세와 그의 아들 슈타르나 3세 - 아시리아인의 지원을 구하면서 자신을 후르리의 왕이라고 불렀다 - 사이의 왕조 전투에 연루되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B.C.1365-1330)은 더 나아가 슈타르나 3세를 물리치고 미탄니 .. 2020. 12. 7.
아시리아 1 - 구(舊)아시리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아시리아는 B.C.25세기부터 (아수르 도시 국가의 형태로) B.C.612년에서 609년 사이에 붕괴될 때까지 레반트에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 왕국이자 고대 근동의 제국이었던 국가이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초기부터 중기부터 철기 시대 후반까지 이 오랜 기간은 초기(B.C.2600-2025), 구아시리아 제국(B.C.2025-1378), 중아시리아 제국(B.C.1392-934), 신아시리아 제국(B.C.911-609)으로 나누어진다. 아시리아는 셈어를 주로 사용하는 영역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티그리스에 집중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여러 기간 동안 강력한 제국을 통치하였다. 수메르, 아카드 제국, 바빌로니아를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요람"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아시리아는 그.. 2020. 11. 22.
미탄니 왕국 미탄니는 아시리아 어로 하니갈바트 또는 하니-라바트, 이집트 텍스트에서 나하린이라고 불렀는데, 시리아 북부와 아나톨리아 남동부에서 후르리어을 사용하는 국가였다. 현재 미탄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 : 미탄니는 이미 B.C.17세기 말이나 16세기 전반기에 강력한 왕국이었으며 그 시작은 투트모세 1세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히타이트왕 하투실리 1세와 무르실리 1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 가설 : 미탄니는 히타이트에 의한 얌카드 왕국의 파괴와 무르실리 1세의 죽음 이후 히타이트가 시리아 지역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으로 생성되었다. 두 번째 가설을 고려한다면, 미탄니(B.C.1500년-1300년경)는 히타이트에 의해 아모리인과 바빌론이 B.C.. 202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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