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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유럽/중세유럽

프랑스 역사 연대표 : 5-8세기

by 금곡동로사 202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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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401-500년)

418년 서로마제국. 갈리아의 서고트족 정착지(분홍색)

418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갈리아 아퀴타니아를 포이데라투스(군사동맹) 서고트족에게 정착지로 주었고, 이곳은 왈리아 왕과 아들이자 후계자인 테오도리크 1세 치하에서 향후 서고트 왕국의 핵심을 형성했다


426년  기록된 최초의 살리 프랑크족 군주 클로디오가 통치를 시작했다


448년  클로디오가 사망하고 메로베(메로베우스)가 뒤를 이었다

 

카탈라우눔 평원 전투에서 돌격을 준비하는 서고트 기병대를 묘사한 상상도

451년 6월 20일  샬롱 전투 : 로마군과 테오도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및 그 동맹군(프랑크족 포함)이 갈리아에서 훈족의 추가 침략을 완전히 저지했다. 테오도리크 1세는 전사했고, 왕위를 이은 아들 토리스문드가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53년  동생 테오도리크 2세가 토리스문드를 살해하고 서고트 왕위에 올랐다


457년  메로베가 사망하고 아들 킬데리크(킬데리쿠스) 1세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457-461년 마요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서로마제국

458년  로마제국 갈리아 속주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페르 갈리아스(갈리아 군사령관)에 아이기디우스가 임명되었다. 그는 로마의 잔존국이 되는 수아송 왕국을 설립했다

 

오늘날 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해당하는 셉티마니아

462년  로마 영토 셉티마니아가 서고트 왕국에 양도되었다


463년  고트족과 아이기디우스의 전쟁 : 아이기디우스와 킬데리크 1세가 아우렐리아노룸(오를레앙)에서 서고트족의 침공을 물리쳤다


464년  아이기디우스가 사망하고 아들 시아그리우스가 뒤를 이어 수아송 왕국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이 되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몰락한 직후의 유럽. 갈리아 중남부와 이베리아 대부분을 차지한 서고트 왕국(회색)과 북쪽의 수아송 왕국(진분홍색)

466년  동생 에우리크가 테오도리크 2세를 살해하고 서고트족의 왕으로 즉위하여 로마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치세 동안 서고트 왕국을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으로 확장했다


469년  에우리크의 반란 : 에우리크가 이베리아의 일부를 점령하고 갈리아 남부를 정복했다


481년  킬데리크 1세가 사망하고 아들 클로비스(클로도베쿠스) 1세가 뒤를 이었다


485년  에우리크가 사망하고 아들 알라리크 2세가 서고트의 왕으로 즉위했다

 

481년 갈리아. 프랑크(노란색)와 수아송(분홍색)의 위치

486년  프랑크-로마 전쟁 : 수아송 전투 :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 군대가 시아그리우스를 격파하고 수아송 왕국을 정복했다. 시아그리우스는 알라리크 2세의 왕국으로 피신했으나, 나중에 클로비스에게 다시 넘겨져 참수당했다

 

 

6세기 (501-600년)

전쟁 당시 프랑크(파란색)와 부르군트(녹색), 서고트(노란색)의 영토. 프랑크의 진격로(청녹색, 파란색 계열 화살표)와 동고트의 진격로(빨간색, 크림슨색 화살표). 선으로 나눠진 구역은 대주교와 주교 관할 지역

507년  프랑크-고트 전쟁(507-511) : 클로비스는 부이예 전투에서 알라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 군대를 격파하고 갈리아 아퀴타니아를 정복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기초를 형성했다

 

511년 프랑크 왕국의 분할. 파리 왕국(노란색), 수아송 왕국(주황색), 오를레앙 왕국(분홍색), 랭스 왕국(녹색)

511년 11월 27일  클로비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왕국은 네 아들에게 분할되었다. 파리를 수도로 한 영토는 킬데베르(킬데베르투스) 1세에게, 수아송 왕국은 클로타르(클로타리우스) 1세에게, 오를레앙 왕국은 클로도미르(클로도메리우스)에게, 랭스 왕국(아우스트라시아)은 테우데리크(테우데리쿠스) 1세에게 돌아갔다


524년 6월 25일  베제로런스 전투 : 클로비스의 아들들이 이끈 연합군이 부르군트 왕 고도마르 2세에게 심각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오를레앙의 왕 클로도미르가 전사했다
                         네우스트리아 왕 클로타르 1세가 클로도미르의 두 아들을 죽이고 셋째 아들을 숨어 지내게 하며 오를레앙 왕국을 차지했다


534년  테우데리크 1세가 사망하고 아들 테우데베르 1세가 뒤를 이어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이 되었다


547년  테우데베르 1세가 사망하고 아들 테우데발트가 뒤를 이어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이 되었다


555년까지 프랑크 왕국의 확장

555년  테우데발트가 사망하자 그의 왕국은 종조부 클로타르 1세에게 넘어갔다

 

558년 12월 13일  킬데베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형제 클로타르 1세가 영토를 물려받아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어 클로비스의 왕국을 재통일했다

 

561년 프랑크 왕국의 분할. 파리(분홍색), 부르군트(보라색), 아우스트라시아(녹색), 수아송(노란색)

561년 11월 29일  클로타르 1세가 사망했다. 그의 왕국은 네 아들에게 분할되었고, 파리는 카리베르(카리베리투스) 1세에게, 부르군트는 군트람(곤트라누스)에게, 아우스트라시아는 시게베르(시기베르투스) 1세에게, 수아송은 킬페리크(킬페리쿠스) 1세에게 돌아갔다


567년 11월  파리의 왕 카리베르 1세가 사망했다.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왕국은 형제들 간에 분할되었다


575년  아우스트라시아의 시게베르 1세가 사망하고 아들 킬데베르 2세가 왕국을 상속받았다

 

587년 프랑크 왕국. 군트람의 영토(분홍색), 킬데베르 2세의 영토(녹색), 클로타르 2세의 영토(노란색)

584년 9월  수아송(네우스트리아)의 킬페리크 1세가 암살당했다. 어린 아들 클로타르 2세가 왕이 되었고, 모후 프레데군트가 섭정이 되었다


589년 10월 17일  킬데베르 2세, 포 강 유역을 둘러싼 프랑크-랑고바르드-비잔틴 전쟁이 벌어졌다. 동로마 황제 마우리키우스가 랑고바르드에게 넘겨준 쿠카의 댐이 무너지면서 심각한 홍수가 발생하여 프랑크 군대의 이탈리아 진격이 막히게 되고 전쟁은 종식되었다

 

592년 1월 28일  부르군트의 군트람이 사망하자 그의 왕국은 양아들 킬데베르 2세에게 넘어갔다

          12월 8일  프레데군트가 사망하자 13세의 클로타르 2세가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595년  킬데베르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왕국은 두 아들에게 분할되었다.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은 테우데베르 2세에게, 부르군트 왕국은 테우데리크 2세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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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601-700년)

 

612년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테우데베르 2세가 암살당했다. 그의 왕국은 부르군트 왕 테우데리크 2세에게 넘어갔다


613년  테우데리크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서자 시게베르 2세가 왕국을 상속받았다
           클로타르 2세가 부르군트와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시게베르 2세를 처형하고 그의 왕국을 물려받아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623년  클로타르 2세가 아들 다고베르(다고베르투스) 1세를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으로 임명했다


다고베르 1세의 영토(분홍색)와 카리베르 2세의 영토(녹색)

629년  클로타르 2세가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다고베르 1세가 네우스트리아의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키텐 지역은 그의 형제 카리베르 2세에게 양도했다


632년 4월 8일  카리베르 2세가 사망했는데, 그의 형제 다고베르 1세의 사주로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린 아들 킬페리크가 아키텐의 왕위를 계승했다
                       킬페리크도 살해당했다. 다고베르 1세는 아키텐을 다시 획득하고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 후반 게으른(무력한) 왕을 묘사한 삽화

639년 1월 19일  다고베르 1세가 사망하고 아우스트라시아는 아들 시게베르 3세에게,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 왕국은 클로비스 2세에게 돌아갔다. 이 두 왕 모두 게으른 왕들(Rois fainéants)의 초기 왕으로 여겨진다


655년  클로비스 2세가 사망하고 아들 클로타르 3세(Roi fainéant)가 왕위를 계승했다


656년 2월 1일  시게베르 3세가 사망하고 양자왕 킬데베르(킬데베르투스 아돕티부스) 3세가 왕위에 올랐다


661년  양자왕 킬데베르가 사망하자 클로타르 3세는 왕국을 합병하고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662년  클로타르 3세의 동생 킬데리크 2세가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위를 계승했다


673년  클로타르 3세가 사망하고 그의 왕국은 동생 테우데리크 3세(Roi fainéant)에게 돌아갔다

           킬데리크 2세가 테우데리크 3세의 왕국을 합병하고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675년  킬데리크 2세가 암살당하고 테우데리크 3세는 네우스트리아를, 클로비스 3세(Roi fainéant)는 아우스트라시아를 물려받았다. 아키텐이 메로빙거 왕조의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676년  클로비스 3세가 사망하고 다고베르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679년  다고베르 2세가 암살당하자 테우데리크 3세가 그의 왕국을 물려받아 프랑크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691년  테우데리크 3세가 사망하고 아들 클로비스 4세(Roi fainéant)가 왕위에 올랐다


694년  클로비스 4세가 사망하고 그의 형제 킬데베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8세기 (701-800년)

714년 프랑크 왕국(분홍색, 녹색), 아키텐과 가스코뉴 공국(노란색)은 독립 지역. 메로빙거 왕조의 반복되는 왕국 분할과 분쟁은 왕권 약화와 영토 손실로 이어졌다. 어린 군주의 즉위로 마요르도무스(궁재)의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군사권도 가지면서 실권을 쥐게 되었다

 

711년 4월 23일  킬데베르 3세가 사망하고 아들 다고베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715년  다고베르 3세가 사망하고 킬데리크 2세의 막내아들 킬페리크 2세가 왕위에 올랐다


721년 2월 13일  킬페리크 2세가 사망했다(이후 왕들은 모두 게으른 왕들(Rois fainéants)이었다). 그의 후계자는 다고베르 3세의 아들 테우데리크 4세였다


732년 10월 10일  투르 전투 : 궁재 샤를 마르텔(카롤루스 마르텔루스)이 이끄는 프랑크족과 부르군트족 병사들이 우마이야 칼리파국 침공군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었다


737년  테우데리크 4세가 사망했지만 샤를 마르텔은 왕위 계승을 막았다


741년 10월 22일  샤를 마르텔이 사망하여 그의 영역은 두 아들 단신왕 피핀(피피누스 브레비스)과 카를로만(카를로마누스)에게 분할되었고, 그들은 궁재로서 통치했다


743년  프랑크 왕위가 7년 동안 공석이었던 후, 피핀의 영향력 덕분에 킬데리크 3세는 마침내 프랑크의 왕으로 선포되었다


747년 8월 15일  카를로만은 궁재 직위를 포기하고 수도 생활로 물러났고, 그의 영역은 동생 피핀에게 넘어갔다


메로빙거 왕권의 상징인 장발이 잘리면서 폐위된 킬데리크 3세

751년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인 킬데리크 3세가 폐위되었고, 이후 단신왕 피핀 3세가 프랑크의 왕으로 즉위하여 카롤링거 왕조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768년 9월 24일  피핀 3세가 사망했다

768-771년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의 영토(노란색)와 카를로만 1세의 영토(분홍색)

          10월 9일  샤를마뉴(카롤루스 마그누스)와 동생 카를로만 1세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포되었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왕국을 절반씩 차지했다


771년 12월 4일  카를로만 1세가 사망하자 샤를마뉴는 그의 왕국을 합병했다


피핀의 정복지(노란색), 샤를마뉴의 정복지(주황색)

774년  성공적인 정복 후 샤를마뉴는 랑고바르드의 왕이 되었다


795년  스페인 변경백령(마르카 히스파니카)은 샤를마뉴가 프랑크 왕국과 알안달루스(무슬림 통치 지역) 사이의 완충지대로 만든 것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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