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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전쟁 이야기/전투-워페어

선사시대 무기

by 금곡동로사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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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세기경(톨룬드 사람 시대) 북유럽 민족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

 

인간의 무기 중 가장 오래되고 널리 보급된 것은 창이다. 원래는 돌이나 뼛조각으로 한쪽 끝을 날카롭게 한 나무 장대에 불과했지만, 약 50만 년 전 구석기시대 사람이 불을 발견한 후에는 그 끝을 단단하게 하고 날카롭게 하기 위해 탄화를 사용했다. 다음 단계는 창끝을 강화하기 위해 돌이나 뼈 조각을 넣은 다음, 날을 고정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창은 찌르는 것과 던지는 것의 두 종류가 있었다. 던지는 창 또는 투창은 더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었고 범위를 늘리기 위해 투창 레버라고 불리는 장치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지렛대 역할을 하며 창 끝이 끼워지는 갈고리 또는 홈이 있는 나무, 뼈, 뿔 조각이었다.

인간의 다른 무기는 몽둥이와 도끼이다. 몽둥이는 원래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고, 끝은 손잡이보다 더 컸다. 창 끝처럼, 끝부분은 돌로 보강되었다. 도끼의 원형은 전체가 돌로 만들어졌으며, 단순히 아몬드 모양으로 도끼날을 만들었다. BC 3500년경에는 구부러진 나무에 날을 끼우는 홈을 파서 끈과 수지를 사용하여 돌날을 부착한 나무 자루 또는 손잡이가 도입되었다. BC 7000-2000년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갈고 연마하고 뚫는 기술이 발달하여 도구로나 전쟁 무기로서 도끼의 활용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도끼날은 이제 종종 '눈'이라고 알려진 둥근 구멍을 뚫어 손잡이에 고정되었다.

아마도 놀랍게도 활은 BC 15000년경에 이미 존재했다. 활은 지중해 문명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9천 년 기에 북유럽에서 채택되었다. 처음부터 주목(朱木)은 인장력이 좋았기 때문에 선호되는 목재였지만, 주목이 자라지 않는 추운 기후에서는 느릅나무와 때때로 소나무가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활은 사람 크기로 만들어졌고, 3천 년 기가 되면 뿔과 힘줄로 강화된 합성 궁이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끈은 보통 엮은 가죽 줄로 만들어졌다. 돌화살촉을 사용했고, 화살은 뼈 또는 뿔을 구멍에 통과시켜 곧게 만들었다. 정확도 면에서 중요한 표준 크기의 화살을 얻기 위해 돌에 홈을 파서 관을 만들어 깎아냈다. 또 다른 기본 무기는 가죽 슬링에서 둥근돌을 투척하는 슬링샷으로, 던지는 사람은 돌에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렸다.

 


후기 빙하기 사냥 기술

크네흐트의 후기 구석기시대 원거리 무기의 진화에 대한 연구(1994)는 사람들이 빙하기 환경과 동물 사냥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또한 이 사람들 사이에서 발전된 개념적 능력과 사용 가능한 재료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크네히트는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한 창을 향한 기술적 진보를 설명할 수 있었다. 재료와 형태의 점진적인 변화에서 또 다른 중요한 고려사항은 거주지를 떠나 있는 동안 수리가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사냥용 무기로서 창끝의 속도와 효율성을 시험하기 위해 염소 사체를 이용한 실험도 수행했다. 실험을 통한 발견은 스텔무어(아흔스부르크 문화)의 발견을 확증한다. 활, 투창 또는 인간의 힘으로 던지는 돌은 동물의 조직과 뼈를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크고 위험한 먹잇감의 사냥은 멀리서도 효과적이고 더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었다.

 

 

 

출처 : Weapons and War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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