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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도시로마

아우렐리아누스 성벽과 성문

by 금곡동로사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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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모습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범위와 문(분홍색)을 나타낸 지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271년에 어떤 공격에서든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로마 주변에 요새화 된 방벽(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건설할 것을 명령했다. 성벽의 둘레는 약 19 km였고 거의 도시 전체를 둘렀다. 성벽은 벽돌로 지어졌고 높이가 10 미터에 달했다. 캄푸스 마르티우스 옆의 테베레 강을 따라 있는 성벽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 영묘 옆의 테베레 강을 따라 있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포르타 포르투엔시스에 이르렀던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캄푸스 마르티우스에 있는 포르타 코르넬리아는 아일리우스 다리의 입구였다. 전경에 하드리아누스의 무덤의 조감도가 보인다.

 

포르타 코르넬리우스를 묘사한 그림

 

 

포르타 코르넬리아 근처에 있는 포르타 트리옴팔리스. 맞은편의 바티칸 골짜기로 통하는 네로 다리.

 

포르타 카르멘탈리스(포르타 스켈레라타(전면)와 포르타 트리옴팔리스(후면))

 

 

포르타 셉티미아나와 트라스테베레의 입구. 바티칸 골짜기와 트라스테베레를 잇는 셉티미아나 가도는 테베레 강과 야니쿨룸 언덕을 따라갔다.

 

오늘날 포르타 셉티미아나의 모습

 

 

포르투엔시스 가도에 있는 포르타 포르투엔시스. 이 문은 엠포리움 맞은편의 테베레 강 남쪽에서 트라스테베레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포르타 포르투엔시스를 묘사한 그림

 

 

아우렐리아 문은 서쪽 해안에서 오는 여행객들을 위한 로마로 가는 출입구였다. 로마와 니스를 연결한 위대한 아우렐리아 가도는 아마도 BC 240년 경에 지어졌을 것이다.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밖으로, 도시 외곽의 도로 옆을 항상 둘러싸고 있는 사원, 제단, 무덤을 볼 수 있다.

 

포르타 산 판크라치오(구 포르타 아우렐리아)의 옛 모습을 묘사한 그림
오늘날 포르타 산 판크라치오의 모습

 

 

오스티엔시스 가도에 있는 포르타 오스티엔시스. 아벤티노를 향해 가려면 이 문을 통과해야 했다. 두 개의 반원형 탑이 나란히 있는 두 개의 통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왼쪽에는 피라미드 형태의 C. 케스티우스 무덤이 보인다. 포르타 오스티엔시스는 포르타 산 파올로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날 포르타 산 파올로의 모습

 

 

포르타 오스티엔시스와 문에서 본 비쿠스 포르타이 라우두스쿨라나이.

 

케스티우스 무덤과 포르타 산 파올로

 

 

포르타 카페나를 가리키는 사진

포르타 카페나. 이 문은 BC 6세기부터 로마의 강력하고 오래된 세르비우스 성벽에서 열렸다. 유명한 아피아 가도를 지나게 된 것은 이 문을 통해서였다.

 

포르타 카페나를 묘사한 그림
포르타 카페나를 가리키는 지도

 

 

명예와 미덕의 신전을 가리키는 사진

명예와 미덕의 신전. 명예 또는 군사적 영광은 로마에서 단독으로 또는 미덕(비르투스)과 연관된 숭배의 쟁점이었다. 그 숭배에 여러 신전이 세워졌으며 그중 하나는 도시 북쪽에 있는 포르타 콜리나와 가까운 곳에, 하나는 Arx에 있었고, 이곳은 포르타 카페나에서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사진 왼쪽에서 알 수 있다. 축제는 5월 29일에 거행되었다.

 

 

 

호라티아의 무덤을 가리키는 사진

호라티우스의 누이 호라티아의 무덤(또는 카밀라). 호라티우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누이 카밀라를 검으로 죽였을지도 모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호라티와 쿠리아티의 전설). 이 무덤은 장식된 돌로 만들어졌다.

 

 

 

아바스칸투스의 목욕탕을 가리키는 사진

아바스칸투스의 목욕탕. 명예와 미덕의 신전과 아쿠아 마르키아 사이에 세워진 900개의 로마 목욕탕 중 하나였다.

 

 

 

마르켈루스 무덤(중앙 왼쪽)과 킨키아 무덤(가운데)을 가리키는 사진

포르타 카페나와 가까운 왼쪽에 있는 마르켈루스의 무덤은 9번째 집정관을 지내면서 명예와 미덕의 신전을 지은 마르켈루스가 세운 것이다. 무덤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마르켈루스 동상으로 장식되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킨키아의 무덤이다. 두 무덤이 모두 아피아 가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포르투나 레둑스의 제단을 가리키는 사진

명예와 미덕의 신전과 호라티아 무덤 사이에 있는 포르투나 레둑스(귀환을 관장하는 행운)의 제단. 이 제단은 아우구스투스가 시리아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로마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를 위해 원로원은 폰티펙스와 베스타의 여사제에게 매년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포르투나 여신에 해당하는 그리스 여신은 티케였다.

 

 

 

메르쿠리우스 목욕탕을 가리키는 사진

명예와 미덕의 사원 뒤에 지어진 메르쿠리우스 목욕탕.

 

 

 

로마에서 티부르(오늘날의 티볼리)로 이어지는 에스퀼리노 북동부의 Regio V에 있는 포르타 티부르티나. 이 문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오늘날 포르타 티부르티나의 모습

 

 

포르타 프라이네스티나, 오늘날 포르타 마조레(정문)는 수도교인 아쿠아 클라우디아(수로 하단)와 아니오 노부스(수로 상단)의 이중 아치 문이었다. 52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건설된 이 문은 252년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통합되었다. 이 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1838년도 포르타 마조레의 복원 중에 나타난 제빵사 에우리사케스와 그의 아내 아티니아의 공화국 시대 무덤(BC 30)을 볼 수 있다.

 

오늘날 포르타 마조레의 모습

 

 

포르타 라티나. 문은 남쪽으로 통하는 길인 라티나 가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문은 두 개의 원통형 탑이 측면에 있는 하나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통과하자마자, 라티나 가도에는 영묘와 무덤이 흩어져 있었다.

 

오늘날 포르타 라티나의 모습

 

 

포르타 플라미니아(오늘날의 포르타 델 포폴로)는 로마로 가는 주요 북쪽 출입구였다.

 

포르타 델 포폴로의 측면에 있던 두 고대 탑을 묘사한 그림
오늘날 포르타 델 포폴로의 모습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270년에서 273년 사이에 세워진 포르타 노멘타나는 그 당시에 하나의 아치에 두 개의 반원통형 탑이 측면에 놓여있었고, 그중 오직 하나만이 오늘날 여전히 서있다.

 

오늘날 포르타 노멘타나의 모습. 문이 막혀있다

 

 

포르타 살라리아. 살라리아 베투스 가도를 통해 세르비우스 성벽에 있는 포르타 콜리나에서 살라리아 노바 가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문은 5세기에 황제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의 치세 동안 강화되었지만, 410년 12월 24일 로마를 약탈한 고트의 왕 알라리쿠스 1세의 침공을 막지 못했다. 문은 결국 1921년에 파괴되었다.

 

포르타 살라리아를 묘사한 1750년도 그림
파괴되기 전 포르타 살라리아의 모습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에서 본 성벽 내부 / 복원된 성벽과 탑 / 성벽과 타워는 점차 개인 주거지가 되었다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 / 포르타 아시나리아

 

 

출처 : maquettes-histor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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