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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로마 이야기/로마속주

로마 속주

by 금곡동로사 202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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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 제국(BC 31-AD 14). 노란색 : BC 31년의 제국 영토, 진녹색 : BC 31-19년 합병, 녹색 BC 19-9년 합병 및 확장, 연녹색 BC 9-AD 6년 합병 및 확장, 분홍색 : 클리엔테스 국가와 지역
하드리아누스(125년) 시대의 로마 제국 속주

 

로마 속주(라틴어 : 프로빈키아)는 이탈리아 이외의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으로 공화국 하에서 로마인이 통제하고 나중에는 제국 하에서 통치했다. 각 지방은 총독으로 임명된 로마인에 의해 통치되었다.

 

 

개요

 

속주는 사분통치(AD 293년부터) 전까지 이탈리아 바깥의 제국 영토 소유의 가장 큰 영토 및 행정 단위의 기본이 되었다. 현재 영어에서 사용되는 지방(province)이라는 단어는 로마인이 사용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속주는 일반적으로 원로원 의원 계급의 정치인, 일반적으로 전 집정관 또는 전 법무관이 통치했다. 이후의 예외는 이집트 속주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포함되었고 아마도 원로원의 야망에 대한 견제를 위해 기사 계급의 총독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 예외는 독특하지만 이전 헬레니즘 시대의 왕들의 전통에 따라 이집트가 아우구스투스의 개인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로마 법에 위배되지 않았다.

 

라틴어 프로빈키아는 "관할권"보다도 일반적인 의미를 가졌다.

 

 

공화국의 속주

 

라틴어 프로빈키아는 원래 로마 원로원이 임페라토르(지휘권)를 가진 사령관에게 부여한 임무나 일련의 책임을 의미했으며 이는 종종 특정 작전 현장에서 있었던 군사 명령이었다. 로마 공화국 하에서 집정관은 1년의 임기로 선출되었고, 군사 행동에서 장군으로 활동하는 집정관들과 같이 로마 도시 밖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명령을 내리는 권한의 범위에 있는 특정 속주에 배정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영토는 어떤 경우에는 완전한 복종(deditio)을 수반하는 다양한 형태의 조약의 적용을 받았다. 영토의 공식적인 합병은 지리적으로 정의된 행정 단위의 현대적인 의미를 가진 지방(속주)을 만들었다. 공화국 시대의 속주는 전년도에 지휘권을 수행한 집정관과 법무관에 의해 1년 임기로 관리되었다.

 

로마는 1차 포에니 전쟁 동안 이탈리아 너머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합병된 최초의 영토는 BC 241년의 시칠리아와 BC 237년의 코르시카-사르디니아였다. 군사화된 확장주의에서 더 이상 직위를 채울 자격이 있는 사람이 부족해질 때까지 이러한 행정 구역의 수를 계속 늘렸다.

 

지방 총독의 임기는 종종 수년(prorogatio) 동안 연장되어야 했고 때때로 원로원은 심지어 개인으로서 시민(privati), 특히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에게도 지휘권을 수여했다. 정회는 집정관이 매년 선출되는 공화국 법의 원칙을 훼손했으며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통해 불균형한 부와 군사력을 축적한 것은 공화국에서 제국의 독재 정치로의 전환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공화국 속주 목록

 

· BC 241 - 시킬리아 :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로부터 획득.

· BC 237 - 코르시카와 사르디니아 : 카르타고에서 일어난 용병 전쟁 직후 BC 238년과 BC 237년에 카르타고로부터 획득.

시킬리아 속주 / 코르시카 사르디니아 속주

 

· BC 197 - 히스파니아 키테리오르 : 이베리아 반도의 동쪽 해안.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로부터 획득.

· BC 197 - 히스피니아 울테리오르 :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해안.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로부터 획득.

 

· BC 147 - 마케도니아 : 2차 아카이아 동맹의 반란 후 합병.

· BC 146 - 아프리카 : 오늘날의 튀니지와 리비아 서부. 카르타고가 있던 본국. 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파괴한 후 합병.

마케도니아 속주. 지도는 에피루스와 아카이아 속주가 분리된 모습 / BC 146년 아프리카 속주

 

· BC 129 - 아시아 : 이전의 페르가몬 왕국. 아나톨리아 서부(현재의 터키). BC 133년에 마지막 왕인 아탈로스 3세가 로마에 유증.

· BC 120 -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 프랑스 남부. 합병 전에는 갈리아 트란살피나(알프스 저쪽의 갈리아)로 불렸으나 갈리아 키살피나(알프스 이쪽의 갈리아, 이탈리아 북부)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이 바뀜. 동맹인 그리스 도시 마살리아(마르세유)가 공격받은 후 지역 합병.

소아시아 지역의 확장도 / 정복 이전의 갈리아 지역을 구분한 지도

 

· BC 67 - 크레타-키레나이 : 키레나이카는 BC 78년에 로마에 유증 되었지만 속주로 편성되지 않음. BC 67년 크레타 합병 후 크레타-키레나이로 통합.

· BC 63 - 폰투스-비티니아 : 비티니아 왕국(아나톨리아 북서부, 터키)은 BC 74년에 마지막 왕 니코메데스 4세에 의해 로마에 유증 됨. 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BC 73-63)이 끝난 뒤 폼페이우스는 BC 63년 패배한 폰투스 왕국의 서쪽 부분을 포함하여 로마의 속주로 편성.

크레타 키레나이 속주 / 폰투스 비티니아 속주

 

· BC 63 - 시리아 : 폼페이우스가 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끝난 후 합병.

· BC 58 - 킬리키아-키프로스 : 킬리키아는 BC 102년 해적 퇴치 캠페인에서 군사 지휘를 위해 속주로 만들어짐. 로마인들은 작은 지역만을 통제. BC 74년 리키아와 팜필리아가 킬리키아에 추가됨. 킬리키아는 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끝날 무렵 로마의 통제하에 완전히 들어감. BC 63년 폼페이우스에 의해 이 지역이 재편되었으며 BC 58년 키프로스가 합병되어 속주에 추가됨.

시리아 속주 / 킬리키아 키프로스 속주. 지도는 키프로스가 분리된 모습

 

· BC 46 - 아프리카 노바 : 누미디아 동부. 현재의 알제리.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프리카 베투스(구 아프리카)로 알려진 오래된 아프리카 속주와 구별하기 위해 누미디아 동부를 합병한 후 아프리카 노바(새 아프리카)로 이름 지음.

아프리카의 속주들을 나타낸 지도. 아래쪽은 카르타고가 지배했던 영역

 

갈리아 키살피나(이탈리아 북부)는 군사 지휘권이라는 의미에서는 속주였지만 행정 단위의 의미에서는 결코 속주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가 확장되는 동안 로마인들은 반란이나 침입의 위험으로 인해 집정관과 법무관에게 할당된 군사 명령 지역의 의미에서 일부 지역을 속주로 할당했다. 이것은 일련의 반란인 브루티움(칼라브리아)과 갈리아 키살피나의 반란의 위험을 인식했기 때문에 리구리아에도 적용되었다.

 

로마 속주 갈리아 키살피나의 초창기 문제는 반란이었다. 나중에 문제는 이탈리아 동부의 호전적인 사람들의 침략 위험이었고 아퀼레이아 도시는 침략으로부터 이탈리아 북부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 지역을 이탈리아로 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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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정 시대의 제국 속주

 

로마 제국을 세운 BC 27년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속주의 통치가 규제되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는 내전에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승자이자 로마의 주인으로 등장했으며 공식적으로 그의 권력을 내려놓았고 이론적으로 로마 원로원의 권위를 회복시켰다. 옥타비아누스 자신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취했으며 이집트 외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갈리아, 히스파니아, 시리아(킬리키아와 키프러스 포함)의 속주를 통치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하에서 로마의 속주는 원로원 또는 황제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었는지에 따라 원로원 속주 또는 황제 속주로 분류되었다. 일반적으로 공화국 아래 존재했던 오래된 지방은 원로원 속주가 되었다. 원로원 속주는 공화국 때처럼 총독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할당된 지방에 따라 전직 집정관 또는 전 법무관이었던 원로원 의원 중 추첨에 의해 선택되었다.

 

주요 황제 속주는 집정관 또는 법무관 등급의 원로원 의원이기도 한 총독(legatus Augusti pro praetore) 아래에 있었다. 이집트와 군단이 없는 일부 작은 속주는 검찰관(이집트는 프라이펙투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황제는 원로원 의원이 아닌 기사 계급 중에서 선택했다.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117년) 아래 가장 큰 규모였다. 녹색 : 황제 속주, 분홍색 : 원로원 속주, 회색 : 클리엔테스 국가

 

속주의 상태는 수시로 변경될 수 있었다. AD 68년에는 총 36개 속주 중 11개 원로원 속주, 25개 황제 속주였다. 15개는 총독 아래 있었고 10개는 검찰관 또는 프라이펙투스 하에 있었다.

 

원수정 기간 동안 영토의 수와 크기도 정복 또는 기존 영토의 분할을 통해 변경되었다. 크거나 가장 많이 주둔하는 속주(예 : 시리아와 모이시아)는 한 명의 총독이 너무 많은 권력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더 작은 속주로 세분화되었다.

 

원수정 기간 동안 생성된 속주 목록

 

아우구스투스

 

· BC 30 - 아이깁투스 : BC 30년 이집트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가 패배한 후 아우구스투스가 점령. 이집트인들이 그를 새로운 파라오로 인식함에 따라 아우구스투스 자신의 영토라는 점에서 최초의 황제 속주가 됨. 초기 이름은 알렉산드레아-아이깁투스. 아우구스투스가 보낸 프라이펙투스가 통치.

· BC 27 - 아카이아 : 그리스 중부와 남부. 아우구스투스가 마케도니아에서 분리. 원로원 속주.

아이깁투스 속주 / 아카이아 속주

 

· BC 27 -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 스페인 북부, 중부, 동부. 이전의 히스파니아 키테리오르 속주. 아우구스투스의 속주 개편으로 생성. 황제 속주.

· BC 27 -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 스페인 남부. 이전의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 속주. 아우구스투스의 속주 개편으로 생성. 원로원 속주. 과달키비르 강의 라틴어 이름인 베티스(Betis)에서 유래.

· BC 27 - 루시타니아 : 스페인 엑스트레마두라와 포르투갈. 아우구스투스의 속주 개편으로 생성. 황제 속주.

타라코넨시스 속주 / 바이티카 속주 / 루시타니아 속주

 

· BC 27 - 일리리쿰 : 아우구스투스는 BC 35-33년에 일리리아와 판노니아 남부를 정복. BC 27년 원로원 속주로 생성. 판노니아 북부는 판노니아 전쟁(BC 14-10) 동안 정복. 달마티아(일리리아의 새 이름)와 판노니아로 세분되었으며 이는 바토니아 전쟁이 끝날 무렵 BC 9년에 공식적으로 각각 높은 일리리쿰과 낮은 일리리쿰으로 불림. 원로원 속주였던 이 지역은 BC 11년 판노니아 전쟁 중 황제 속주로 바뀜. 일리리쿰은 베스파시아누스 통치(69-79) 동안 달마티아와 판노니아의 새로운 속주로 변경. 107년 판노니아는 판노니아 수페리오르와 판노니아 인페리오르로 분리.

달마티아 속주 / 판노니아 수페리오르 속주 / 판노니아 인페리오르 속주
1세기 판노니아 / 2세기 분리된 판노니아 / 4세기 4개로 나뉜 판노니아

 

· BC 27 or 16-13 - 아퀴타니아 : 프랑스 남서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복한 갈리아 영토에 생성된 속주. 아우구스투스의 첫 번째 방문과 갈리아에 대한 첫 번째 인구 조사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16-13년 아우구스투스의 방문 때인지 불확실. 황제 속주.

· BC 27 or 16-13 -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 프랑스 중부와 북부의 일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복한 갈리아 영토에 생성된 속주. 아우구스투스의 첫 번째 방문과 갈리아에 대한 첫 번째 인구 조사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16-13년 아우구스투스의 방문 때인지 불확실. 황제 속주.

· BC 27 or 16-13 - 갈리아 벨기카 : 네덜란드 남부의 라인 강,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북부의 일부, 독일의 라인 강 서쪽 지역. 아우구스투스의 첫 번째 방문과 갈리아에 대한 첫 번째 인구 조사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16-13년 아우구스투스의 방문 때인지 불확실. 황제 속주.

아퀴타니아 속주 / 루그두넨시스 속주 / 벨기카 속주. 후대의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와 인페리오르가 나타나 있다

 

· BC 25 - 갈라티아 : 아나톨리아 중부, 터키. 이전 클리엔테스 왕국이었으며 마지막 왕 아민타스가 죽은 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합병. 황제 속주.

· BC 15 - 라이티아 : 황제 속주.

갈라티아 속주 / 라이티아 속주

 

· BC 12 - 게르마니아 마그나 : AD 9년 로마의 3개 군단이 궤멸됨.

게르마니아 지역 지도

 

· AD 6? - 모이시아 : 세르비아의 다뉴브 강 동쪽과 남쪽 기슭, 북마케도니아의 북부, 불가리아 북부. BC 28년에 정복된 이 지역은 원래 마케도니아 속주의 군사 지구였음. AD 6년 바토니아 전쟁에서 속주 총독이 첫 언급됨. 85년 모이시아 수페리오르와 모이시아 인페리오르로 분리. 황제 속주.

· AD 6 - 유다이아 : AD 41년에 클리엔테스 왕국의 지위로 되돌아갔고 44년에 다시 속주가 됨. 135년에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이름이 바뀌고 프로콘술 통치로 격상. 황제 속주.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 / 모이시아 인페리오르 속주 / 유다이아 속주

 

티베리우스

 

· AD 17 - 카파도키아 : 아나톨리아 중부, 터키. 황제 속주. 후에 프로콘술 통치로 격상.

 

클라우디우스

 

· AD 42 -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 : 모로코 북부. 40년 마우레타니아의 마지막 왕 프톨레마이오스가 사망한 후 왕국을 합병. 칼리굴라에 의해 시작된 반란을 클라우디우스가 진압. 42년 클라우디우스가 두 개의 속주로 분리. 황제 속주.

· AD 42 -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 : 알제리 중부와 서부. 40년 마우레타니아의 마지막 왕 프톨레마이오스가 사망한 후 왕국을 합병. 칼리굴라에 의해 시작된 반란을 클라우디우스가 진압. 42년 클라우디우스가 두 개의 속주로 분리. 황제 속주.

· AD 41/53 - 노리쿰 : 오스트리아 중부, 슬로베니아 북동부, 독일 바이에른 주의 일부. BC 16년 제국에 포함됨. 속주로 불렸지만 검찰관의 통제하에 있던 클리엔테스 왕국. 클라우디우스(41-54) 통치 기간 적절한 속주로 바뀜. 황제 속주.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 속주 /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 속주 / 노리쿰 속주

 

· AD 43 - 브리타니아 : 클라우디우스가 브리타니아 침공을 시작. 60년까지 로마인들은 험버 강에서 세베른 강 하구의 남쪽 지역을 장악. 78년 웨일스 전체 정복. 78-84년 아그리콜라의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정복. 그 후 스코틀랜드에서 철수. 197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를 브리타니아 수페리오르와 브리타니아 인페리오르로 분리. 황제 속주.

험버 강~세베른 하구 남쪽 브리타니아를 장악한 로마 / 브리타니아 침공 / 아그리콜라의 원정 / 브리타니아 속주

 

· AD 43 - 리키아 : 클라우디우스가 합병.

 

· AD 46 - 트라키아 : 트라키아, 그리스 북동부, 불가리아 남동부, 터키의 유럽 영토. 클라우디우스가 합병. 황제 속주.

· AD 47? - 알페스 아트렉티아나이-포이니나이 : 이탈리아와 스위스 사이. BC 15년 아우구스투스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살라시 족을 정복. 라이티아 속주에 포함. 속주가 된 날짜는 불확실. 클라우디우스가 세운 Forum Claudii Vallensium(마흐띠늬, Martigny)의 설립 날짜로 추정. 황제 속주.

트라키아 속주 / 알페스 아트랙티아니아-포이니나이 속주

 

네로

 

· AD 62 - 폰투스 : 폰투스 왕국의 동부. 합병된 콜키스와 함께 나중에 카파도키아 속주(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로 추정)로 통합. 황제 속주.

· AD 63 - 보스포루스 왕국이 모이시아 인페리오르 속주에 통합됨. 68년에 갈바가 보스포루스 왕국을 클리엔테스 왕국으로 복원.

폰투스 지역 / 콜키스 지역 / 보스포루스 왕국

 

· AD 63 - 알페스 마리티마이 : 프랑스의 알프스. 아우구스투스가 보호령으로 만든 이 지역은 네로 치하에서 알페스 코티아이가 속주로 되었을 때 같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 황제 속주.

· AD 63 - 알페스 코티아이 :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BC 14년 Cotii 왕조가 명목상 통치하는 지역. 마르쿠스 율리우스 코티우스 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 63년 속주가 됨. 황제 속주.

알페스 마리티마이 속주 / 알페스 코티아이 속주

 

베스파시아누스

 

· AD 72 - 콤마게네는 클리엔테스 왕이 퇴위되고 콤마게네는 시리아에 합병됨.

· AD 72 - 레세르 아르메니아는 클라이언트 왕이 퇴위되고 소 아르메니아는 시리아에 합병됨.

오스로이네(청록색) 옆에 위치한 콤마게네 / 폰투스와 아르메니아 사이에 위치한 레세르(마이너) 아르메니아

 

· AD 72 -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세 개의 클리엔테스 왕국으로 형성된 킬리키아 서부 산악 지역은 해체되어 속주 킬리키아와 합병됨.

· AD 74 - 리키아-팜필리아 : 베스파시아누스(69-79)는 클라우디우스가 합병한 리키아와 갈라티아 속주의 일부였던 팜필리아를 통합. 황제 속주.

 

도미티아누스

 

· AD 83/84 -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 독일 남부. 도미티아누스가 Agri Decumates를 독일 남부까지 밀어붙인 관계로 속주를 생성할 필요가 생김. 라인 강 서쪽 기슭까지 영토였을 때 갈리아 벨기카 속주의 군사 지구. 황제 속주.

· AD 83/84 -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 네덜란드 남부의 라인 강, 벨기에의 일부, 독일의 라인 강 서쪽 지역.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와 함께 생성할 당시 갈리아 벨기카 속주의 군사 지구. 황제 속주.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 /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 / 라인 강과 다뉴브 강 사이에 건설된 장벽(리메스)

 

트라야누스

 

· AD 106 - 아라비아 : 이전의 나바테아 왕국, 트라야누스 시대 저항 없이 합병됨. 황제 속주.

· AD 107 - 다키아 : 트란실바니아 남동부, 바나트, 올테니아. 다키아 전쟁에서 트라야누스에 의해 정복.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의해 158년 다키아 수페리오르와 다키아 인페리오르로 분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166년에 Porolissensis, Apulensis, Malvensis의 3개 속주로 분할. 271년 아우렐리아누스가 속주를 포기.

아라비아 속주 / 다키아 속주 / 3개로 분할된 다키아 속주

 

· AD 103/114 - 에피루스 노바 : 그리스 서부와 알바니아 남부. 에피루스는 원래 마케도니아 속주에 속함. BC 27년 최북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아카이아 속주에 포함됨. 트라야누스 시대 별도의 속주가 되었고 103-114년 사이 에피루스 노바(새 에피루스)로 이름이 변경됨. 황제 속주.

· AD 114 - 아르메니아는 클리엔테스 왕을 퇴위시킨 트라야누스가 합병. 118년 하드리아누스가 왕국을 복원.

· AD 116 - 메소포타미아 : 115년 후반 파르티아 제국을 침공한 트라야누스에 의해 합병. 118년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파르티아에 반환. 198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북쪽의 작은 지역을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라고 명명. 페르시아인에 의해 두 번 공격을 받음. 황제 속주.

· AD 116 - 아시리아는 트라야누스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아시리아인의 반란을 진압하고 속주를 생성함. 118년 하드리아누스가 지역을 포기함.

에피루스 노바 속주 / 아르메니아 속주 / 메소포타미아 속주 / 후기 로마의 작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 아시리아가 표시된 지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AD 193 - 누미디아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아프리카 속주로부터 분리. 황제 속주.

· AD 194 - 시리아 코일레, 시리아 포에니케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시리아를 북쪽과 남쪽의 두 속주로 분리. 황제 속주.

누미디아 속주 / 분리된 시리아 속주

 

카라칼라

 

· AD 214 - 오스로이네 : 오스로이네 왕국(메소포타미아 북부, 오늘날의 이라크, 시리아, 터키의 일부)을 합병하여 생성.

 

아우렐리아누스

 

· AD 271 - 다키아 아우렐리아나 : 불가리아 대부분과 세르비아. 아우렐리아누스가 다뉴브 강 너머 다키아 트라야누스를 포기한 후 이전의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에서 생성.

다뉴브 강 남쪽의 옛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에 위치한 다키아 아우렐리아나 속주

 

위의 많은 속주는 공식적으로 속주로 구성되기 전에 오랫동안 로마의 군사 통제하에 있거나 로마 클리엔테스로써 통치하에 있었다. 속주의 공식 형성 연도만 표시하고 있으며 정복 연도는 표시하지 않았다.

 

 

고대 말기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부와 동부의 아우구스투스 또는 상위의 황제가 각각 후임 황제(및 지정된 후계자)와 카이사르에 의해 이어지며 4명이 각각 제국의 4분의 1을 방어하고 관리하는 사분통치(284-305)로 알려진 급진적 개혁을 도입했다. 290년대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이탈리아를 포함하여 거의 100개의 속주로 새롭게 분할했다. 속주를 관할하는 총독은 아프리카 프로콘술과 아시아 프로콘술에서 집정관과 검찰관이 관할하는 총독에 이르기까지 계층적으로 순위가 매겨졌다. 가장 낮은 순위는 오직 기사 계급에서만 채용했다. 차례로 속주는 (원래 12개의) 관구로 그룹화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그들의 일을 감독하는 대리자(비카리우스)가 이끌었다. 오직 프로콘술과 로마의 총독(그리고 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만이 예외가 되었고 4명의 지배자에 직접 종속되었다.

 

395년경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

 

사분통치는 곧 없어졌지만 4개의 행정 권역은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에 의해 318년에 총독과 비슷하지만 자리가 흔하게 바뀌는 프라이토르 행정 구역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또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알려진 새로운 수도를 만들었는데 이 수도는 정부의 영구 소재지가 되었기 때문에 때때로 '새로운 로마'라고 불렸다. 이탈리아 자체에서 로마는 한동안 황제의 거주지가 아니었고 286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공식적으로 정부의 자리를 메디올라눔(현재의 밀라노)으로 옮겼으며 니코메디아에 거주했다. 4세기 동안 동서 공동 황제에 대한 반복적인 실험을 포함하여 행정 구조가 여러 번 수정되었다. 속주와 관구가 분할되어 새로운 지역이 형성되었고 일리리쿰의 프라이토르 행정 구역은 폐지되고 개혁되었다. 결국, 476년 오도아케르가 부상하고 480년 율리우스 네포스가 사망하면서 효과적으로 축소된 제국의 행정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통합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4-536 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확립한 문관과 무관의 엄격한 분리를 일부 지역에서 폐지함으로써 다음으로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 과정은 580년대에 놀라운 총독부(Exarchate)의 창설과 함께 더 큰 규모로 계속되었고 640년대에 군사 테마 시스템을 채택하여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는 이전 행정 방식을 완전히 대체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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