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영국사9 브리튼의 로마 도시들 다음은 AD 43년부터 5세기까지 로마 점령 기간 동안 영국의 도시 목록이다.로마의 도시는 라틴어로 "키비타스"라고 알려졌다. 도시는 대부분 로마 관리의 통치를 받는 토착 부족민이 거주하는 요새화된 정착지였다. 목록에 오른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전 철기 시대 부족의 수도, 로마 가도의 전략적 정착지, 부족 집단 간의 교역소 또는 때로는 항구이지만, 후자의 둘은 일반적으로 키비타스로 정의되지 않았다. 이 도시 중 소수는 로마에서 기원한 정착지였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오늘날 바스, 아쿠아이 술리스이다. 현재 잉글랜드 및 웨일스에 있는 63개 도시 중 적어도 26개는 로마 시대에 요새화된 도시이며, 가장 유명한 곳은 로마 브리타니아 속주의 첫 번째 수도였던 오늘날 콜체스터, 카물로두눔과 이후 수도이자 오.. 2024. 5. 28. 런던 - 1900년 이후 1940년 9월 7일 폭격이 시작될 무렵 독일 루프트바페(공군) 하인켈 He 111 폭격기가 런던 이스트엔드의 와핑"Wapping"과 서리"Surrey" 부두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650만 명, 즉 영국 전체 인구의 1/5이 런던에 살았다. 1900년대 초, 도시 계획가들은 빈민가를 정리하고 좁은 거리를 킹스웨이와 알드위치와 같은 넓은 도로로 대체하면서, 도심의 일부 지역(시티와 웨스트민스터에 가까운 주거 지역)을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킹엄 궁전으로 이어지는 더 맬"The Mall"은 웅장한 왕실 퍼레이드를 위한 의례적인 경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스트엔드 대부분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런던의 가난한 사람 중 다수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과 부두 근처에 있.. 2024. 3. 13. 런던 - 조지 및 빅토리아 시대 1700년에 런던의 인구는 60만 명에 달했다. 세기말까지 도시의 인구는 두 배로 증가하게 된다. 런던은 이제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주민 수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도시는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의 고급 주택으로 이루어진 새 부지에 사는 부유층, 동쪽과 템스 강을 따라 뻗어나가는 산업, 특히 부두에 가까이 사는 상인들과 노동자들. 1750년에 완공된 새로운 웨스트민스터 다리는 중세에 런던 브리지가 재건된 이후 두 번째로 완공된 강 다리로 템스 강 남쪽의 도시 개발을 촉발시켰다. 한때 런던 외곽 너머에 있던 패딩턴"Paddington"과 세인트 메릴번"St Marylebone"과 같은 마을들은 점차 도시로 흡수되었다. 조지 런던 18세기 런던의 커피 하우스. 플리트 스트리트에서 인쇄된 런던의 첫 .. 2024. 3. 12. 런던 - 튜더 및 스튜어트 시대 16세기에 런던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백 척의 배들이 매일 템스 강에 몰려와 화물을 내리거나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기 위한 모직물과 천을 싣기 위해 기다렸다. 1571년에는 상인들이 영업할 수 있는 왕립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1530년대 수도원이 해체되면서 교회가 소유한 런던 재산을 상실하고 이를 헨리 8세의 부유한 지지자들이 인수했다. 많은 새로운 사업과 자선병원도 생겨났다. 런던에서의 삶 로마 성벽 안에 대부분 포함된 중세 도시 런던에는 1530년에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런던의 인구는 세기말까지 잉글랜드 전체 인구의 거의 10%를 차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 필요하기에, 이전 교회 토지를 포함하여 도시의 모든 구석구석에 건물이 지어졌.. 2024. 3. 12. 런던 - 중세 시대 6세기말까지, 런던 지역은 이스트 색슨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무너져가는 성벽 안에 있던 옛 로마 도시는 텅 빈 채로 남아있었지만, 바로 서쪽, 템스 강의 항구 주변에 새로운 정착지가 생겼다. 그곳은 룬덴위치(입스위치 및 하리치와 같은 이름에서 발견되는 영어 고어 어미 -wic는 일반적으로 항구나 무역 도시를 의미함)라고 불렸다. 그러나 도시는 바이킹 약탈자들의 표적이 되었고, 842년, 851년, 871년에 바이킹들이 여러 차례 약탈했다. 색슨 런던 886년 앨프레드 왕이 바이킹을 몰아냈고, 색슨족의 옛 도시 룬덴위치는 곧 버려졌다. (이곳은 나중에 "옛 정착촌"을 의미하는 일드윅"Ealdwic"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알드위치"Aldwych"로 남아있는 이름이다) 앨프레드의 지도 아래, 런던은 .. 2024. 3. 12. 런던 - 로마 시대 런던은 약 2,000년 전 브리튼을 정복한 로마인에 의해 세워졌다. 이 지역에 켈트족 정착지가 흩어져 있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최초의 주요 정착지인 론디니움은 AD 43년 침공 직후 로마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켈트족의 지명인 Londonjon을 따서 명명했을 것이다. 로마인 정착 이전의 템스 강(오늘날보다 다소 넓은)은 습지와 삼림으로 이루어진 인적이 드문 지역을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선사시대 약 120,0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에 털북숭이 매머드와 코뿔소가 오늘날 런던 지역의 템스 강 유역에 서식했다. 그들은 초기 인류에게 사냥되었다. 훨씬 뒤인 약 6,500년 전부터 사람들은 땅을 경작하고, 무기와 도구를 만들고, 이 지역에 작은 마을을 세우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은 복스홀(V.. 2024. 3. 11. 로마 브리타니아 연대표 BC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처음으로 잉글랜드 해안선에 상륙한 때부터 AD 410년의 유명한 '자신의 방어선을 지켜라'는 편지에 이르기까지, 로마인은 400년 이상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글에서, 종종 험난한 관계의 우여곡절을 살펴본다! BC 55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의 방문이 정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브리튼 섬에 대한 최초의 로마 군사 원정을 이끌었다. BC 54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 번째 원정; 다시 말하지만, 침공은 정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BC 27년 - 아우구스투스는 초대 로마 황제가 되었다. AD 43년 -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4개 군단에 브리튼을 정복하도록 명령했다. 43년 (8월) - 로마군이 에식스주 콜체스터에 있는 카투벨라우니 부족의 수도를.. 2022. 8. 3. 450-700년 앵글로색슨의 정복 450-475년 브리타니아의 로마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410년에 끝났지만, 실제로 로마 브리튼인은 한동안 그들 스스로 통치했고 어쨌든 409년에 그 행정부를 축출했다. 380년대에 브리타니아의 서부와 북부 국경을 확보했던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재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부 브리튼은 살아남은 후손들 사이에서 점차 조각조각 나누어지면서 파편화되고 있었다. 마지막 분열은 470년경에 온 것으로 보이며 에브로크는 서쪽 지역인 페닌네스를 잃었다. 마찬가지로 포이스도 보르티게른과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의 내전 이후 둘로 나뉘었다. 때때로 '중부 브리튼'으로 분류되었던 고도로 문명화된 서브-로마 브리튼의 심장부인 이 지역은 분명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에 있었다. 색슨 해안을 따라, 이전의 라이티(야만인 용병을 지칭.. 2022. 1. 6. AD 43-425년 로마 브리타니아 AD 43년 로마인은 시즌 후반에 군대를 3개(그중 하나는 브리튼인의 허를 찌르기 위한 속임수였을 수도 있음)로 나누어 도착했다. 그들은 켄트의 리치보로와 웨스트서식스의 치체스터에 상륙했고, 처음에는 싸울 상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브리튼인은 매우 현명하게 언덕과 습지로 이동하여 로마군이 보급품을 다 소모하길 바라며 시야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로마군은 카투벨라우니의 토고둠누스와 그의 형제 카라타쿠스를 상대로 승리를 기록했고, 카라타쿠스에 대한 승리는 아마도 켄트에서였을 것이다. 도분니의 구성원들은 (아마도 사절을 통해) 즉시 항복했고, 카투벨라우니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투벨라우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들은 아마도 켄트의 메드웨이 강에서 로마군을 만나 비.. 2022. 1. 5. 이전 1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