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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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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근동14

그리스 호플리테스 만 명의 퇴각 서사시 그리스 호플리테스 만 명의 행군은 고대 세계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모험 중 하나이다. 페르시아 내전에서 소(小) 키루스의 편에 서서 그의 형제이자 아케메네스 제국의 통치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싸운 (대부분) 그리스 용병 만 명에 대한 서사시이다. 그 용맹한 사람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쿠낙사 전투에서 키루스가 전사한 후,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급여 지급자이자 후원자를 잃고 적진 깊숙이 발이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멀리 있는 고향에 도착하기 위해, 이 병사들은 척박하고 물이 없는 스텝과 눈으로 막힌 산길을 행군해야만 했다. 거의 5,000km(3,100 마일) 길이의 "오디세이"에서, 이 병사들은 페르시아 군대부터 산악 무리에 이르기까지 .. 2023. 4. 12.
고대 오리엔트 수메르 도시들 수메르를 형성한 지역은 페르시아 만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이 서로 더 가까이 굽이쳐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목'까지 이르렀다. 동쪽으로 자그로스 산맥에 어렴풋이 펼쳐져 산재한 도시국가들이 수메르로부터 학문과 무역으로 번창했고, 서쪽으로는 광활한 아라비아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지난 4천 년 동안 강들은 경로를 상당히 변경하여 일부 도시로부터 멀어지고 복합적인 운하 연결망을 말라버리게 했다. 그 당시, 두 강은 오늘날보다 단축된 만으로 흐르는 별도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북쪽의 시파르, 보르시파, 키시, 남쪽의 우르, 우루크, 에리두와 같은 초기 도시들 중 일부는 도시와 운하의 복합 연결망의 종착점을 형성했다. 기르수와 니푸르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였지만,.. 2022. 1. 1.
히타이트, 아시리아, 아무루, 아히야와 히타이트 전차는 3명으로 더 무거웠다. 조종수, 창병, 궁수... 효과적이지만 기동성이 떨어졌다... 바큇살이 4개인 것에 눈길이 간다. 히타이트의 마지막 왕들, 특히 투드할리야 4세(BC 1237-1209년)와 수필룰리우마 2세(BC 1207-?)는 BC 1237년경부터, 그들의 세계와 문명이 종말을 고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3세기 말 수십 년 동안 매우 활동적이었다. 투드할리야는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서 불과 1 km 정도 떨어진 야질리카야(Yazilikaya, "새겨진 바위")에 있는 석회암 노두 바위에 신들과 여신들의 판테온 전체와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으라고 명령했다. 이 시기에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아시리아와 전쟁 중이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는 아마르나 파라오 시대에.. 2021. 12. 4.
아카드 제국 수메르 왕 움마의 루갈자가시는 수메르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가 어떤 중요한 변화를 도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24년 후, 루갈자가시 제국은 북부 도시 아카드에서 온 셈족 통치자 사르곤 대왕(BC 2325-?)의 군대에게 멸망하였고 이제 모든 수메르인은 아카드 왕의 지배하에 통합되었다. 사르곤은 군사독재의 원형을 세상에 남겼다. 사르곤은 무력으로 수메르 도시 국가들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 전체를 정복하여, 타우루스 산맥에서 페르시아만까지, 그리고 아마도 지중해까지 이르는 제국을 세웠다. 그의 50년 치세 동안 사르곤은 적어도 34번의 전쟁을 치렀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의 군대는 5,400명이며 아카드어로 구루쉬라고 불렸다고 한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사르곤 군대는 그 시대 .. 2021. 12. 3.
신바빌로니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의 쇠퇴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30년에 대해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거의 없다. BC 640년 이후 아슈르바니팔에 대한 비문은 현존하지 않으며, 그의 후계자들이 남긴 소수의 비문에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모호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연대기가 재개되는 BC 625년까지 거의 완전한 침묵이 지속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의 급속한 몰락은 이전에는 군사적 패배 때문이라고 여겨졌지만, 메디아와 바빌로니아만이 어떻게 이 일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다 최근의 연구에서 635년 이후 내전이 일어나 제국을 약화시켰으며 더 이상 외부의 적에 대항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아슈르바니팔은 쌍둥이 아들을 두었다. 아슈르에텔일라니가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지만 그의 쌍.. 2021. 11. 25.
고대의 방어시설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구조물들은 고대 근동의 도시 국가, 왕국 및 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특히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같은 지역에서 천연 장벽이 없는 평탄한 평야에 지어진 도시들에 해당되었다. 대부분의 초기 방어시설은 도시 주변에 세워진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성벽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했다. 성벽의 크기와 힘은 국가나 통치자의 권력과 위신을 상징했다. 어떤 곳에서는 벽이 홍수를 막는 장벽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도시 성벽 외에도, 고대인은 침략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영토 안의 전략적인 지점과 국경을 따라 요새를 지었다. 방어시설의 성격은 군사, 정치, 경제, 지리적 요인의 조합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요소는 방어시설의 크기,.. 2021. 9. 21.
시리아와 이집트 대략 오늘날 시리아 공화국의 서부와 남부 국경에 해당하는 경계는 고대 시리아를 완만한 평야의 북쪽과 산지, 언덕과 사막으로 된 남쪽의 두 부분으로 나누며 선사시대에는 다른 발전을 따랐다. 이곳은 간략한 설명을 허락하지 않지만, 생각하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은 북쪽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 지중해 그리고 어느 정도 아나톨리아 사이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에 아주 초기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폭넓게 받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수백 개의 유적 언덕이 있는 북쪽이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처럼 철저히 탐사되었다면 BC 3천 년 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수메르 아카드 문명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거대하고 강력한 왕국이 에블라에서 발견된 것은 전혀 놀라운 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할 수 없었던 것.. 2021. 9. 12.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놀라운 예술 및 건축 작품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독창성, 상상력, 순전한 노력에 대한 증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의견 불일치, 파괴, 그리고 어쩌면 윤색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상기시켜준다. 고대 작가들이 "7대 불가사의"의 목록을 작성하자마자, 어떤 업적이 포함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의 장이 되었다. 최초의 목록은 BC 225년 비잔티움의 필로가 쓴 "7대 불가사의"라는 작품에서 따왔다. 결국, 사람의 손이 자연의 힘과 합쳐져서 불가사의 중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했다. 게다가, 적어도 하나의 불가사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7가지 모두 지구 초기 문명의 창의성과 기술의 놀라운 산물로서 계속 영감을 주고 찬사를 받고 있다... 2021. 9. 1.
바빌로니아 - 함무라비 제국 바빌로니아는 중남부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에 기반을 둔 고대 아카드어권 국가이자 문화 지역이었다. BC 1894년에 아모리인이 통치하는 작은 국가가 생겨났으며, 여기에는 소규모 행정 도시인 바빌론이 포함되었다. 아카드 제국(BC 2335-2154) 시대에는 작은 지방 도시였지만 BC 18세기 전반에 함무라비 통치 기간 동안 크게 확장되어 주요 핵심 도시가 되었다. 함무라비 통치 기간과 그 이후에 바빌로니아는 "아카드인의 나라"라고 불렸는데, 이는 아카드 제국의 이전 영광을 언급하는 의도적인 고풍이다. 바빌로니아는 종종 북쪽의 아시리아와 동쪽 고대 이란의 엘람과의 경쟁에 관여했다. 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BC 1792-1752 또는 BC 1696-1654)가 제국을 창설한 후 잠깐 동안 이 지.. 2021. 2. 28.
아시리아 3 - 신(新)아시리아 제국 신아시리아 제국은 철기 시대 메소포타미아 제국으로 B.C.911년에서 609년 사이에 존재했으며 그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 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제국 통치의 기초를 완성했으며, 그중 다수는 후대 제국들의 표준이 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철로 된 무기로 무장한 최초의 군대였으며 그들의 군대는 진보되고 효과적인 군사 전술을 사용했다. B.C.10세기 후반 아다드니라리 2세의 정복 이후, 아시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으며 라이벌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엘람, 페르시아, 우라르투, 리디아, 메디아, 프리지아인, 킴메르인, 이스라엘, 유다, 페니키아, 칼데아, 가나안, 쿠시 왕국, 아랍인, 이집트를 제압하고 정복하여 고대 근동, 동지중해, 소아시아, 코카서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 2020. 12. 17.
아시리아 2 - 중(中)아시리아 제국 중아시리아 제국, B.C.1392-1056 중기(B.C.1365-1056)에는 아슈르우발리트 1세, 아릭덴이리, 투쿨티니누르타 1세, 티그라트필레세르 1세와 같은 위대한 왕의 통치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근동의 후르리-미탄니 제국, 빛을 잃은 히타이트 제국, 이집트 제국, 바빌로니아, 엘람, 가나안, 프리기아를 전복했다. 에리바아다드 1세(B.C.1392-1366) 통치 무렵 아시리아에 대한 미탄니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에리바아다드 1세는 투슈라다와 그의 형제 아르타타마 2세와 그의 아들 슈타르나 3세 - 아시리아인의 지원을 구하면서 자신을 후르리의 왕이라고 불렀다 - 사이의 왕조 전투에 연루되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B.C.1365-1330)은 더 나아가 슈타르나 3세를 물리치고 미탄니 .. 2020. 12. 7.
아시리아 1 - 구(舊)아시리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아시리아는 B.C.25세기부터 (아수르 도시 국가의 형태로) B.C.612년에서 609년 사이에 붕괴될 때까지 레반트에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 왕국이자 고대 근동의 제국이었던 국가이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초기부터 중기부터 철기 시대 후반까지 이 오랜 기간은 초기(B.C.2600-2025), 구아시리아 제국(B.C.2025-1378), 중아시리아 제국(B.C.1392-934), 신아시리아 제국(B.C.911-609)으로 나누어진다. 아시리아는 셈어를 주로 사용하는 영역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티그리스에 집중되었다. 아시리아인은 여러 기간 동안 강력한 제국을 통치하였다. 수메르, 아카드 제국, 바빌로니아를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요람"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아시리아는 그.. 2020. 11. 22.
미탄니 왕국 미탄니는 아시리아 어로 하니갈바트 또는 하니-라바트, 이집트 텍스트에서 나하린이라고 불렀는데, 시리아 북부와 아나톨리아 남동부에서 후르리어을 사용하는 국가였다. 현재 미탄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 : 미탄니는 이미 B.C.17세기 말이나 16세기 전반기에 강력한 왕국이었으며 그 시작은 투트모세 1세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히타이트왕 하투실리 1세와 무르실리 1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 가설 : 미탄니는 히타이트에 의한 얌카드 왕국의 파괴와 무르실리 1세의 죽음 이후 히타이트가 시리아 지역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으로 생성되었다. 두 번째 가설을 고려한다면, 미탄니(B.C.1500년-1300년경)는 히타이트에 의해 아모리인과 바빌론이 B.C.. 2020. 11. 18.
히타이트 제국 히타이트는 B.C.1600년경 아나톨리아의 중북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제국은 B.C.14세기 중반 수필룰리우마 1세에 의해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북부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 상류 지역의 일부를 포함한 영역을 다스렸다. B.C.15세기-13세기 사이에 히타이트는 근동 지방의 패권을 놓고 이집트 신왕국, 아시리아 제국, 미탄니 제국과 충돌했다. 최종적으로는 아시리아 제국이 히타이트의 대부분을 합병했으며 남은 지역도 프리기아의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다. B.C.1180년에 멸망한 히타이트 제국은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B.C.8세기까지 존속된 뒤 신아시리아 제국에게 복속되었다. 히타이트어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도-유럽어 언어이다. 히타이트인들은 그들..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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