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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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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이야기135

전열함(Ship of the line) 전열함은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돛의 시대에 건조된 전함의 일종이다. 전열함은 전열로 알려진 해군 전술에 맞게 설계되었으며, 전열은 옆면을 따라 대포를 발사하기 위해 기동하여 상대하는 전함의 두열에 의존했다. 서로의 전열함들이 함선의 측면으로부터 발사하게 하는 충돌에서, 더 많은 포를 발사하고, 더 많은 화력을 가진 함선이 일반적으로 유리했다. 이러한 교전은 거의 변함없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더 많이 탑재한 가장 중무장한 함선들에 의해 승리되었기 때문에, 당대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범선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1840년대 말부터 증기 동력의 도입으로 전장에서 바람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증기로 추진하는 전열함이 건조되면서 돛으로만 움직이던 선박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철갑.. 2021. 4. 13.
갤리언(Galleon) 갤리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이 돛의 시대에 최초로 무장 화물선으로 사용했던 대형 다층 범선이었으며, 1600년대 중반의 영국-네덜란드 전쟁까지 군함으로 사용되기 위해 고안된 주요 선박이다. 갤리언은 일반적으로 3개 이상의 돛대와 후미 돛대에 종범장(세로 돛)이 달려 있었고, 앞 돛대와 주 돛대는 가로 돛으로 되었으며 눈에 띄게 사각형으로 솟아오른 선미가 있는 카벨로 제작된 선박이었다. 이러한 선박은 19세기 초까지 해상 무역의 중심이 되었으며, 종종 보조 해군 함선으로 사용되기 위해 개량된 선박이 사용되었다. 실제로 신항로 개척 시대의 150년 동안 대부분을 통해 경쟁하는 함대의 주축이었다.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특별히 목적에 맞게 만들어진 3개의 돛대에 가로 돛을 단 .. 2021. 4. 8.
캐럭(Carrack) 캐럭(포르투갈어: 나우, 스페인어: 나오, 카탈로니아어: 카라카)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유럽,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전된 3, 4개의 돛대를 가진 원양 범선이다. 단일 돛대를 가진 코그에서 진화한 이 캐럭은 처음에는 지중해에서 발트해까지 유럽인의 무역에 사용되었고, 새로운 부를 창출한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무역과 아메리카와의 대서양 횡단 무역에서 빠르게 사용되었다. 가장 진보된 형태로 15세기 후반부터 포르투갈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무역을 위해 사용했으며, 17세기가 되자 16세기부터 도입된 갤리온으로 대체되었다. 캐럭은 가장 발전된 형태의 카벨로 제작된 원양 선박으로 무거운 바다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고, 많은 화물과 매우 긴 항해에 필요한 물품을 갖출 수 있.. 2021. 4. 7.
캐러벨(Caravel) 캐러벨은 15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대서양을 탐험하기 위해 개발한 소형 범선이다. 삼각형 돛(라틴세일)은 속도와 바람을 향해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캐러벨은 포르투갈인과 카스티야인이 15세기와 16세기 동안 신항로 개척을 위해 사용했다. 명명 영어 이름은 포르투갈어 카라벨라(Caravel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아랍어 카리브(qārib)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으며, 라틴어로 카라부스 또는 그리스어로 카라보스로 알려진 고대 보트 형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며, 아마도 여러 시대에 걸쳐 캐러밸의 개발이 지속되었음을 나타낸다. 역사 15세기까지 유럽인들은 연안 항해에 한정되었다. 그들은 약 50-200 톤 규모의 지중해 고대 화물선인 바지선 또는 베일링거(바리넬)를 사용했다. 이 배.. 2021. 4. 6.
견마최난(犬馬最難), 귀매최이(鬼魅最易) 견마최난(犬馬最難). 개나 말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개나 말은 누구나 보아서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이것을 잘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귀매최이(鬼魅最易). 그러나 귀신이나 도깨비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그려도 사람들은 그런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기가 쉽다. -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편(外儲設 左上編) 고대 중국의 산둥지방에는 제(齊) 나라가 있었다. 제나라의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있었는데 하루는 왕이 물었다. "무엇을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화공은 대답했다. "개와 말이 가장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그리기 쉬운가?" "귀신과 도깨비를 그리기가 가장 쉽습니다." 사람들은 개나 말은 매일 보기 때문에 자기가 생각한.. 2021. 3. 4.
[고대 그리스] 펜테콘테로스 펜테콘테로스("노가 50개 있는")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된 고대 그리스 갤리선이었다. 다른 의미로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50명의 군대 지휘관에게도 사용되었다. 역사 펜테콘테로스는 상선과 군함의 구분이 없었던 시대에 나타났다. 해상 무역, 해적 및 전쟁에 사용되는 다목적 장거리 선박으로 화물이나 군대를 수송할 수 있었다. 50명의 노를 젓는 사람은 배의 양쪽에 25명씩 배열되어 있었고 돛이 달린 선박 중간의 돛대도 순풍일 때 배를 추진할 수 있었다. 펜테콘테로스는 길고 뾰족한 배로 묘사되며 일반적으로 앞뒤 일부에만 갑판이 있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 동안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다시 데려온 배와 같은 노가 20개 있는 배와 50명의 남자와 120명의 남자를 실은 오디세우스의 보이오티아 배와.. 2021. 1. 28.
[비잔틴 제국] 드로몬 드로몬은 갤리의 일종으로 이탈리아식 갤리로 이어진 AD 5-12세기 비잔틴 해군의 가장 중요한 군함이었다. 그것은 제국 시대 로마 해군의 중심이었던 고대 리부르나에서 발전되었다. 중세 영어 dromond와 구 프랑스어 dromont는 드로몬에서 파생되었으며 특히 큰 중세 선박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진화와 특징 돛과 노를 모두 사용하는 표준 비잔틴 전함. 전형적인 10세기 드로몬은 200명의 노를 젓는 노 뱅크 두 개와 뱃머리의 램, 그리고 필요한 경우 적군함에 탑승할 수 있는 중장 해병을 가지고 있었다. 비레메과 매우 흡사하게 보이고 행동했다. 그러나 7세기 후반부터 뱃머리에는 수많은 전투에서 결정적인 것으로 판명된 유명한 그리스 불인 비잔틴 네이팜을 방출하기 위한 청동으로 만든 사이펀이 있었다. 배.. 2021. 1. 28.
[중세] 노르 선(船) 노르(Knarr)는 바이킹이 사용한 노르드 상선의 일종이다. 노르는 랑스킵, 카르베, 파에링과 동일한 널을 겹 대어 만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역사 노르는 긴 바다 항해를 위해 건조되어 바이킹 확장에 사용된 선박 유형에 대한 고대 노르드 용어이다. 노르는 화물선이었다. 선체는 랑스킵보다 더 넓고 깊고 짧았으며 더 많은 화물을 수용할 수 있고 더 적은 승무원으로 운항할 수 있었다. 길이 약 16 미터(54 피트), 폭 5 미터(15 피트), 최대 24 톤을 운반할 수 있는 선체로 제작되었다. 주로 바다코끼리 상아, 양모, 목재, 밀, 모피 및 가죽, 갑옷, 노예, 꿀, 무기와 같은 무역 상품을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발트해, 지중해 및 기타 바다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따라 전사와 상인에게 음식, 음료.. 2021. 1. 28.
[중세] 코그 선(船) 코그(Cog)는 10세기에 처음 등장한 선박의 한 종류로 12세기경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코그는 일반적으로 오크 나무를 사용하여 널을 겹 붙여 댄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선박에는 하나의 돛대와 정사각형으로 된 하나의 돛이 장착되었다. 대부분 중세 유럽 북서부, 특히 한자 동맹의 해상 무역과 관련이 있다. 전형적인 항해용 코그는 길이가 약 15-25 미터(49-82 피트)에 폭은 5-8 미터(16-26 피트)였으며 적재량은 30-200 톤이었다. 코그의 크기가 300 톤인 경우는 드물었지만 몇몇은 1,000 톤이 넘는 상당히 큰 선박이었다. 코그라는 이름은 이미 9세기에 기록되었지만 항해용 선박은 12세기에 프리지아 해안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코그는 13세기 동안 북쪽 바다에서 바이킹 형 선박을 점.. 2021. 1. 27.
[고대 지중해] 비레메(Bireme/2단노선) 비레메는 2개의 노 갑판이 있는 노가 달린 고대의 군함(갤리)이다. 비레메는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진 긴 선박이었으며 비교적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BC 6세기 이전에 발명되었으며 페니키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이 사용했다. 기술 비레메(bireme)라는 이름은 2를 의미하는 "bi-"와 노를 의미하는 "-reme"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으로 길이는 약 24m이고 상판의 최대 폭은 약 3m이다. 그것은 양쪽에 노 한 세트만 있는 배인 펜테콘테르(Penteconter)에서 수정되었으며 비레메는 각 면에 두 세트의 노를 가지고 있다. 비레메는 트리아콘테르(Triaconter)의 길이와 높이의 두 배였으므로 120명의 노 젓는 사람이 있었다. 비레메는 갤리, 갈레아스, 드로몬, 팜필레로 불리는 작은 유람선.. 2021. 1. 6.
[고대 그리스] 시라코우시아(Syracusia) 시라코우시아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큰 수송선으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 배였다. 배는 시칠리아의 어떤 항구보다도 너무 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알렉산드리아로 한 번만 항해한 후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에게 선물로 주었다. 시라코우시아의 정확한 크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Michael Lahanas는 길이 55m, 너비 14m, 높이 13m로 추정했다. 일반적 특성 시라코우시아는 아르키메데스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의 명령에 따라 아르치아스(Archias of Corinth)를 기리기 위해 BC 240년 경에 건조되었다. 파셀리스의 역사가 모스키온(Moschion)은 시라코우시아가 약 1,600~1,800톤의 화물과 1,942명.. 2021. 1. 4.
[고대 그리스] 테사라콘테레스(Tessarakonteres)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과 그 후손들은 많은 배로 구성된 함대를 만들고 테사라콘테레스(40단)와 같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였다. 배들은 현대 전함과 항공모함을 연상시키는 진정으로 떠다니는 요새였다. 테사라콘테레스에는 거의 현대 항공모함 규모인 총 6,000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40"이라는 이름은 노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를 추진한 각 조정 라인에 있는 노 젓는 사람의 수를 의미한다. 노를 젓는 선의 분포는 고대 자료에 의해 언급된 "16단"이 언급될 때까지 상당히 기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인 페르세우스는 그의 기함으로 "16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 자료에는 4,000명의 노 젓는 사람을 둔 프톨레마이오스의 테사라콘테레스가 언급되어 있다. 40단의 노 젓는 사.. 2021. 1. 4.
아커/아크레(Acre) 현지인들에게 아코(Akko) 또는 아카(Akka)로 알려진 아커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해안 평야 지역에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지중해의 레반트 해 연안에 있는 하이파 만 끝의 천연 항구에 자리 잡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안 무역 외에도 이 지역의 해안 도로와 제즈릴 골짜기를 따라 내륙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중요한 중간 지점이었다. 초기 청동기 시대의 첫 번째 정착지는 몇 세기 후에 버려졌지만 중기 청동기 시대에 큰 마을이 세워졌다. 그 이후로 계속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여러 번 정복과 파괴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큰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아커는 십자군 전쟁 당시 중요한 도시였으며 여러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1291년 점령되기 .. 2021. 1. 2.
올비아(Olbia) 올비아는 우크라이나 파루티네"Parutyne" 마을 근처의 남부크 하구 해안에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였다. BC 7세기 밀레토스의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곡물, 생선, 노예를 그리스로 수출하고 아티카의 상품을 스키티아로 수입하기 위한 흑해의 주요 상업 거점 중 하나였다. 형세 그리스 식민지의 부지는 50 헥타르의 면적을 차지하며 요새는 길이가 약 1마일, 너비가 0.5마일 인 이등변 삼각형을 형성했다. 이 지역은 또한 그리스인들이 정착했을 수 있는 여러 마을(현재의 비스토로우카"Victorovka"와 드네프로우코예"Dneprovskoe")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마을 자체에 관해서는 (현재 버그 강에 의해 대부분 잠긴) 낮은 지대의 마을은 주로 조선소와 장인의 집이 차지했다. 높은 지대의 마을.. 2020. 12. 31.
예루살렘(다윗 성) 다윗의 도시는 이스라엘 정착지가 얽혀있는 팔레스타인 아랍 마을이며 중동의 지중해와 사해 사이의 유대 산맥 고원에 있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세 가지 주요 종교의 성스러운 곳으로 간주된다. 고고학적으로는 청동기 중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나안 인프라와 유대 왕이 지은 철기 시대의 새로운 건축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다윗의 도시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지역은 유목민 목자의 야영지 형태로 BC 4천 년대에 정착한 첫 징후를 보여준다. 가나안 시대(BC 14세기)에 예루살렘은 고대 이집트 서판에서 우루살림으로 명명되었으며 아마도 가나안 신의 이름을 따서 "샬렘의 도시"를 의미했을 것이다. 이름 : 역사와 어원 고대 이집트 출처 이집트 중왕국(BC 1..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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