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로마 이야기177 비잔틴 제국 역사 지도 - 1편 하나의 제국으로 남기까지 AD 395-408년 아르카디우스 아르카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테오도시우스 1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아일리아 플라킬라의 장남이며 호노리우스의 형제이다. 아르카디우스는 그들의 아버지가 사망한 395년부터 제국의 동쪽을 통치했고 호노리우스는 서쪽을 통치했다. 약한 통치자였던 그의 치세는 일련의 강력한 각료들과 그의 아내인 아일리아 에우독시아에 의해 지배되었다. 서부 제국의 섭정 스틸리코가 동부를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진격하자 알라리크 역시 반란을 일으켰다. 396년 서고트족은 아테네와 펠레폰네소스에서 약 1년간 약탈을 하고 스틸리코가 보낸 군대를 격파하고 이동했다. 스틸리코는 서고트 출신의 가이나스를 보내 동로마의 섭정 루피누스를 제거했다. 이제 권력은 환관 에우트로피우스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2021. 9. 26.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11편 서부 제국의 몰락 AD 395-423년 호노리우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는 테오도시우스 1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아일리아 플라킬라의 작은 아들이자 395년부터 408년 사망할 때까지 제국의 동쪽을 통치한 아르카디우스의 형제였다. 호노리우스가 서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410년, 로마는 거의 800년 만에 처음으로 약탈당했다. 서로마 제국의 기준에서도 호노리우스의 치세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다. 그의 초기 통치는 호노리우스의 후견인(어린 시절)과 장인(성인 이후)인 스틸리코의 지지를 받았다. AD 407-411년 9월경 콘스탄티누스 3세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는 407년 브리타니아에서 스스로를 서로마 황제라고 선언하고 갈리아에 정착한 로마의 장군이다. 그는 409년부터 411년까지 공동 황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로.. 2021. 9. 25. 로마 제국 함대 그레이엄 섬너가 그린 그림은 암스테르담 바로 서쪽에 있는 벨센에 위치한 로마 해군 기지로,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사용되었다. 타키투스가 언급한 플레붐이라는 이름의 요새와 거의 확실히 일치한다. BC 30년 내전이 끝날 무렵, 옥타비아누스는 자신과 이전 적들의 함대를 획득하여 모든 종류의 전함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700 척 가까이 되었다. 제국 시대의 시작과 함께 함대 조직의 전체적인 개념은 미래에 대한 역할의 변화와 병행하여 바뀌었다. 로마의 호수가 된 지중해와 점점 더 흑해는 통합되고 통제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옥타비아누스(이제 아우구스투스)와 아그리파는 각각 고유한 정체성, 지휘관, 본거지 및 규정된 책임 영역을 가진 영구적이고 분리된 함대를 창설했다. 이 체계는 이탈리.. 2021. 9. 19.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10편 콘스탄티누스 왕조와 테오도시우스 AD 337-340년 콘스탄티누스 2세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장자이자 형제들과 함께 공동 황제였으며 340년 이탈리아 침공에서 실패하여 사망했다. AD 337-361년 콘스탄티우스 2세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치세에서 사산 제국과 게르만 민족에 대한 국경에서의 끊임없는 전쟁을 보았고, 로마 제국은 내전과 궁정의 음모와 찬탈을 반복했다. 그의 종교 정책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될 국내 갈등을 부채질했다. 콘스탄티우스는 324년 11월 8일 카이사르의 지위에 올랐고 337년 9월 9일 콘스탄티누스 2세, 콘스탄스와 함께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그는 즉시 장인, 삼촌, 그리고 여러 사촌의 학살을 관장하여 권력을 확고히 했다. 형제끼리 제국을 나누어, 콘스탄티우스는.. 2021. 9. 17.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9편 사분통치 AD 284-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달마티아에서 낮은 신분의 집안에서 태어나 군대를 거쳐 카루스 황제의 군대 기병 사령관이 되었다. 페르시아 원정에서 카루스와 그의 아들 누메리아누스가 죽은 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로 선포되었다. 카루스의 아들 카리누스도 황제를 주장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마르구스 전투에서 그를 물리쳤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는 제국을 안정시켰고 3세기 위기의 종식을 알렸다. 그는 286년 동료 장교 막시미아누스를 공동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임명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 동부에서, 막시미아누스는 제국 서부에서 통치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93년 3월 1일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를 자신과 막시미아누스 휘하의 공동 황제(각각 카.. 2021. 9. 9. 런던 : 로마와 초기 색슨 시대 - 2편 로마 선박 BC 5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함대가 브르타뉴 베네티 부족의 함대와 해전을 벌였을 때, 그는 그들의 배가 대서양 연안의 조건에서 어떻게 로마의 배보다 더 나은지를 주목했다. 베네티 선박은 조수에 더 적합한 얕은 용골과, 참나무로 단단하게 건조되고, 이끼, 갈대 또는 개암나무 부스러기로 틈을 메운 판자 사이의 이음매, 더 높은 뱃머리와 선미, 그리고 대서양의 폭풍을 견딜 수 있는 가죽 돛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 로마 시대의 배들은 일반적으로 조수의 차가 없는 지중해 조건에 적합한 그리스 로마 전통의 배와 켈트족 설계에 기초한 북유럽 해상용으로 나뉘었다. 지중해에서 도착한 상품은 여정 내내 여러 차례 환적되었고, 론디니움에 도착하는 배는 보통 북유럽의 유형이었을 것이다. 일부 로마 화물선은 .. 2021. 9. 7. 런던 : 로마와 초기 색슨 시대 - 1편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세계는 따뜻해지고 빙하는 녹았다. 많은 양의 물이 영국의 남쪽과 동쪽으로 흘러나와 지금의 런던 지역을 지나갔으며 때때로 매우 넓은 강에 의해 완전히 잠겼을 것이다. 상승하는 수위는 영국 해협을 형성하여 영국을 대륙과 분리시켰다. 넓고 느리게 움직이는 템스 강은 기슭에 자갈을 쌓았다. 수천 년에 걸쳐 좁아지고 작아지면서, 자갈이 퇴적된 가장자리는 점점 더 낮아진 계단식 기슭을 따라 안쪽으로 이동했고, 따라서 가장 최근의 지층은 현재의 강둑에 가장 가깝고 가장 오래된 층은 계곡 쪽에 있다. 많은 강과 개울이 고지대에서 북쪽과 남쪽 방향으로 템스 강에 흘러들어 가며 지난 5만 년 동안의 강과 하천의 침식은 런던 주변에 많은 계곡을 만들었다. BC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 2021. 9. 6.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8편 3세기의 위기 AD 235 3월 22일-238년 6월 24일경 막시미누스 트락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트라키아인)의 아버지는 총독의 회계사였으며, 후대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결국 그들의 오래된 거주지(다키아)에서 몰아내어 판노니아로 이주하게 되는 카르피족(다키아 부족)을 조상으로 두었다. 막시미누스는 235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자신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제4군단 이탈리카의 지휘관이었다. 판노니아 군대는 막시미누스를 황제로 선출했다. 238년(여섯 황제의 해로 알려짐) 원로원의 반란이 일어나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고르디아누스 3세가 연이어 막시미누스에 대항하는 황제임을 선포하였다. 막시미누스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로 진격했으나 아퀼레.. 2021. 9. 5. 로마의 곡물 무역 곡물 무역은 단순히 로마 상인들에게 이익의 수단이 아니었다. BC 5년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32만 명의 남성 시민에게 곡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그의 승리와 업적을 기념하는 비문에 기록했는데, 이는 바다와 육지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만큼 로마 시민들의 호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빵과 서커스'의 시대가 시작되고, 로마 민중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많은 황제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행위였다(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곡물을 빵으로 대체한 AD 3세기 전까지는 구운 빵이 배급되지 않았다). BC 1세기 말 로마는 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공급원들인 시칠리아, 사르데냐, 아프리카를 통제하며 폼페이우스가 매우 조심스럽게 보호해 왔다. 한 가지 결과는 중부 이탈리아에서 곡물 .. 2021. 9. 4. 고대 로마는 어디까지 퍼졌을까? 절정에 달했을 때 로마는 유럽과 중동에 걸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BC 753년에 반신이기도 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테베레 강에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8세기 반 동안 양돈 농부들의 작은 마을에서 영국에서 이집트로 뻗어있는 지중해를 완전히 둘러싼 광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로마 제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사력으로 이 땅들을 공격하여 정복했고, 그들이 스스로 다스리게 하면서 이 땅들을 유지했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자 "필멸의 공화국 : 로마가 독재정에 빠진 이유"의 저자인 에드워드 J. 왓츠는 로마의 팽창에 대한 열망은 역사적 뿌리가 깊었다고 말한다. "왕들이 통치한 도시의 팽창에 대해 이야기하는 근원적으로 로마 선사시대, 신화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 .. 2021. 8. 28. 팍스 로마나 동안 로마는 얼마나 번성했는가 로마 공화국의 몰락을 초래한 수십 년간의 정치적 기능 장애, 내전, 암살 이후, 고대 로마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로 알려진 2세기 동안 상대적인 평온과 번영한 시기였다. BC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초대 로마 황제로 즉위하면서 시작된 이 정치적 안정과 안보의 시대는 AD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비교적 평화로웠고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 동안 유혈사태가 거의 없었다. 로마가 유대, 브리타니아 등 속주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폭압적인 황제들은 정치적 경쟁자들을 죽였다. 그리고 제국의 정복은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칼레도니아의 족장 칼가쿠스는 로마인이 "황폐하게 한 뒤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로마인에게 팍스 로마나는 예술.. 2021. 8. 26.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7편 다섯 황제의 해, 세베루스 왕조 AD 176-192년 콤모두스 콤모두스는 176년부터 180년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던, 그리고 192년까지 재임한 로마 황제이다. 그의 치세는 일반적으로 팍스 로마나로 알려진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평화의 황금기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콤모두스는 172년 마르코만니 전쟁과 176년 동부 속주를 순방하며 아버지와 동행했다. 그는 177년에 로마 역사상 최연소 집정관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와 함께 공동 아우구스투스로 승격되었으며, 176년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다. 그의 단독 치세 동안, 로마 제국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통치 기간과 비교해 군사적 갈등이 줄었다. 호기심과 음모가 넘쳐나고, 콤모두스는 점점 독재적인 지도자 스타일로 돌아갔으며 그 결과 그는 .. 2021. 8. 24.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6편 현제의 시대 AD 96-98년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플라비우스 왕조의 창시자인 베스파시아누스처럼 네르바는 로마의 엘리트 중 한 명이라기보다는 이탈리아 귀족의 일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케이우스 씨족은 공화정 말기와 제국 초기의 가장 존경받는 저명한 정치 가문 중 하나였으며, 각 세대에 걸쳐 집정관직을 지냈다. 네르바의 친가 직계 조상들은 모두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로 이름 지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부터 황실과 관련이 있었다. 그의 증조부는 BC 36년도 집정관(대체 및 퇴직)이었고, 같은 해에 아시아 총독이었다. 그의 조부는 AD 21년 또는 22년 7월에 집정관이 되었고, 티베리우스 황제가 23년부터 카프리에서 은둔하는 동안 동행하여 33년에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네르바의 부친은 칼리굴라 황제.. 2021. 8. 21.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5편 네 황제의 해, 플라비우스 왕조 AD 68-69년 네 황제의 해 68-69년 네 황제의 세력도를 나타낸 지도. 갈바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 오토는 근위대와 루시타니아 속주, 비텔리우스는 라인 군단,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집트, 시리아, 유대의 동방 군단과 도나우 군단의 지지를 받았다. 68년 6월 8일-69년 1월 15일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술피키우스 갈바 갈바는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지 못했다. 로마로 진군하는 도중, 그는 즉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를 파괴하거나 막대한 벌금을 부과했다. 로마에서 갈바는 많은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혜택을 포함하여 네로의 모든 개혁을 취소했다.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갈바는 공모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원로원 의원과 기사 계급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근위대 병사들도 기뻐하지.. 2021. 8. 18. 로마 제국 역사 지도 - 4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BC 27-AD 14 아우구스투스 시민관을 쓰고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흉상. 로마의 초대 황제. 그는 팍스 로마나로 알려진 상대적으로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로마 세계는 제국의 국경에서 계속된 확장 전쟁과 황위를 둘러싼 1년 간의 내전 외에는 2세기 이상 대규모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이 끝난 뒤 원로원, 행정부, 입법부에 정부 권한을 부여하면서 공화국의 외관을 복원했지만 원로원으로부터 군 최고사령관, 호민관, 감찰관의 종신 재직권을 부여 받음으로써 독재적 권위를 유지했다. 모호성은 그가 선택한 이름에서 볼 수 있는데 자신을 프린켑스 키비타티스(제1시민)로 부르며 군주제 칭호를 묵시적으로 거부하고 고대 칭호인 아우구스투스를 채택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 달마티아, 판노니아, 노리쿰,.. 2021. 8. 17. 이전 1 ··· 3 4 5 6 7 8 9 ··· 12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