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체 글905 퀴리날레 언덕 북동쪽 지역 템플라 (트리아) 포르투나이. 세르비우스 성벽(무루스 세르비) 안에 있는 포르타 콜리나 문 근처에 위치한 행운을 기리는 세 개의 사원. 이 세 건물 중 하나는 포르투나 푸블리카 키테리오리스에 헌정되었다. 두 번째는 사진의 중앙에서 가장 큰 포르투나 프리미기니아(포르투나 푸블리카 포풀리 로마니 프리미기니아)(로마 민중의 재산)에 이어 세 번째이자 가장 먼 것은 포르투나 푸블리카 울테리오리스의 사원이다. 포르타 콜리나. 퀴리날레 북동쪽 끝에 있는 세르비우스 성벽의 문. 이 문 앞에서 한니발이 진을 치고, 같은 장소에서 술라와 결국 패배한 마리우스 지지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오래된 문 앞에 두 개의 돌과 세르비우스 성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유적은 제국 말기에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엘라가발루.. 2021. 5. 5. 퀴리날레 언덕 북쪽 지역 퀴리날레의 북쪽 경사면, 퀴리누스 신전 기슭에 있는 몇몇 귀족적인 저택들은 이 지역에 높은 명성을 주고 있었다. 여기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비누스의 저택은 내부가 둘러싸인 거대한 건물로 식별될 수 있다. 퀴리누스 신전의 북쪽 파사드는 관리인 주택 또는 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의 첫 번째 플랫폼이 다른 여러 플랫폼에 대한 접근을 허용했다. 풀비나르 솔리스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퀴리누스 신전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유니우스 실비누스 저택 근처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프라이토리움의 총독이라는 사실로 인해 실비누스보다 더 유명한 플라우티아누스의 또 다른 거대한 빌라가 있었다. 사진 중앙에 있는 카피톨리눔 베투스는 높은 부벽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카피톨리눔의 모양을 하게 되었다. 퀴리날레에 지어진.. 2021. 5. 4. 퀴리날레 언덕 퀴리날레 언덕(Regio VI)의 조감도. 61 미터 높이의 퀴리날레 언덕은 로마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사비니인의 신 퀴리누스(전쟁의 신, 후대에 로물루스와 동일시 됨)에서 유래했다. 중요한 길은 퀴리날레 언덕을 넘어 비탈길을 따라 트라야누스 시장으로 내려오는 알타 세미타였다. 정상에는 세라피스 신전과 콘스탄티누스 목욕탕이 있었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알타 세미타는 사진 맨 위에 있는 황제 포룸까지 늘어서 있는 건물을 통과했다. 절벽에 바로 세워진 트라야누스 시장은 트라야누스 포룸과 함께 전체를 이루었다. 여러 층의 상점과 상품이 있는 훌륭한 상업 단지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분배하는 중심지였다. 아랫부분에서 거대한 담화실을 볼 수 있다. 시장 오른쪽의 약간 그늘진 곳에 비쿠스.. 2021. 5. 3. 에스퀼리노 언덕 서쪽 지역과 비미날레 언덕 사진의 전경에 있는 에스퀼리노는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이다. 언덕은 오피우스, 파구탈리스, 키스피우스 세 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는 고원으로 되어있다. 제국 시대 이전에 이 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로 덮여 있었고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마이케나스는 정원이 있는 멋진 빌라를 지었다. 제국이 끝날 무렵 언덕은 거의 완전히 건물로 뒤덮였다. 비미날레 언덕은 사진의 제일 아래에 있는 에스퀼리노 언덕과 사진 최상단에 있는 퀴리날레 언덕 사이의 일종의 "툭 튀어나온" 곳이었다. 언덕은 주로 인술라이(건물의 96%가 이런 종류의 것으로 보이는 로마의 대부분의 주택을 구성한 임대 주택의 형태)가 있는 생활공간이었다. 인술라는 도시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혼잡한 거리는 사고파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 2021. 5. 2. 에스퀼리노 언덕 북서쪽 지역 1. 사진의 중앙에는 웅장한 정원이 있는 마르쿠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44년도 집정관)의 저택이 있다. 아마도 캄푸스 마르티우스에 최초의 원형 경기장(이전에는 필요할 때마다 목조로 지은 가건물의 형태를 보임)을 지은 C.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의 후손 중 한 명일 것이다. 2. 리비아 시장(사진 상단에 반쯤 보이는) 옆에는 광활한 광장을 이룬 베티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와 파비아 파울리나 아코네의 거대한 저택이 있었다. 아마도 4세기 후반의 로마 원로원 의원인 베티우스 아고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의 저택일 것이다. 그는 오래된 이교도 종교를 옹호한 마지막 로마 귀족들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3. 티부르티나 가도에 있는 칼리카누스의 저택과 정원. 그 이름은 다른 알려진 표시도 없이 이곳에서 발견된 포모이리알 .. 2021. 5. 1. 에스퀼리노 언덕 북동쪽 지역 라비카나 가도와 티부르티나 가도의 교차점에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이름을 딴 알렉산데르의 님페아(님파이움 알렉산드리). 두 길 사이에서 도시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분수이다. 티부르티나 문을 통과하기 전에 여유 공간을 제공한 타우루스 포룸(포룸 타우리).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 지어진 하나의 아치만 있는 이 문은 로마와 티볼리를 연결하는 도로인 티부르티나 가도로 통했다.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통치하기 위해 해방노예들을 곁에 두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황제 자신의 조카인 소 아그리피나(네로 황제의 모친)와 클라우디우스의 결혼을 선호한 팔라스였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그가 거대한 정원인 팔라스 정원(호르티 팔라티아니)과 같이 부러워할만한 재산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 중간의 수도교 근처에 팔라스의 저택.. 2021. 4. 30. 에스퀼리노 언덕 남동쪽 지역 여러 번 집정관을 지냈고 트라야누스 황제의 절친한 친구인 리키니우스 수라의 저택이다. 수라가 죽은 후, 트라야누스는 그의 이름을 가진 목욕탕을 아벤티노에 짓게 했다. 그의 도무스는 특히 호화스러운 정원으로 놀라웠다. 왼쪽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메룰라나 가도가 있다. 에스퀼리노의 중심부에는 AD 3년에 집정관을 지낸 L. 아일리우스 라미아의 저택과 정원(A)이 있다. 광활한 라미아 정원은 자연의 각성을 상징하는 여신인 마이아의 정원(호르티 라미아니 에트 마이아니)과 합쳐졌다. 사람들은 5월에 그녀의 날을 축하했고, 아마도 여신은 5월에 자신의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정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건축물(B)이 그녀에게 바쳐졌을지도 모른다. L. 아일리우스 라미아의 저택과 정원과 메룰라나 가도 옆.. 2021. 4. 29. 첼리오 언덕 동쪽 지역과 데케니움 카일리우스의 동쪽, Regio II. 여기에 사비니 출신의 대가족인 발레리우스의 저택(도무스 발레리오룸)이 있었다. 저택은 아쿠아 클라우디아를 따라 카일리우스의 광대한 지역에 퍼져있었고 비탈에는 큰 정원이 있었다. 발레리우스 일족의 역사는 BC 509년 타르퀴니우스의 몰락에 참여하고 로마 공화국의 두 번째 집정관이 된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와 함께 시작되었다. 다른 거대한 도무스는 아벤티노 평지에 있는 발레리우스 포티투스의 것과 같이 이 가문의 구성원들에게 속했다. 발레리 궁전의 화려한 계단식 정원을 지난 후, 길다랗게 뻗어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의 정원을 발견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카일리우스에서 태어났으며, 하드리아누스의 궁전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은.. 2021. 4. 28. 첼리오 언덕 서쪽 지역 첼리오 언덕(카일리우스 몬스) (Regio I)이라는 이름은 에트루리아 족장 카일리우스 비베누스에서 유래했으며 에스퀼리노 언덕과 아피아 가도 사이의 로마 남부에 위치해 있다. 거대한 아쿠아 클라우디아 수도교가 언덕 전체를 지나 팔라티노로 내려갔다. 제국 시대 이전에 카일리우스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티베리우스 시대에 격렬한 화재로 건물들을 완전히 태워버렸다. 재건축은 카일리우스를 다소 세련된 지역으로 변화시킨 화려한 저택(도무스)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진 오른쪽 중앙에 위치한 키일리우스의 북서쪽에 세워진 네로의 대시장(마켈룸 마그눔)이다. 더 멀리에는 사비니인의 사원인 카모이나이 신전이 있다. 로마의 행정장관이 시민의 재산재고표를 보관한 곳은 바로 이 사원이었다. 더 가까이에서 본 네로의 대시.. 2021. 4. 27.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셉티조디움 셉티조디움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궁전의 웅장한 측면을 완성하고 싶어 하던 시기에 지어졌다. 이 건물은 당시 알려진 7개의 행성(태양, 수성, 금성, 달, 화성, 목성, 토성)을 나타냈기 때문에 셉티조디움이라고 불렸다. 확실히 아피아 가도를 타고 로마에 온 방문객들은 황제의 궁전과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모퉁이에 셉티조디움이 나타나면서 장대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사진 중앙에 있는 팔라티노의 전체 경관. 왼쪽에는 벨라브룸, 배경에 로마의 포룸이, 오른쪽 하단에는 대 키르쿠스(키르쿠스 막시무스)가 있다. 250,000석을 수용할 수 있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로마와 심지어 제국에서도 가장 컸다. 앞쪽에 있는 카르케레스는 트랙을 7바퀴 도는 경주의 출발 신호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 사진 상단.. 2021. 4. 26. 팔라티노 언덕 팔라티노 언덕은 공화정 시절 고위층인 키케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그리파, 그리고 훗날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인 옥타비아누스를 위한 단순한 주거지역이었다. 제국 지배하에, 그것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광대한 궁전으로 더 부유해졌다. 사진의 왼쪽에는 티베리우스 궁전, 중앙에는 거대한 정사각형 구조를 형성한 도무스 플라비아와 도무스 아우구스타나, 오른쪽 위에는 스타디움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궁전이 있다. 멀리서 본 이 경관은 팔라티노의 궁전이 거대한 건축물이 되었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며, 건물들이 서로 붙어있어 건축 전체가 계획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더 가까이에서 본 궁전의 중심부에 있는 도무스 플라비아와 함께 훌륭한 페리스타일(주랑 현관의 일종)과 연못이 보인.. 2021. 4. 25. 아벤티노 아래 평지와 테스타치오 언덕 사진 아래쪽에는 아벤티노 아래 평지와 테스타케우스 언덕의 일반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다. 왼쪽 하단에는 오스티아 항으로 흘러가는 테베레 강의 굽은 부분이 있다. 아벤티노 평지에는 창고와 인슐라이, 저택이 밀집해 있었다. 데키우스 목욕탕을 돌아 아벤티노 언덕은 평지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사진의 중앙에서 언덕 꼭대기와 평지를 연결하는 길고 완만한 경사로의 비쿠스 플라타노니스와 아벤티노의 서쪽을 따라 이어지는 비쿠스 아밀루스트리를 짐작할 수 있다. 멋진 장소였기 때문에 장엄한 도무스(귀족이 살던 집)가 이 특별한 매력적인 지역에 지어졌다. 목욕탕과 스티뮬라의 신성한 나무(a) 가까이에 플라비우스 이울리우스 콰르투스의 저택(b)이 있었고, 파크투메이의 저택(c)은 진정한 궁전이었으며 확실히 평지 전체를 내.. 2021. 4. 24. 수라 목욕탕 (테르마이 수라나이) 아벤티노의 비탈에 있는 리키니우스 수라 목욕탕의 정원이 지금은 로마의 대 키르쿠스가 있는, 당시 마르키아 계곡을 향해 돌출되어 있었다. 클리부스 푸블리키우스에 위치한 수라 목욕탕. 보르툼누스 신전은 수라 목욕탕 가까이에 있었다. 보르툼누스는 계절의 신이었다. 사원은 BC 264년에 지어졌을지도 모른다. 보르툼누스 신전 산책로 앞의 콘수스 원형 신전. 북서쪽에서 본 보르툼누스 신전과 콘수스 신전. 출처 : maquettes-historiques 2021. 4. 23. 피스키나 푸블리카 사진 중앙에 카라칼라 목욕탕과 아피아와 마르키아 수도교 사이에 아우구스투스의 행정 구역 XII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피스키나 푸블리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과거에 로마의 젊은이들이 수영을 배우던 공공 수영장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벤티노 기슭에 있는 거대한 저수지로, 사람들과 말을 씻는 물을 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그 장소에 대한 식별은 BC 215년까지 올라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영장이 사라져도 이름은 남아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저수지는 Q. 아이아키우스 켄소리누스의 저택이 위치한 곳에 있었어야 했는데, 더 아래에 위치했다. 소 아벤티노의 꼭대기에서 포르타 나이비아를 출발점으로 하여, 노바 가도에 도달하기 위해 지역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클리부스 델피니를 따랐다. 비쿠스 포르.. 2021. 4. 22. 소 아벤티노 사진에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 건설되기 이전에도 아벤티노의 양쪽 봉우리를 모두 포함했던 옛 세르비우스 성벽을 볼 수 있으며 이 사진에는 하드리아누스의 사저가 세워진 융기된 장소가 보인다. 전경에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사저"(프리바타 하드리아니)으로 알려진 이 멋진 건물은 소 아벤티노의 남쪽 지대에 여러 층으로 지어졌으며, 분명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저택보다 정원이 있는 궁전으로 여겨질 수 있다. 건축가 황제는 이 저택을 로마의 사저로 짓도록 내버려 두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그 집에서 거주한 시간은 많지 않다. 사진 왼쪽에 있는 코르니피키아 저택. 이곳은 M. 우미디우스 콰드라투스와 결혼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여동생의 집일 수도 있다. 이 집은 하드리아누스의 사저처럼 아벤티노에.. 2021. 4. 21. 아벤티노 언덕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아벤티노 언덕(몬스 아벤티누스), Regio XIII은 높이가 아주 낮았다. 언덕은 실제로 작은 협곡이 공유하는 두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 봉우리는 테베레 강에 가깝고 두 번째 봉우리인 소 아벤티노(그리고 피스키나 푸블리카라고 불리는 로마의 Regio XII에 속하는 일부)는 더 남쪽에 있다. 공화국 동안에는 항상 인기 있는 지역이었으며 제국 시대에 더 많은 주거 지역이 되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은 라틴인의 연방 성소가 된 다이아나 사원을 지었다. 또 다른 오래된 종교 건물인 미네르바 사원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데키우스 목욕탕 외에도 트라야누스 황제의 친구 중 한 명이 사설 목욕탕인 수라 목욕탕을 지었다. 아벤티노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데키우스 목욕탕.. 2021. 4. 20. 카피톨리움/카피톨리노 언덕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카피톨리노(이탈리아어: 캄피돌리오, 라틴어: 몬스 카피톨리누스), REGIO VIII은 로마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사진의 중앙에 있는 주요 사원은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 또는 최고신 유피테르의 사원이다. 여러 번 불에 타고 항상 같은 장소에 재건되었다. 이곳은 로마의 정치적, 종교적 상징이었다. 몇몇 도시들도 자신들만의 카피톨리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언덕은 두 개의 봉우리, 오른쪽 아르스(Arx)와 앞쪽에 있는 카피톨리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아래쪽에 있는 가파른 지형은 타르페이안 바위와 100 계단이다. 이 바위 꼭대기에서 반역자들이 던져졌다. 제국이 끝날 무렵, 이곳은 성역과 기념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언덕이 끝나는 북서쪽 끝에서 쇠퇴한 로마 포룸이 전경에 보인다.. 2021. 4. 19. 라티나 가도(Via Latina) 비아 라티나(라틴어 "라틴 길"의 의미)는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 km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로마 도로였다. 경로 길은 로마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포르타 라티나에서 알기다스 산의 길로 이어졌다. 도로는 로마의 초창기 군사 역사에서 중요했다. 캄파니아로 가는 경로로 아피아 가도보다 앞서 존재했으며 BC 334년 칼레스에 라틴식민지가 세워지고 로마에서 도로로 접근할 수 있었던 반면 아피아 가도는 22년 후에 만들어졌다. 또한 직선처럼 곧은 아피아 가도가 극복해야 했던 공학적인 어려움 없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병참선을 따른다. 노선으로서, 라비카나 가도보다 앞섰지만, 라비카나는 나중에 선호되었을 수 있다. 교차점 이후, 라티나 가도는 트레루스(사코) 계곡을 따라 나폴리로 가는 현대 철도 노선을 따라 헤르.. 2021. 4. 18.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51 다음 728x90