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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도시로마

영묘, 우스트리눔 그리고 피라미드

by 금곡동로사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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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산탄젤로 성채로 불리는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아래 내용에 나오는 영묘, 우스트리눔(화장장), 무덤의 위치(X 모양)를 나타낸 지도

 

 

영묘는 황제가 그들의 가족을 위해 짓도록 한 무덤이다.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지만 시신이 들어 있지 않은 '기념비'와는 반대로 말이다. 후대에 산탄젤로 성채가 되는 하드리아누스의 영묘가 가장 거대했다. 바티칸 나우마키아와 칼리굴라의 키르쿠스(모형에서 제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묘는 거대한 개인 정원으로 둘러싸인 테베레 강둑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영묘는 에트루리아 무덤과 같은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었다. 직사각형 기반 위에 편백이 심어진 고분으로 뒤덮인 원통형 구조물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외에도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등 다른 유명한 사람들이 그곳에 묻혔다.

 

북서쪽에서 본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를 가리키는 지도

 

 

가장 유명한 기념비는 아마도 루키우스와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기념비일 것이다. 렉타 가도의 판테온 입구에서 가까운 사진 중앙에 팔각형 모양의 기념비가 나타나 있다.

 

 

 

하드리아누스 영묘 주변의 저택들을 가리키는 사진

로마의 도시 확장과 도시의 번잡함으로 인해 소수의 유복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빌라와 도무스를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밖에 짓도록 했다. 바티칸 지역과 하드리아누스 영묘는 가장 쾌적한 장소 중 하나였다. 사진에는  AD 44년 집정관이자 네로의 어머니인 소 아그리피나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한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의 주랑 현관과 정원이 있다.

 

크리스푸스의 주랑 현관을 가리키는 사진. 정원과 테베레 강의 조감도

 

 

크리스푸스가 경주나 시합에 사용하기 위해 가까운 장거리 달리기 트랙과 함께 집을 지은 곳은 그의 정원과 가까운 후미진 곳이었다.

 

크리스푸스의 저택을 가리키는 사진

 

 

테베레 강이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쪽으로 굽이쳐 있는 곳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첫 부인인 스크리보니아의 어머니였던 센티아의 거대한 저택이 나타난다. 정원과 건물의 넓이는 궁전이 호화롭다고 생각하게 했다. 크리스푸스의 저택 바로 위에 위치한 센티아의 사유지가 사진 중앙에 있다.

 

센티아 사유지의 조감도

 

 

그러나 가장 유명한 정원과 궁전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주변의 거대한 지역을 뒤덮고 있는 도미티아의 저택이었다. 사진에서 영묘 뒤로 있는 도미티아 궁전과 정원의 일부를 보여준다.

 

도미티아 궁전의 조감도

 

 

아우구스투스의 영묘는 지름이 약 90 미터, 높이가 42 미터였다. 중앙에는 황제를 위한 장례 공간이 마련되었고, 그 주변에는 가족 구성원들을 위한 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르켈루스, 아그리파, 드루수스, 루키우스와 가이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 리비아,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르바, 그리고 물론 아우구스투스를 포함한 여러 유명한 사람들 또한 그곳에 묻혔다.

 

아우구스투스의 영묘를 가리키는 지도

 

 

아우구스투스의 영묘 입구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두 개의 화려한 오벨리스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스트라본은 영묘에 대한 묘사에서 이들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 전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정된다.

 

남서쪽에서 본 아우구스투스의 영묘와 중앙 골목
영묘 입구의 오벨리스크를 가리키는 사진

 

 

플라비우스의 영묘는 알타 세미타를 따라 퀴리날레 꼭대기에 세워졌다. 사진의 중앙에 광대한 파란색 주랑 현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영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왕조의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을 것이다. 도미티아누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그의 형 티투스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의 영묘에 묻혔다. 그들의 시신은 아마도 새로 지어진 이 영묘로 옮겨졌을 것이다. 영묘가 이러한 가족 무덤의 전형적인 원형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이 부분에는 황제와 그 가족을 위한 우스트리눔(화장장)이 몇 군데 있었다. 사진 중앙의 위쪽에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우스트리눔이, 중앙 왼쪽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우스트리눔이 있다. 우스트리눔은 사각형 안뜰처럼 생긴 무덤의 변형이다. 때때로 고대 동전에 나타나는 장례식 장작처럼 서로 사이에 세워진 직육면체의 열로 형성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안토니누스의 우스트리눔이 대표적인 예다.

 

 

 

사진 중앙에 있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우스트리눔에는 거대한 기둥인 안토니누스 기둥이 있었는데, 이 기둥은 주랑 현관으로 둘러싸인 전경에서 볼 수 있다. 우스트리눔은 중심이 동일한 세 개의 사각형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토니누스의 우스트리눔은 안토니누스가 직접 지었지만 141년에 죽은 파우스티나를 위해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 후 161년에 안토니누스가 죽은 후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우스트리눔을 가리키는 지도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건축물보다 덜 인상적인 외관을 가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우스트리눔은 캄푸스 마르티우스 내에서 중요한 기념물이었다. 여기에는 기둥이 없었지만 화장장을 수용했던 중심이 동일한 사각형 담장으로 된 전형적인 건축물을 다시 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우스트리눔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안토니누스의 우스트리눔 옆에 지어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우스트리눔을 가리키는 지도

 

 

사진 중앙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우스트리눔은 플라미니아 가도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영묘 바로 옆에 있었다. 중심이 동일한 사각형으로 된 특성이 동일하더라도, 이 경우 화장장을 보호할 수 있는 큰 담장이나 주랑 현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우스트리눔을 가리키는 지도

 

 

하드리아누스의 우스트리눔은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서쪽 지점에 지어졌다. 미로처럼 된 특징적인 모양으로 사진 중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세히 보면 하드리아누스의 우스트리눔이 같은 구조, 즉 중심이 동일한 사각형으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입문 세 개를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우스트리눔을 가리키는 지도

 

 

하드리아누스의 영묘와 매우 가까운 곳에 고대 장례 기념물인 이른바 로물루스의 피라미드(메타 로물리)가 서 있었다. 이 피라미드는 중세시대에 로물루스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이 기념물은 16세기 초에 파괴되었다. 사진의 거의 중앙에 로마 도로를 따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앙에 파사드의 오른쪽 하단에 입구가 보이는 로물루스의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의 왼쪽에는 좁은 탑으로 둘러싸인 둥근 무덤이었던 테레빈투스 네로니스(Térébinthus Néronis)라고 불리는 타원형 기념물이 있다.

 

 

 

카이우스 케스티우스의 피라미드. BC 12년에 죽은 이 행정 장관은 피라미드 모양의 무덤을 지었다. 무덤은 후대에 법으로 성벽 내의 무덤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포함되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뒤덮인 이 기념물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에는 로물루스의 동생 레무스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포함된 카이우스 케스티우스 피라미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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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영묘와 하드리아누스 영묘의 재건 이미지
오늘날 아우구스투스 영묘와 주변 모습 / 뒤에서 본 하드리아누스 영묘의 모습과 야경 / 카이우스 케스티우스 피라미드
바티칸 시국에서 바라본 하드리아누스 영묘

 

 

출처 : maquettes-histor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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