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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속주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by 금곡동로사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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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는 히스파니아에 있던 세 개의 로마 속주 중 하나였다. 그것은 오늘날 포르투갈의 노르트 지역과 함께 오늘날 스페인의 북부, 동부, 중부 영토의 대부분을 포함했다. 현재 안달루시아라고 불리는 스페인 남부는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였다. 서쪽의 대서양 연안에는 부분적으로 오늘날의 포르투갈과 일치하는 루시타니아 속주가 있었다.

 

 

역사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은 BC 8세기에서 6세기에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리스인도 나중에 해안을 따라 식민지를 건설했다. 로마인은 BC 2세기에 도착했다.

타라코넨시스라고 불리는 로마 제국의 속주는 BC 27년 아우구스투스의 재편으로 공화국 후기에 총독이 통치하던 히스파니아 키테리오르를 대신했다.

 

주도는 타라코(오늘날 카탈루냐주 타라고나)였다. 타라코넨시스 내에서 벌어진 칸타브리아 전쟁(BC 29-19년)은 이베리아 전체를 로마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베리아 북부 해안에 있는 아스투레스와 칸타브리는 마지막으로 평정된 민족이다. 타라코넨시스는 황제 속주였고 다른 두 이베리아 속주인 루시타니아와 원로원 속주 바이티카는 분리되었다. 68-69년에 잠시 황제를 지낸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61년부터 이 속주를 통치했다. 73년에 대 플리니우스가 타라코넨시스에서 프로쿠라토르를 역임했다.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치세에,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는 갈라이키아, 카르타기넨시스, 타라코넨시스의 세 개의 작은 지방으로 분할되었다.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황제 속주는 수에비족, 반달족, 알라니족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409년에 시작해 서고트 왕국의 수립으로 종결되는 5세기의 침략까지 존속했다.

그 침략은 금속, 특히 금, 주석, 은에 대한 광범위한 수탈을 초래했다. 라스 메둘라스의 충적 금광은 로마 기술자들이 주변 산지에서 물을 얻기 위해 최대 48 km(30 마일) 길이의 여러 수도교를 이용해 대규모로 침적물을 작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부드러운 암석에 빠른 물줄기를 흐르게 하여 수압 채굴 방법(루이나 몬티움)으로 많은 양의 금을 추출할 수 있었다. 금이 고갈되었을 때, 그들은 훨씬 더 단단한 금을 함유한 암석을 부수기 위해 화력 채굴 터널을 통해 암반층을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대 플리니우스는 히스파니아에서 사용된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의 관찰에 근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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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00년경 이베리아 토착민의 분포도
5세기 초 이베리아로 이주한 수비에족
5세기 이민족의 침공에 따른 이베리아의 세력도

 

종교

 

히스파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은 이시스였고, 위대한 어머니 마그나 마테르가 그 뒤를 이었다. 카르타고 페니키아의 신 멜카르트(태양신이자 바다의 신)와 타니트 카일레스티스(달도 연결되는 어머니 여왕)도 인기가 있었다. 로마 판테온은 동일함을 통해 토속 신들을 빠르게 흡수했다(예를 들어, 오랫동안 그리스인에게 헤라클레스의 변형으로 여겨진 멜카르트는 헤르쿨레스가 되었다). 바알 함몬은 카르타고의 최고 신이었으며 히스파니아에서도 중요했다. 이집트의 신 베스와 오시리스도 추종자가 있었다.

 

 

수출품

 

타라코넨시스의 수출품은 목재, 진사, 금, 철, 주석, 납, 도자기, 대리석, 포도주, 올리브유 등이다.

 

스페인 레온 지방에 있는 라스 메둘라스 금광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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