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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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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도시로마40

인술라 티베리나/테베레 섬 강 한가운데에 있는 평화로운 장소인 테베레 섬은 배를 연상시킨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 사절은 에피다우로스에서 아이스쿨라피우스 신전의 성스러운 뱀 중 하나를 로마로 다시 가져오는 일을 맡았다. 배가 도착한 직후, 뱀은 탈출하여 테베레 강에 있는 섬으로 헤엄쳐 갔다. 이곳에는 섬의 끝자락에 의학의 신인 아이스쿨라피우스를 모신 사원이 세워졌다. 아이스쿨라피우스 신전 외에도, 그 섬에는 덜 중요한 다른 신전과 건축물이 있었다. 특히 이 섬은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건설을 더 용이하게 해 주었다. 사진 왼쪽 상단에 마르켈루스 극장이 있다. 파브리키우스 다리 가까이에 유피테르 유라리우스 신전이 있었다. 티베리누스(테베레 강의 신)의 예배당. 이로운 신으로 여겨지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수 때문에 두려워했다.. 2021. 5. 11.
핀초 언덕과 정원들 콜리스 호르툴로룸(정원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핀초 언덕은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훌륭한 정원으로 인해 즐겨 찾는 장소였다. 이 언덕은 작은 계곡으로 분리된 퀴리날레 언덕과 마주하고 있었다. 모형의 테두리에 해당하는 지역은 퀴리날레의 배경에 명확히 나타냈기 때문에 사진 왼쪽에는 핀초의 일부만 나타냈다. 핀초의 높은 전망을 통해 캄푸스 마르티우스 북쪽과 플라미니아 가도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사진 윗부분에서 아우구스투스 영묘를 볼 수 있다. 전경에는 웅장한 루쿨루스의 정원이 있다. 핀키우스의 모든 훌륭한 정원 중에서 루쿨루스의 정원은 살루스티우스 정원과 함께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장소일 것이다. 정원은 미트리다테스 전쟁(BC 74-66)의 승자인 루쿨루스에 의해 지어.. 2021. 5. 11.
키르쿠스 플라미니우스 지역 사진 중앙에 있는 옥타비아의 포르티코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기념물이었다. BC 2세기에 마케도니아에 승리한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세웠다. 이 주랑 현관은 왼쪽의 유노 퀸과 오른쪽의 유피테르 스타토르의 두 신전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주랑 현관을 다시 지어서 그의 여동생 옥타비아에게 바쳤다. 이 주랑 현관과 아주 가까운 곳에 카피톨리노의 거대한 인술라가 서 있었다. 건물로 둘러싸인 카피톨리노의 거대한 인술라가 사진의 오른쪽 중앙에 있다. 카피톨리노의 "건물"은 6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에는 발코니와 복층으로 된 상점이 있었다. 거대한 인술라는 사진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는 카피톨리노 기슭에 지어졌다. 전경에는 발부스 극장이 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이 높은 임대 건물들이 지어지기.. 2021. 5. 10.
플라미니아 가도/라타 가도 지역 플라미니아 가도는 BC 200년에 건설된 위대한 로마의 도로로, 로마와 아드리아 해를 잇는다. 플라미니아 가도는 로마의 북쪽 출입구였다. 전경에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과 포르타 플라미니아가 있다. 왼쪽에 있는 언덕은 핀키우스이다. 포르타 플라미니아를 통과하면 왼쪽에 황제의 유해를 담았어야 할 거대한 건축물인 네로의 무덤(세풀크룸 네로니스)에 방문자들은 이끌렸다. 무덤과 가까이에 네로의 아버지 측 가문의 거대한 구조물인 도미티우스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핀키우스 언덕 기슭을 뒤덮었다. 플라미니아 가도를 따라 다양한 모양의 수많은 무덤이 있으며 그중 피라미드 형태도 있었다. 라타 가도의 베스파시아누스의 아치.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세워졌을지도 모르는 이 아치는 안토니누스 아래에 재건되었다. "포르투갈의 아치".. 2021. 5. 10.
캄푸스 마르티우스 서쪽 지역 네로 다리와 아일리우스 다리가 테베레 강둑을 연결하는 곳은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서쪽 지점에 있었다. 또한 이 장소에서는 캄푸스 마르티우스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렉타 가도와 아일리우스 다리에서 폼페이우스와 마르켈루스 극장을 향해 서쪽 지역을 가로지르는 텍타 가도가 그라티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테오도시우스의 아치 아래를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아그리파의 에우리페가 교차했다. 그라티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테오도시우스의 아치는 AD 379년에서 383년 사이에 그라티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는데, 아마도 사진 중앙에 있는 텍타 가도의 오른쪽을 따라있는 포르티쿠스 막시마이의 정렬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진 중앙에는 캄푸스 마르티우스를 통과하는 아그리파의 에우리푸스.. 2021. 5. 9.
캄푸스 마르티우스 북쪽 지역 아우구스투스의 오벨리스크가 바늘 역할을 했던 아우구스투스의 태양 시계는 거대한 크기로 있었다. 이 거대한 바늘은 확실히 당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관광지였다. 다른 각도에서 본 아우구스투스의 거대한 태양 시계. 오늘날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몬테치토리오 광장에 세워져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청동 지구본이 있다. 중앙 왼쪽에 특정 문서에 따르면 유명했던 인술라 펠리클레스가 하드리아누스 신전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와 트라야누스는 정해진 법보다 더 높은 필요성으로 인해 인술라이의 높이 제한을 통제하지 못했다. 4세기에도 판테온과 아우렐리우스 기둥 사이에서 거대한 주택은 여전히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 만한 엄청난 규모를 보여주었다. 펠리쿨라의 건축물인 인술라 펠리클.. 2021. 5. 8.
캄푸스 마르티우스 로마 시내의 이 지역은 오랫동안 습지대에 불과했다. 제국이 끝날 무렵,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도시 개발은 이곳을 로마의 가장 많은 주목할만한 기념물을 볼 수 있는 지역 중 하나로 만들었다. 각각의 "왕조"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로마의 가장 큰 IXth 지구로, 남쪽의 카피톨리노, 서쪽의 라타 가도와 플라미니아 가도, 동쪽의 테베레 강 사이에 위치했다. 캄푸스 마르티우스 중심에 있는 사입타 율리아의 거대한 주랑 현관에서 사원과 정원이 있는 큰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아그리파 목욕탕을 향해 있는 주랑 현관의 오른쪽은 "아르고나우트스의 포르티코"로, 왼쪽은 "말레아그레의 포르티코"라고 불렸다.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사입타 율리아. 이 웅장한 주랑 현관은 명품 흥정을 위한 만남의 장소였다. 주랑 현관의 중앙.. 2021. 5. 6.
포룸 보아리움과 벨라브로 계곡 포룸 보아리움(소 시장)은 사진 하단 오른쪽의 둥근 베스타 신전과 왼쪽 옆에 두 개의 주랑 현관에 숨겨져 있는 공화국 시대의 직사각형 사원인 포르투나 비릴리스 신전(사람 행운의 신전)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두 사원은 오늘날 로마에 잘 보존되어 있다. 더 위로 보면 오른쪽의 팔라티노와 왼쪽의 카피톨리노 사이에 있는 벨라브로 지구가 보인다. 중앙에는 네 면에 출구가 있는 야누스의 아치가 있다. 이것은 번화가로 통하는 공공의 문이었다. 또한 포룸 보아리움의 경계였다. 베스타 신전은 20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는 둥근 건물이다. 베스타 신전은 사실 헤르쿨레스 빅토르의 신전으로 잘못 명명된 신전이다. BC 2세기 말에 로마의 사업가에 의해 지어졌을지도 모른다.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 대리석이 광채를 .. 2021. 5. 5.
퀴리날레 언덕 북동쪽 지역 템플라 (트리아) 포르투나이. 세르비우스 성벽(무루스 세르비) 안에 있는 포르타 콜리나 문 근처에 위치한 행운을 기리는 세 개의 사원. 이 세 건물 중 하나는 포르투나 푸블리카 키테리오리스에 헌정되었다. 두 번째는 사진의 중앙에서 가장 큰 포르투나 프리미기니아(포르투나 푸블리카 포풀리 로마니 프리미기니아)(로마 민중의 재산)에 이어 세 번째이자 가장 먼 것은 포르투나 푸블리카 울테리오리스의 사원이다. 포르타 콜리나. 퀴리날레 북동쪽 끝에 있는 세르비우스 성벽의 문. 이 문 앞에서 한니발이 진을 치고, 같은 장소에서 술라와 결국 패배한 마리우스 지지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오래된 문 앞에 두 개의 돌과 세르비우스 성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유적은 제국 말기에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엘라가발루.. 2021. 5. 5.
퀴리날레 언덕 북쪽 지역 퀴리날레의 북쪽 경사면, 퀴리누스 신전 기슭에 있는 몇몇 귀족적인 저택들은 이 지역에 높은 명성을 주고 있었다. 여기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비누스의 저택은 내부가 둘러싸인 거대한 건물로 식별될 수 있다. 퀴리누스 신전의 북쪽 파사드는 관리인 주택 또는 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의 첫 번째 플랫폼이 다른 여러 플랫폼에 대한 접근을 허용했다. 풀비나르 솔리스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퀴리누스 신전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유니우스 실비누스 저택 근처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프라이토리움의 총독이라는 사실로 인해 실비누스보다 더 유명한 플라우티아누스의 또 다른 거대한 빌라가 있었다. 사진 중앙에 있는 카피톨리눔 베투스는 높은 부벽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카피톨리눔의 모양을 하게 되었다. 퀴리날레에 지어진.. 2021. 5. 4.
퀴리날레 언덕 퀴리날레 언덕(Regio VI)의 조감도. 61 미터 높이의 퀴리날레 언덕은 로마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사비니인의 신 퀴리누스(전쟁의 신, 후대에 로물루스와 동일시 됨)에서 유래했다. 중요한 길은 퀴리날레 언덕을 넘어 비탈길을 따라 트라야누스 시장으로 내려오는 알타 세미타였다. 정상에는 세라피스 신전과 콘스탄티누스 목욕탕이 있었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알타 세미타는 사진 맨 위에 있는 황제 포룸까지 늘어서 있는 건물을 통과했다. 절벽에 바로 세워진 트라야누스 시장은 트라야누스 포룸과 함께 전체를 이루었다. 여러 층의 상점과 상품이 있는 훌륭한 상업 단지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분배하는 중심지였다. 아랫부분에서 거대한 담화실을 볼 수 있다. 시장 오른쪽의 약간 그늘진 곳에 비쿠스.. 2021. 5. 3.
에스퀼리노 언덕 서쪽 지역과 비미날레 언덕 사진의 전경에 있는 에스퀼리노는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이다. 언덕은 오피우스, 파구탈리스, 키스피우스 세 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는 고원으로 되어있다. 제국 시대 이전에 이 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로 덮여 있었고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마이케나스는 정원이 있는 멋진 빌라를 지었다. 제국이 끝날 무렵 언덕은 거의 완전히 건물로 뒤덮였다. 비미날레 언덕은 사진의 제일 아래에 있는 에스퀼리노 언덕과 사진 최상단에 있는 퀴리날레 언덕 사이의 일종의 "툭 튀어나온" 곳이었다. 언덕은 주로 인술라이(건물의 96%가 이런 종류의 것으로 보이는 로마의 대부분의 주택을 구성한 임대 주택의 형태)가 있는 생활공간이었다. 인술라는 도시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혼잡한 거리는 사고파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 2021. 5. 2.
에스퀼리노 언덕 북서쪽 지역 1. 사진의 중앙에는 웅장한 정원이 있는 마르쿠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44년도 집정관)의 저택이 있다. 아마도 캄푸스 마르티우스에 최초의 원형 경기장(이전에는 필요할 때마다 목조로 지은 가건물의 형태를 보임)을 지은 C.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의 후손 중 한 명일 것이다. 2. 리비아 시장(사진 상단에 반쯤 보이는) 옆에는 광활한 광장을 이룬 베티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와 파비아 파울리나 아코네의 거대한 저택이 있었다. 아마도 4세기 후반의 로마 원로원 의원인 베티우스 아고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의 저택일 것이다. 그는 오래된 이교도 종교를 옹호한 마지막 로마 귀족들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3. 티부르티나 가도에 있는 칼리카누스의 저택과 정원. 그 이름은 다른 알려진 표시도 없이 이곳에서 발견된 포모이리알 .. 2021. 5. 1.
에스퀼리노 언덕 북동쪽 지역 라비카나 가도와 티부르티나 가도의 교차점에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이름을 딴 알렉산데르의 님페아(님파이움 알렉산드리). 두 길 사이에서 도시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분수이다. 티부르티나 문을 통과하기 전에 여유 공간을 제공한 타우루스 포룸(포룸 타우리).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지어진 하나의 아치만 있는 이 문은 로마와 티볼리를 연결하는 도로인 티부르티나 가도로 통했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통치하기 위해 해방노예들을 곁에 두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황제 자신의 조카인 소 아그리피나(네로 황제의 모친)와 클라우디우스의 결혼을 선호한 팔라스였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그가 거대한 정원인 팔라스 정원(호르티 팔라티아니)과 같이 부러워할만한 재산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 중간의 수도교 근처에 팔라스의 저택.. 2021. 4. 30.
에스퀼리노 언덕 남동쪽 지역 여러 번 집정관을 지냈고 트라야누스 황제의 절친한 친구인 리키니우스 수라의 저택이다. 수라가 죽은 후, 트라야누스는 그의 이름을 가진 목욕탕을 아벤티노에 짓게 했다. 그의 도무스는 특히 호화스러운 정원으로 놀라웠다. 왼쪽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메룰라나 가도가 있다. 에스퀼리노의 중심부에는 AD 3년에 집정관을 지낸 L. 아일리우스 라미아의 저택과 정원(A)이 있다. 광활한 라미아 정원은 자연의 각성을 상징하는 여신인 마이아의 정원(호르티 라미아니 에트 마이아니)과 합쳐졌다. 사람들은 5월에 그녀의 날을 축하했고, 아마도 여신은 5월에 자신의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정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건축물(B)이 그녀에게 바쳐졌을지도 모른다. L. 아일리우스 라미아의 저택과 정원과 메룰라나 가도 옆..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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